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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노력과 글로벌 협력...중국, 세계 최대 인터넷 시장으로 성장

리샤오둥 중국인터넷협회 부이사장 인터뷰


2024-06-14      

리샤오둥 중국인터넷협회 부이사장, 푸시 싱크탱크 창립자·주임 사진/인터뷰이 제공

 

1994년 4월 20일은 중국 인터넷 역사에서 중요한 날이다. 중국은 64K 국제 전용선을 통해 인터넷에 처음 접속했다. 그 뒤로 30년이 흐른 지금, 세계에서 70여 번째로 국제 인터넷에 연결한 국가인 중국은 세계 최대 인터넷 시장으로 성장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터넷 이용자와 모바일 인터넷 이용자를 보유하고 가장 활발한 인터넷 기술과 응용 혁신 생태계를 갖추게 됐다.


2024년은 TCP/IP를 기반한 인터넷이 탄생한 지 30주년이자 중국이 국제 인터넷에 전반적으로 연결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이렇게 중요한 이정표를 맞아 중국이 국제 인터넷에 연결하게 된 배경과 발전 과정을 알아보고자 본지는 리샤오둥(李曉東) 중국인터넷협회(ISC) 부이사장이자 푸시(伏羲) 싱크탱크 창립자·주임을 인터뷰했다. 그는 국제 도메인과 전자우편 국제 표준 제정을 추진했고 ‘.cn’이라는 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 네임 설정 등 핵심 사업을 추진하고 완료했다. 중국인터넷박물관과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 베이징협력센터도 설립해 중국의 인터넷 발전과 관리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인터뷰에서 리샤오둥 부이사장은 “중국의 인터넷 발전 30년 동안 가장 귀중한 가치는 많은 인터넷 종사자들의 과감한 혁신과 도전 정신”이었다고 감개무량한듯 말했다. 리 부이사장은 또 중국 인터넷 30년의 득실과 경험을 전면적이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종합해야 하며 우수한 개인과 기업이 거둔 성과와 기여를 높이 평가해 인터넷 과학연구 기관과 기업에게 기술과 연구 지원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거를 잘 총결해야 보다 효과적으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


중국 최초로 문을 하나인 베이징 스화카이(實華開) 인터넷 카페


월간 <중국>: 2024년은 중국이 국제 인터넷에 연결한 30주년의 해다. 당시 중국은 어떤 상황에서 국제 인터넷에 연결하게 됐는가?

리샤오둥: 업계에서는 1969년 시작된 아파넷(ARPAnet)을 인터넷의 시초로 본다. 1974년 발표된 TCP/IP 기술은 컴퓨터 네트워크 간 상호 연결을 현실화했다. 인터넷은 이후 수십 년 동안 빠르게 발전해 1990년대 이르러 웹 기술과 브라우저 등이 속속 등장했고 통신, 자료 검색, 고객 서비스 등 분야에서 막대한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중국은 방관자에 불과했다.


중국의 인터넷 접속에 대한 요구는 과학 및 학계에서 비롯됐고 추진됐다. 중국이 공식적으로 인터넷에 연결한 날은 1994년 4월 20일로 알려져 있지만 그전부터 중국에서는 인터넷 연결을 위해 발로 뛴 사람들이 있었다. 1989년 왕싱강(王行剛) 연구원은 훗날 ‘중국 국가 컴퓨터 및 네트워크 시설(NCFC)’이라고 불리는 프로젝트에 TCP/IP 기술 경로를 설정했다. NCFC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중국과학원과 칭화대학(淸華大學), 베이징대학(北京大學)이 64K 광대역 근거리 통신망(LAN)을 구축해 칭화대학 캠퍼스 네트워크, 베이징대학 캠퍼스 네트워크, 중국과학원과 베이징 중관춘(中關村)의 40개 연구원을 하나의 망으로 연결해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공유했다. 이 네트워크는 해외 선진 지식과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해외 논문 다운로드나 이메일 발송, 학술 교류에 주로 사용됐다. 당시 인터넷 속도로는 논문 한 편 다운로드 하는데 하루나 이틀이 소요될 정도로 매우 느리고 네트워크도 불안정해 전송 중 끊기는 현상이 빈번했다. 그러나 해외 서적을 몇 년이나 지난 ‘복사본’으로 봐야 했던 우리에게는 매우 큰 발전이었다.


중국의 국제 인터넷 연결이라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인터넷 1세대인 후치헝(胡啟恆) 원사와 첸화린(錢華林) 연구원은 미국을 여러 차례 방문해 교류하면서 중국과학원이 국제 인터넷에 연결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해외 과학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우여곡절을 겪으며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1994년 4월, 당시 중국과학원 부원장이었던 후치헝은 특별히 미국을 찾아 인터넷을 주관하던 미국국립과학재단(NSF)을 방문해 중국 측 입장을 재차 설명하고 국제 인터넷 연결을 신청해 마침내 승인을 받았다. 같은 달 중국은 처음으로 국제 인터넷에 접속했고, 마침내 인터넷 방관자에서 참여자로 공식 전환해 세계 인터넷 가족의 일원이 됐다.


“인터넷이 중국에 온 것은 팔인교의 화려한 행렬이 아닌, 오솔길처럼 좁고 험난한 길을 거쳐온 결과다.” 이는 후치멍 원사의 말이다. 중국이 세계 인터넷 연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난관에 부딪혔고, 인터넷이 중국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수많은 해외 학자와 전문가, 과학기술계 인사들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했다.


