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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저우에 숨겨진 역사


2024-08-16      

1000여 년 전 축조된 황장욕 예운사(瑞雲寺) 앞에 유명한 박달나무 고목림이 우거져 있다. 사진/황장욕국가삼림공원 제공


쑤저우(宿州)라는 이 역사적 분위기가 짙은 땅 위에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족적을 남겼다. 이곳은 춘추 시대 공자의 제자인 민자건의 ‘노의순모(蘆衣順母)’ 고사의 발생지이자 진나라 말기 진승·오광(陳勝·吳廣) 봉기가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더 주목할 점은 초한쟁패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곳이기도 하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힘차게 나아가면서 수많은 감동적인 이야기와 불멸의 영웅을 낳았다.


영웅호걸이 호령한 역사의 무대

베이징(北京)에서 고속철로 세 시간이면 도착하는 쑤저우 관할 당산(碭山)현, 샤오(蕭)현, 링비(靈璧)현, 쓰(泗)현, 융차오(埇橋)구에는 크고 작은 고속철도역과 공항이 있어 교통 인프라가 사통팔달로 잘 형성됐다. 과거 이곳은 배와 수레가 모이고, 도로가 전국으로 향한다는 뜻의 ‘주차휘취, 구주통구(舟車匯聚, 九州通衢)’라는 아름다운 명성을 갖고 있다. 서기 605년 수 양제가 대운하(당송 이후 변하(汴河)라고 부름)를 건설해 쑤저우는 점차 ‘변하를 틀어막는 남북의 요충지’인 군사 요지가 됐다.


“쑤저우 곳곳에는 역사의 흔적이 가득하다. 남쪽으로는 진승과 오광이 대택향 봉기를 일으켰던 섭고대(涉故臺)가 있고, 북쪽에는 유방이 진나라 병사를 피해 숨었던 황장욕(皇藏峪)이, 동쪽에는 사실상 초한쟁패의 결말이라 할 수 있는 해하(垓下) 전투의 옛 터와 우희묘(虞姬墓)가, 서쪽에는 이백이 술을 마시며 시를 지었던 연희대(宴嬉臺)가 있다.” 샤오현 황장욕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우연히 쑤저우의 역사 유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현지 승객들은 이곳의 역사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각 시대별 역사적 인물과 문인, 묵객이 쑤저우에 남긴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흥미롭게 회자되고 있다.


쑤저우에는 중국에서 가장 긴 이름을 가진 독특한 마을이 있다. 이곳은 또한 춘추 시대 공자의 제자 민자건(閔子騫)의 ‘노의순모’ 고사의 유래지다. 어린 노자건은 계모의 학대로 추운 겨울에 솜 대신 갈대꽃으로 채운 옷을 입어 손발이 꽁꽁 얼어붙어 달구지를 끌 수 없었다. 아버지는 민자건이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라고 생각해 채찍으로 때렸는데 솜옷이 터져 갈대꽃이 튀어나온 것을 보고 나서야 계모의 악행을 알았다. 아버지가 계모를 내쫓으려고 하자 민자건은 배다른 어린 동생들을 걱정해 아버지를 말렸고 이로 인해 계모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감화됐다. 현지 사람들은 민자건의 효행을 기념하기 위해 마을 이름을 ‘효재민자건편타노화차우반촌(孝哉閔子騫鞭打蘆花車牛返村)’으로 바꿨다.


진나라 말기, 국경 수비대 900명이 변경을 지키려 밤낮으로 달려 지금의 베이징(北京) 미윈(密雲)인 어양(漁陽)으로 향하던 중, 쑤저우 융차오(埇橋)구 동남쪽 다쩌(大澤)향 섭고대를 지나갈 때 비가 계속 내리면서 행군이 지연됐다. 기한 내 도착하지 못한 군사들은 당시 진나라 법에 따라 참수형에 처하게 됐다. 국경 수비대였던 그중 진승과 오광은 죽기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싸우다 죽는 것이 낫고, 싸워서 천하를 얻으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해 봉기를 일으킬 결심을 한다. 그들은 당시 사람들이 미신을 믿는 심리를 이용해 미리 준비해 둔 ‘진승왕(陳勝王)’이라는 명문이 적힌 비단서한을 생선 배에 넣어 병사들이 사서 먹게 했다. 또 밤낮으로 여우 울음소리를 흉내 내어 ‘대초흥(大楚興), 진승왕’이라고 외쳤다. 이렇게 진승·오광의 난이 시작됐다. 이번 봉기는 실패로 끝났지만 진 왕조 통치의 기반을 크게 흔들어 유방(劉邦)과 항우(項羽)가 진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야외 활동 나온 나들이객이 황장욕 산속 보행로를 오르고 있다. 사진/황장욕국가삼림공원 제공


황제가 숨은 골짜기

춘추전국시대에서 진·한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버스가 어느새 황장욕자연보호구 입구에 도착했다. 가이드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을 올라가니 하늘을 가린 고목이 나타났다. 풀이 자라고 꾀꼬리가 날아다니는 4월 초, 나뭇가지에 새순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있었다.


