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01
산둥성 차오현에서 작업자가 마몐췬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진/CNSPHOTO
산둥(山東)성 차오(曹)현 다지(大集)진에 위치한 촨웨대당한푸생산기지(穿越大唐漢服生產基地)의 1층 의류 전시실에는 바이뎨췬(百迭裙), 명나라 때의 마몐췬(馬面裙) 등 다양한 한푸들이 전시돼 있다. 한 왕훙(網紅,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이 시청자들에게 휴대폰을 통해 상품을 자세히 소개한다. “이 색깔은 매우 고전적인 피콕 블루고요, 조국의 아름다운 강산이 수 놓아져 있어요. 원하시는 분은 키와 사이즈를 댓글로 남겨주시면, 제가 대신 봐 드릴게요!”
한쪽에서는 라이브 커머스가 한창인 가운데, 다른 한쪽에서는 베이징(北京)에서 온 관광객이 전신 거울 앞에서 마몐췬의 허리띠를 조이며 맵시를 살폈다. 옆에 있던 아이가 그녀의 팔을 치면서 뒤에 있는 어린이용 핑크색 배자를 입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차오현은 산둥성 허쩌(菏澤)시에 위치해 있다. 현의 가장 멀리 떨어진 서북부에서 동남부까지 차로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과거 이곳은 관(棺木) 생산으로 유명했다. 통계에 따르면, 차오현에서 일본으로 수출된 관이 일본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2017년 TV도쿄의 <불가사의한 세계> 프로그램에서 차오현의 관 수출 무역이 보도됐다.
최근 궈차오(國潮, 중국풍 트렌드) 열풍이 불면서 한푸가 차오현의 새로운 지주산업으로 떠올랐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차오현의 한푸 매출액은 70억 위안(약 1조 3301억원)을 돌파했다.
한푸 인기 타고 ‘마을형 공장’ 흥성
지난 5~6년 동안 궈차오 열풍이 불면서 청년층, 특히 대도시 Z세대 사이에서 한푸가 인기를 끌었다. 최근 2년 사이 한푸 중에서도 마몐췬이 연령대와 지역을 뛰어넘어 전국적인 붐을 이뤘다. 올해 1~2월 기간 차오현의 마몐췬 매출액은 5억 5천위안에 달했다.
마몐췬은 긴 치마로 명ㆍ청 시대에 성행했다. 치마 양쪽에 주름이 있고 앞면과 뒷면에 사다리꼴로 매끄러운 면이 있어 ‘마몐(馬面)’이라고 한다. 다른 한푸에 비해 마몐췬은 입는 방법이 단순하고 연령과 몸매에 구애받지 않으며 요즘 옷 스타일과도 잘 어울려 다양한 연령층의 소비자가 좋아한다. 차오현에서 생산한 마몐췬으로 라이브 방송을 하는 한 사업자가 인터뷰에서 지난해부터 마몐췬 구매 고객 중 40~50대가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직원 100여 명으로도 모자란다. 춘제(春節) 전 주문이 폭주할 때는 온라인에서 하루 십수만 위안의 매출이 오르기도 한다.” 야오츠싱(姚馳行) 차오현 뤄루옌한푸(洛如嫣原創漢服) 총경리는 주로 대형 풍경지구와 타오바오(淘寶), 더우인(抖音) 등 플랫폼을 통해 주문이 들어온다고 밝혔다.
이곳에서는 원단 문양 디자인에서 제품 판매까지 전 과정을 다 완성할 수 있다. 앞쪽에는 활기 넘치는 생방송 스튜디오가 있고, 뒤쪽은 기계 소리가 요란한 가공 공장이 있다. 레이저 절단기 2대가 원단을 일괄 재단하고, 주름 프레스기 옆에서 작업자들이 평평한 원단을 템플릿 용지의 폴딩 라인을 따라 접어 프레스기에 넣는다. 각기 다른 사이즈 길이의 테이블 앞에서 작업자들은 집중해서 봉제를 하고 가장자리를 감친다. 선반에는 포장된 마몐췬이 몇 미터 높이로 쌓여 있다.
차오현에서는 이런 가공 공장을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집에서 고모와 숙모와 함께 옷을 만들었다. 이후 직원 몇 명을 고용하고 큰 공간을 빌려 기계를 들여놨다. 인터넷 주문이 점점 늘어나면서 3층짜리 가공 공장을 운영하게 됐다. 이후 한푸에 자수 수요가 늘어 자수 전용 공장을 별도로 만들었다.” 위안린(袁琳) 차오현 위안린복식(源琳服飾)유한공사 대표가 사업 초기를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위안 대표의 공장 두 곳에는 1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늘어나는 주문량과 더욱 정교한 디자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공장의 기계를 세 번이나 교체했다.
