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01
가구브랜드 핀우류싱(品物流形)은 중국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시에 위치한 유명 디자인 회사로 2004년에 설립됐다. 이 회사를 반석에 올린 주력 디자이너들의 조합이 독특하다. 창립자이자 대표 디자이너인 중국의 장레이(张雷)와 독일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존(Christoph John), 세르비아 디자이너 조바나 장(Jovana Zhang)이 주인공이다. 남성인 장레이와 크리스토퍼 존은 이탈리아 도무스 아카데미에서 함께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했다. 여성인 조바나는 가구 인테리어 디자인 전문이다. 이렇게 국적도 전공도 서로 다른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항저우에서 만나 의기투합하게 됐을까?
일단 핀우류싱 디자인그룹의 이력이 화려하다. 그들의 작업은 가구디자인, 인테리어디자인, 제품 디자인을 가리지 않으며 이탈리아 밀라노 가구페어 등 20여 개국의 굵직한 국제 디자인어워드를 휩쓸었다. 그리고 이탈리아 밀라노, 네덜란드, 프랑스, 미국, 중국에서 여러 차례 전시회도 열었다.
그들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묘한 부분이 있다. 독일과 세르비아 등 유럽 국적의 디자이너들이 참여한 작업이라 다분히 서양 색채가 짙을 거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그들의 작업은 동양전통에 기반한다. 그들이 참여한 전시 주제도 그러하다.
핀우류싱이 출시한 아동 콘셉트 디자인 가구와 아웃도어 가구 시리즈
‘From 위항(餘杭, 항저우 북부에 있는 구)’과 ‘융합(融)-핸드메이드 인 항저우(Handmade In Hangzhou)’ 전시에서 그들은 항저우의 전통수공예를 분석해 현대 디자인과 융합시켰다. 중국의 전통재료인 대나무, 실크, 진흙, 동(금속), 종이를 현대 디자인에 접목시킨 이 전시에서 그들은 대나무를 베이스 재료로 선택해 디자인을 풀어냈다.
그들이 주목한 항저우의 전통적인 재료방식은 ‘대나무 엮기’였다. 여기서 그들은 의자로써 실용적인 측면을 고려해 대나무의 무게와 강도를 연구하며 보기에는 무겁지만 실제로는 가벼운, 그리고 단단한 의자를 만들어 냈다. 독일 디자이너 크리스토퍼는 독일의 엄격한 계산시스템을 도입해 사람이 앉아도 안전에 걱정없는 대나무로서 최적의 하중을 측정해냈다.
또 그들은 대나무 섬유를 활용해 의자를 디자인했다. 그들은 천연 대나무를 종이펄프로 생산하고 있는 대나무 제지 마을의 오래된 전통방식을 주목하고 이를 의자의 주재료로 사용했다. 그들은 대나무 펄프로 만든 종이를 네가지 파스텔 색상으로 염색해 현대적 디자인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렇게 만들어진 의자들은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항저우의 전통재료를 현대 디자인으로 변모시킨 그들의 시도는 중국 전통문화의 중심지인 항저우를 재조명했고 중국 전통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했다.
닥종이와 대나무 등 천연 소재로 제작한 핀우류싱의 가구와 소품들
이후 그들은 대나무 섬유로 만든 종이를 활용해 다양한 형태의 실험적 디자인을 선보였다. 대나무섬유종이는 의자를 제작해 이미 내구성이 증명됐기 때문에 꽃을 담는 꽃병으로도 디자인될 수 있었고 조명으로도 변용이 가능했다.
이후 핀우류싱은 대나무 외에도 다양한 중국의 전통재료를 가져와 현대 디자인과 융합하는 시도를 계속했다. 전통 옥을 테이블 상판 재질로 사용한 작품은 이른 아침 나뭇잎에 모이는 이슬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들은 따뜻한 느낌을 주는 재료인 나무와 영롱한 도자기의 대비, 그리고 현대적인 형태와 옥의 느낌이 나는 도자기 재질의 대비에 주목했다.
닥종이를 붙여 만든 의자 역시 그렇다. 나무껍질에서 추출한 닥종이 화선지는 내구성이 견고하기로 유명하다. 여기에 천연아교를 이어붙이면 사람이 앉아도 끄떡없는 튼튼한 물성이 되는데 이것을 의자의 소재로 이용하면 모던한 디자인이 완성된다. 중국의 고전적인 말굽모양에서 착안한 이 의자는 종이로 만들었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단단한 이음새가 돋보인다.
전통 재료 연구에 기반한 전시 디자인과 설치 예술
그들은 또 전통재료를 이용한다고 해서 전통 디자인에만 얽매이지 않는다. 핀우류싱의 궁극적인 목적은 ‘대중성’ 그리고 ‘미래’다. 그들은 전통의 보존을 위해 디자인하지는 않지만 전통을 해체하고 분석연구해 미래 디자인의 영양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어쩌면 자신들의 디자인이 완성된 후 그 안에서 중국 전통문화의 흔적을 찾지 못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이 여전히 추구하는 것은 ‘중국적인 기질’로 중국문화가 국제적으로 큰 영향력을 갖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핀우류싱의 브랜드 이름은 중국의 5대 경전 중 하나인 <역경>의 첫 구절에서 착안했다. “운행우시(雲行雨施, 구름이 움직여서 비를 베푸니), 품물류형(品物流形, 만물이 형상을 이루게 된다).” <역경(易經)>은 <주역(周易)>으로도 불리는데 이 경전은 자연현상의 원리를 논한 중국 고대의 우주철학서다.
핀우류싱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이 바로 이 구절에 담겨있다. 구름이 움직여 비를 베푸는 것은 바로 자연의 흐름이다. 핀우류싱 역시 자연에서 온 재료를 이용해 디자인에 적용했다. 그리고 그들은 의자, 조명, 테이블 등 가구의 영역을 가리지 않고 디자인하며 만물의 형상을 이룬다.
독일과 세르비아 디자이너가 포함된 이 다국적 디자인 그룹의 이름이 가장 전통적인 경전 <역경>에서 유래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평소 중국문화를 동경했던 그들은 머나먼 중국의 항저우까지 찾아와 장레이와 함께 스튜디오를 꾸렸고 가장 중국적인 소재를 서양의 조형언어로 선보이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 독일, 세르비아 디자이너가 항저우에서 선보이는 ‘만물의 형상’에 주목해보자.
글|황윤정(한국) 사진 | 핀우류싱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