“이건 반용(盤龍)처럼 얽힌 황련목으로 잎과 껍질이 약용으로 쓰인다. 저 위에 껍질이 청회색인 나무는 청단(青檀)나무로 3천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앞에 이파리가 없는 것은 황단(黃檀)나무로 5월 말에야 새순이 돋아 봄을 모른다는 뜻의 ‘부지춘(不知春)’이라고 한다.” 가이드는 보호구에 있는 진귀한 나무를 설명해주었다. 보호구에는 수천 년 넘은 고목이 많았다.


귓가에 울리는 매미 소리에 순간 계절이 뒤바뀐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산 속 지형이 특수해 독특한 국소기후를 형성하기 때문에 이곳의 매미는 3월부터 울기 시작한다. 과거 유방이 매미 울음 소리에 말발굽 소리를 숨겨 추격군을 따돌렸다고 한다.”


길을 따라 매미와 새 소리가 함께하는 가운데, 가이드는 깎아지를 듯한 절벽 앞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절벽 사이로 눈에 잘 띄지 않는 동굴이 보였다. “저기가 유방이 추격을 피해 숨었던 동굴로 ‘황장동’이라고 한다. 이곳은 천연 용암동굴로 내부는 좁고 어둡다. 며칠 동안 이곳에 숨었던 유방은 탈출해 차츰 힘을 비축하고 인재를 발굴해 결국 항우를 이기고 중원을 통일해 한나라를 세웠다.”


링비우희문화원에 있는 ‘항우와 우희’ 동상 사진/중국공산당 링비현위원회 선전부 제공


천고의 절창 ‘패왕별희’

초·한 전쟁의 최후의 전투가 지금의 쑤저우 링비(靈璧)현에서 벌어졌고 이것이 유방과 항우의 운명을 가른 ‘해하전투(垓下之戰)’다. 기원전 202년 유방은 해하에서 항우를 포위했고 한신(韓信)은 열 곳에 매복을 해 초나라 군대의 탈출을 어렵게 했다. 장량은 병사들에게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했는데 이를 들은 항우는 한나라 군대에 포위당해 ‘이미 전세는 기울었다’ 생각하고 막사에서 애절한 비가를 불렀다. 애첩인 우희(虞姬)는 항우의 탈출에 자신이 걸림돌이 될까 걱정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렇게 천고의 절창 ‘패왕별희’가 탄생했다.


황장욕에서 차를 타고 링비현에 있는 우희문화원까지 도착하니, 흰 벽과 검은 기와가 어우러진 고풍스러운 회랑이 보인다. 이곳에는 고금의 많은 문인과 묵객들이 남긴 묵보(墨寶, 서예작품)와 비석이 있어 천고 절창에 대한 애도와 칭송을 전하고 있다. 원내 우희묘에는 자생하는 복사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해마다 봄이 되면 희귀한 흰 꽃을 피운다.


항우는 이곳에 우희를 묻은 뒤, 800 기병을 이끌고 밤새 포위를 뚫고 나왔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우(烏)강에 도착했을 때는 겨우 28명의 기병만 남았다. 항우는 ‘고향의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다(無顏見江東父老)’며 결국 우강에서 스스로 최후를 맞이하고 초한쟁패 역사를 마감했다.


백거이의 명구절 ‘들불에도 다 태울 수 없다’

역사의 수레바퀴가는 당나라로 전진했다. 열 살 백거이는 부모를 따라 쑤저우 융차오구의 푸리지(符離集)로 이주했다. 백거이는 이곳에서 22년 동안 살며, 푸리지 고원의 풀을 ‘야화소부진, 춘풍취우생(野火燒不盡, 春風吹又生)’이라고 묘사해 역사에 길이 남는 명시를 남겼다. 들불을 놓아도 다 타지 않고 봄바람이 불면 다시 돋아난다는 뜻으로 자연의 영고성쇠를 노래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푸리지 하면 유명한 현지 통닭 구이 ‘푸리지 사오지(符離集燒雞)’를 떠올릴 것이다. 110년 전 징후(京滬, 베이징-상하이)철도의 전신인 진푸(津浦)철도가 푸리지에 역을 설치하면서, 육질이 부드럽고 기름지지만 느끼하지 않은 푸리지 사오지가 중국 각지로 퍼져 나갔다.


초·한 문화의 중요한 발원지인 쑤저우에는 후세에 유명한 영웅호걸의 발자취 뿐만 아니라 당시 백성들의 일상생활 흔적도 많이 남아있다. 쑤저우시박물관에는 한나라 때의 ‘청동방(青銅鈁, 술병)’이 소장돼 있다. 출토된 뒤 밀봉 상태를 유지해 아직도 3분의 2가량 액체가 남아 있다. 샘플 채취 검사를 한 결과, 전문가들은 한나라 때 양조된 청주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밖에 박물관에는 수당대운하 하상의 횡단면, 송·금의 자기, 명·청의 서화 등이 전시돼 있다. 역사의 긴 강은 쑤저우라는 역사의 큰 무대를 외면한 적이 없는 듯 하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명인과 영웅들이 차례로 등장해 심금을 울리는 ‘천고의 절창’을 연역했다. 선조들이 남긴 문화의 불씨가 마치 고대 들판의 풀처럼 세월의 시련 속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글 | 차이멍야오(蔡夢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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