위안 대표의 경우처럼 차오현의 한푸 산업도 소규모 가내 작업장에서 표준화된 ‘촌 공장(村工廠, 마을형 공장)’으로 전환됐다. 다지진 창순(昌順)자수공장에서 근무하는 42세 왕리(王麗)는 자수기 25개를 주시하다가 자수기에 빨간 불이 켜지면 바로 내려가 자수실이 끊어졌는지 아니면 실이 없는지 살핀다. 자수기 앞 전자 스크린에는 봉황 도안이 있고 수십 대의 자수기가 시끄러운 기계음을 내며 하얀 천 위에 설정된 도안에 맞춰 한땀한땀 박아 넣는다.
“예전에 저장(浙江)성에서 식품 생산, 에어매트 가공 같은 일을 했다. 광저우(廣州) 전자공장에서 일한 적도 있다. 이후 돌아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장이 없어 일자리가 없었다.” 차오현 농촌 여성 대부분은 왕리와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젊을 때 타지에서 일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아이가 커서 학교에 가면 집에서 재봉틀을 돌리다가 나중에는 더 큰 산업단지나 공장에서 일한다. “텔레비전이나 숏폼(짧은 영상 컨텐츠)에서 우리 차오현이 생산한 한푸를 볼 때마다 성취감을 느낀다.”
차오현 한푸의 가장 큰 장점은 배송이 빠르고 가성비가 좋다는 것이다. 일부 특정 디자이너 브랜드 한복점에서 구매하면 품질이야 훨씬 뛰어나겠지만, 종종 원하는 사이즈나 재고가 없을 때가 많고, 때로는 제품 입고까지 열흘에서 길게는 수 개월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일반 대중을 겨냥한 한푸 행사가 점차 늘어나면서 차오현은 잘 갖춰진 생산라인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차오현 전자상거래서비스센터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차오현의 한푸 업스트림 및 다운스트림 기업 수는 2282개, 한푸산업 종사자는 10만 명에 가깝다.
산둥성 차오현의 한푸 생산기지에서 한 고객이 마몐췬을 고르고 있다. 사진/CNSPHOTO
다져진 내공, ‘한푸산업’ 전환 성공
장룽페이(張龍飛) 차오현 전자상거래서비스센터 주임의 사무실에는 차오현 산업 클러스터 분포도가 있다. 인접한 다지진과 안차이러우(安蔡樓)진을 중심으로 세분화된 한푸 산업사슬이 주위의 향진으로 뻗어 있다.
사실 한푸 산업이 발전하기 전 다지진은 중국내 최대 공연 의상 가공 기지였다. 차오현 중심지에서 차를 타고 다지진으로 들어가면 마치 대규모 의류 시장에 온 것처럼 넓은 도로 양쪽에 원단과 디자인 패턴, 컴퓨터 자수 매장, 기계 AS 매장, 물류센터, 한푸 생산기지와 한푸 체험관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장 주임은 “차오현의 상주인구는 130만 명 이상으로 대부분 농업에 종사한다. 공업 기반은 취약해 한때 산둥성에서 노동력을 제일 많이 수출하는 곳이었다. 십수 년 전 다지진의 몇몇 주민이 촬영용 의상과 공연 의상 등 전문 의상을 생산해 각지를 다니며 판촉 행사를 했다. 판로가 있긴 했지만 당시 시장 점유율은 제한적이었다” 라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변화는 이커머스 경제가 부흥하면서 시작됐다. 2009년, 다지진 딩러우(頂樓)촌의 한 주민은 타오바오라는 플랫폼을 알게 돼 온라인 상점을 개설하고 의류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상점은 도시에 있는 오프라인 매장보다 가격이 저렴해 전국 각지의 학교와 사진관에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시 다지진향 당위원회 서기였던 쑤융중(蘇永忠)은 이 상황을 주목했고 그의 추천으로 진(鎮) 정부는 해당 주민의 상점을 ‘다지 전자상거래 경제 중점 기업’으로 지정했다. 다른 마을 주민들도 이를 기반으로 전자상거래 판로를 확대하도록 장려했다.
더 이상 타지로 일하러 나가지 않고도 고향에서 의류 생산과 온라인 판매를 전문적으로 하는 주민이 늘어났고 이는 차오현 전체와 더 나아가 허쩌시까지 영향을 미쳤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멍샤오샤(孟曉霞, 39)는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이었다. 2018년 박사 학위를 받은 남편 후춘칭(胡春青)과 대도시를 떠나 남편의 고향인 다지진으로 귀향에 온라인 판매를 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농촌의 전통 관념으로는 농민 가정에서 박사를 배출하고 대도시에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큰 자랑이었다. 멍샤오샤와 후춘칭 부부의 선택을 놓고 한때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인터넷은 향촌에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이 부부는 ‘시대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속도로를 타고 빠르게 주행’한다고 생각했다. 미술을 전공한 멍샤오샤가 디자인과 가공, 제품 배송을 책임졌고, 학부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남편 후춘칭은 온라인 상점 운영과 판매를 담당했다. 두 사람이 분업하자 사업은 빠르게 활기를 띠었다.
