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4
복(福) 문화는 중국 민간에서 사랑받는 풍습이다. 5천 년 중화 문명을 관통하고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중국인의 바람과 미래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 음력 설인 춘절(春節)이 다가오면 중국인들은 대개 문에 커다란 ‘복(福)’ 자를 붙이며 새해에도 생활이 풍요롭고 건강하며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오복임문(五福臨門)’에서 ‘오복’이란 장수, 부귀, 강녕, 호덕(好德), 선종(善終)으로 ‘오복임문’은 단순한 고사성어가 아니라 문화적 함의와 사회 가치관이 담겨 있다.
‘복’ 자의 기원과 함의
어떤 이들은 ‘복’ 자 자체에 농사지을 땅, 먹을 식량, 입을 옷이 있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글자 모양으로 봤을 때 이런 주장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복’ 자에 부합한다. 그렇다면 ‘복’ 자의 진정한 함의는 무엇일까? ‘복’ 자의 근원을 거슬러올라가 ‘복’ 자의 기원에서 답을 찾아보자.
갑골문에서 ‘복’ 자는 ‘두 손으로 술을 들어 하늘에 바치는’ 형상으로 복의 본래 의미는 고대인이 집안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과 술을 신령에게 경건하게 바치면서 복과 가호를 기원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감사와 경건, 나눔의 의미가 있다. 금문(金文) 시기에 ‘복’ 자의 획수가 줄었다. 이때의 ‘복’ 자는 두 손을 뜻하는 획이 사라졌지만 주요 의미인 ‘시(示)’와 ‘유(酉)’는 유지됐다. 전자(篆字) 초기에는 ‘복’ 자의 구조가 한층 단순하고 안정감이 더해졌고 필획도 둥글게 변해 ‘네모 글자(方塊字)’의 구조가 더 명확해졌다. 이때부터 ‘유(酉)’ 자가 ‘복(畐)’ 자로 와전됐다. ‘복’ 자에는 가득하다는 ‘만(滿)’의 뜻이 있어 ‘시(示)’ 자와 결합해 풍성한 진상품을 선조나 신령에게 바치면서 보호를 바라는 뜻이 되었다. 예서 시기 ‘복’ 자의 구조는 변하지 않았지만, 서예 쪽에서는 자형이 더 네모 반듯해졌다. ‘복’ 자에서 ‘복’ 안의 ‘구(口)’와 ‘전(田)’이 더 직선적이고 네모 반듯해졌고 ‘시’ 자는 조금 변형돼 해서체의 ‘복’ 자의 기반이 다져졌다. 해서체에서 ‘복’ 자의 ‘복’은 예서의 형태를 따랐고 서예의 ‘구’와 ‘전’만 약간 변화가 있었다. 전체적인 ‘복’ 자를 보면 왼쪽이 오른쪽보다 좁아 쓸 때 더 편리해졌다. 이 ‘복’ 자에는 옛사람들이 전답을 얻어 배고픔과 추위를 해결하고자 하는 바람과 신령의 보호를 바라는 소원이 담겨 있다.
중국 전통문화에서 ‘오복’은 행복한 삶의 필수 요소다. 인생의 다양한 모습을 대표하며 행복하고 아름다운 완벽한 삶을 구성한다. 장수는 ‘오복’ 중 제일 먼저 손꼽힌다. 장수와 만복을 상징한다. 중국 전통문화에서 장수는 인생의 큰 행운으로 여겨지며 가족의 번영과 개인의 장수와 만복을 상징한다. 부귀는 물질과 정신이 모두 풍족한 것을 말하며 많은 사람이 추구하는 인생 목표다. 강녕은 심신의 조화와 균형을 강조하며 현대 생활에서 중요성이 두드러지고 있다. 선덕은 개인의 품성 수양과 도덕의 완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는 초석이다. 선종(善終)은 개인의 생명에 대한 존중과 가족 사회에 대한 책임으로 원만하고 여한 없는 인생을 상징한다.
춘련에 나타난 ‘복’ 문화
‘복’ 문화는 춘절 기간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복 자를 붙이는 풍습은 주(周) 나라 때부터 있었는데, 여기에는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주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하고 주나라를 건국한 뒤 강태공이 봉신 대전을 주관해 전투에서 사망한 문·무관을 신으로 봉하게 됐다. 그런데 그의 부인 예(葉) 씨가 와서 신위를 요구했다. 일반인이라면 봉신의 자격이 없지만 그녀는 자신이 강태공을 집에서 쫓아냈기 때문에 그가 위수에서 낚시를 하다 문왕을 만났으므로 자신도 천하의 대세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강태공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가난의 신(窮神)으로 봉하면서 복이 있는 곳에는 갈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난의 신을 피하기 위해 해마다 설이 되면 대문에 복 자를 붙였다.
‘복’자를 거꾸로 붙이는 것도 오랜 역사가 있다. 전해지는 말로는 명(明) 태조 주원장(朱元璋)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은 천성이 포악해 자신의 뒤를 이을 자손에게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 많은 공신들을 처단했다. 공신들을 처단하기 전 ‘복’ 자를 암호로 삼았다. 마음씨가 착한 마(馬) 황후는 자신이 주원장을 말릴 수는 없지만 이 재난을 피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래서 도시 안의 백성들에게 날이 밝기 전에 집에 ‘복’ 자를 붙이라고 명령했고, 하룻밤 사이에 집집마다 문에 ‘복’ 자가 붙었다. 글을 모르는 백성은 ‘복’ 자를 거꾸로 붙였다.
이튿날 주원장은 살수들에게 행동을 개시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살수들은 어리둥절했다. 성안의 집집마다 복 자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거꾸로 붙은 것도 있어 살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원장에게 보고했다. 크게 화가 난 주원장은 ‘복’ 자를 거꾸로 붙인 곳을 다 참수하라고 명령했다. 이 소식에 마 황후가 다급하게 간언하기를 “폐하께서 사람을 보내 알아보시니 백성들이 문에 복 자를 거꾸로 붙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복이 왔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백성들이 폐하를 백성의 복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주원장은 마 황후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풀어주라고 명령했다. 이후로 사람들은 ‘복이 왔다’는 뜻으로 ‘복’ 자를 거꾸로 붙였다.
중국에서 복 문화는 오랜 역사가 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복 문화는 문화의 계승일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사람들의 바람과 추구다. 복 문화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이고, 열심히 노력하며 나아가도록 독려한다. 자신의 노력을 통해 물질과 정신의 풍요로움을 추구해야 자신의 인생 가치를 실현할 수 있고 비로소 행복을 얻을 수 있다.
글|칭산(靑山)
사진 | 인공지능(AI) 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