1990년대 중국의 대학교 내 컴퓨터실 모습

 

월간 <중국>: 그동안 인터넷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에 나타난 뚜렷한 변화는 무엇인가?

리샤오둥: 내가 인터넷 업계에 종사한지 30년이 다 돼 간다. 내가 관찰한 바로 인터넷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큰 곡선처럼 변했다. 처음에는 열광했지만 이제는 무감각해졌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인터넷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차 흥분했다. 놀라운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신기하게 생각했고 사람들의 대화 주제에 늘 인터넷이 오르고 내렸다. 인터넷 경제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했고 소위 인터넷 기업이라고 하면 이용자가 적어도 투자자의 호감을 샀으며 과학기술과 인터넷 관련 기업 주가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하지만 이러한 높은 관심과는 별개로 인터넷 본질을 이해하는 사람은 적었고 이 시기 인터넷은 중국인의 생활에 깊이 스며들지 못했다.


2001년 인터넷 거품이 꺼지자 관련 기업들은 상업 모델이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생존을 위해서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찾아야 했다. 2003~2004년에 일부 기업은 어떻게 인터넷을 전통 산업에 결합할지 모색했고 경제 사회 발전에 녹아들 수 있는 새로운 상업모델을 주도적으로 찾아 나섰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인터넷을 언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인터넷 존재에 ‘무감각’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터넷은 이미 우리 삶과 사회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공기처럼 어디에나 있고 일상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물론 이것은 수많은 과학 연구자와 엔지니어의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과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용자가 안전하고 빠르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기술적 지원을 해 주었다. 공기 질이 좋을 때는 대기 오염을 거론치 않고 교통 체증 발생시 교통경찰의 필요성을 떠올리듯, 현재 사람들이 인터넷에 대해 ‘무감각’한 것은 인터넷이 안전하고 안정적이며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일을 차질없이 잘하고 있다는 것으로 인터넷 종사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자부심이다.


중국과학원 컴퓨터 네트워크 인포메이션 센터 2호동 앞에 걸려있는‘중국 인터넷 탄생지’ 동판

 

월간 <중국>: 전 세계 인터넷 발전에서 중국 인터넷 업계의 지위와 영향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리샤오둥: 중국은 더 이상 세계 최대 인구의 국가는 아니지만, 인터넷 이용자 수는 여전히 세계 1위고, 디지털 경제 총량은 세계 2위다. 이는 중국의 인터넷이 전 세계 최대 인터넷 시장으로 성장했고, 전 세계 최대 인터넷 이용자 수와 모바일 인터넷 이용자 수를 보유하고 가장 활발한 인터넷 기술과 응용 혁신 생태계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70여 번째로 국제 인터넷에 연결한 국가인 중국이 30년 만에 이런 성과를 거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인터넷과 디지털 정보 업계가 거둔 성과를 인정함과 동시에 선진국과의 격차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국민경제 내에 디지털경제가 주도적인 위치로 GDP의 60% 이상을 차지하지만, 중국 디지털 경제의 전체 규모는 미국의 40% 수준에 그친다.


월간 <중국>: 앞으로의 10년, 중국이 이러한 격차를 줄이고 앞서 나갈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인가?

리샤오둥: 첫째, 글로벌 인터넷 기술 기준 제정에 대한 기여도를 높여야 한다. 우리는 전 세계의 인터넷 기술 기준 제정 분야의 데이터를 조사해보니 중국의 기여도는 5% 미만이었다. 앞으로 중국이 쫓아가던 입장에서 추월해 나아가고 싶다면 기술 측면에서 인터넷 기술의 호연호통과 표준화를 적극 추진해 인터넷 기초 기술의 기여도를 높이고 이를 통해 관련 산업을 혁신하고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둘째, 디지털 문명 시대에 발전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당한 진전속에서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디지털 격차’가 분명 존재한다.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분야 발전의 불균형, 규칙의 미비, 불합리한 질서 등 문제가 날로 부각되고 있다. 개인 프라이버시나 지식재산권 침해, 사이버 범죄 등이 종종 발생하며 네트워크 감청이나 공격, 사이버 테러 등이 전 세계적인 공해가 됐다. 앞으로 30년에서 40년, 50년까지 ‘어떻게 디지털 평등을 통해 문명 공유를 실현할 수 있을까’ 이것이 중국이 추격자에서 선두주자로 전환하는데 중요한 핵심 과제이자 중국이 세계 인터넷 사업에 새로운 기여를 할 수 있는 시대적 기회다.


월간 <중국>: 앞으로 중국의 인터넷 발전은 어떤 기회와 도전에 직면할까? 주목해야 할 주요 현황과 추세는 무엇인가?

리샤오둥: 인터넷은 인프라로서 네트워크 연결, 웹사이트 연결, 데이터 연결의 3단계를 거쳐 발전해 왔다. 향후 10년 동안 데이터 상호 연결이 중국과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 가치 요소를 실현하는데 중요한 핵심이 될 것이다. 현재 데이터 가치가 날로 부각되고 있고 개인, 기업, 국가의 데이터 보안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따른다. 개인과 기업의 데이터 보안에 대한 우려가 자칫 과도한 데이터 보호로 이어져 데이터 유통을 방해하고 각각의 ‘데이터 아일랜드(정보단절)’를 형성할 수 있다. 데이터 소유권과 보유권을 존중하고 데이터 보안과 데이터 준법 보장을 전제로 데이터 자원의 호연호통과 데이터 요소 시장 발전을 어떻게 촉진하느냐가 앞으로 10년 동안의 중요한 과제다.


글 | 황장친(黃江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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