멍샤오샤는 역경을 잘 이겨내는 사람이다. 한번은 시중에서 유행하는 새 원단을 구입했는데, 돌아와 원단을 자세히 연구해보니 자신의 상점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단 판매점에 반품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날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멍샤오샤는 웃으며 그때를 이야기했다. 원단을 그대로 낭비할 수는 없어 원단에 맞춰 공연용 의상을 제작했다. 이 의상은 뜻밖에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지금까지도 판매되고 있다.
2020년 초, 느닷없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집단 대규모 공연은 잇달아 취소됐고 차오현 공연 의상 산업도 갑자기 침체에 빠졌다.
공연 의상은 대부분이 전통 복장이어서 차오현은 한푸에 사용되는 원단과 자수, 날염 기술이 어느 정도 축적돼 있었다. 또 전자상거래와 물류 기반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점점 인기를 얻는 한푸로 눈을 돌리는 사업자가 생겼다.
멍샤오샤는 흐름에 순응해 나갔다. 자신의 미술 전공을 살려 한푸 문양에 있는 중국 전통 문양 화법(畫法)을 배웠다. “화판을 늘 들고 다니면서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그 자리에서 디자인을 스케치했다.” 한푸 문화를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멍샤오샤는 팀원들과 함께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 실크박물관 등을 방문해 관련 지식을 공부했다.
현지 지방 정부도 기업의 구조전환을 유도했다. 현장(縣長)이 진행하는 라이브 커머스를 통해 선두기업은 한푸 인기 상품을 만드는 등 더 많은 기업들이 구조전환 대열에 합류하도록 했다.
2022년 후춘칭이 회장을 맡은 차오현한푸협회가 설립됐다. 협회 설립 목적은 한푸 기업과 정부 관련 부처의 효율적인 소통을 돕고, 기업 간 소통과 한푸 업계 발전을 교류하며, 기업이 발전 과정에서 직면하는 난제 해결을 돕는 것이다.
멍샤오샤는 지난해 인민대학(人民大学)과 인공지능(AI) 기술 프로젝트를 체결하며 “우리는 AI를 이용해 디자인, 제판, 날염 등 과정에서의 기술적 어려움을 해결하고 디자이너의 디자인 연구개발 효율을 높이며 한푸 기업의 생산과 운영 주기를 가속화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멍샤오샤 부부의 회사는 연 매출액 1천만 위안을 달성해 현지 400여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산둥성 차오현 직업교육 중등전문학교와 산학협력을 맺고 전자상거래 인재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온·오프라인 결합으로 산업 효율 향상
2022년 7월, 한푸 업체를 위한 라이브 방송과 교육, 마케팅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안차이러우진(安蔡樓鎮) 유아이창보(有愛倉播) 라이브 방송 기지 책임자 바이멍한(白夢晗)은 협력 파트너와 함께 전체 현 최초로 한푸 체험 전시관을 개설했다. 3천㎡ 규모의 이 전시관은 주변 200여 개 업체의 한푸를 전시하고 있으며 대리 판매 서비스를 제공한다.
바이멍한은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의 대당 불야성(大唐不夜城) 등 중국 고대 문화 요소를 메인으로 한 상업 거리가 모두 여기서 한푸를 구입한다. 오프라인 상점에서 집중 전시를 안 했다면 고객들은 매장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상담해야 해 효율성이 매우 낮았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체험 전시관 발전은 차오현 한푸 산업이 중국 각지의 대형 거래처를 만나는 중요한 창구다. 바이멍한은 뤄양(洛陽), 시안(西安), 상하이(上海)등 여러 도시에 매장을 개설해 차오현 한푸점을 수요 일선으로 확대해 고객의 구매 편의성을 높일 계획이다.
차오현 정부는 100억 위안을 투자해 다지진에 한푸산업단지를 건설해 기업이 자체 브랜드를 구축하도록 장려하고 한푸산업이 집중적으로 성장하도록 했다. 또 한푸산업의 지식재산권에 대한 강력한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현지 유관부처는 중국 차오현 지식재산권 신속보호센터를 설립해 특허 신청 처리 기간을 기존의 180일에서 10일로 대폭 단축했다.
글 | 리자치(李家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