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16 글|란산촨(冉珊川)
쑤허
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열심히 싹사울나무를 심어 자연을 다시 초록빛으로 물들이고 싶습니다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아라산멍(阿拉善盟) 어지나치(額濟納旗)의 사막에는 묵묵히 나무를 심어온 노인이 있다. 57세에 자발적으로 조기 퇴직한 후 편안한 노년의 삶을 마다하고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 사막화가 가장 심한 헤이청(黑城)지역에서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나무를 심어온 것이다.
그는 바로 아라산멍 정협(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을 역임한 쑤허(蘇和)다. 쑤허는 “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열심히 싹사울나무를 심어 자연을 다시 초록빛으로 물들이고 싶다. 생명만큼 중요한 것이 자연 생태계이기 때문에 후대에게 강한 생태의식을 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중대한 결심을 내리다
9세기에 세워진 헤이청은 현존하는 가장 온전하고 가장 큰 규모를 가진 고대 실크로드 유적 중 하나이다. 과거 이곳은 오아시스였지만 기후변화와 빈번한 전쟁, 그리고 과도한 개발로 인해 환경이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결국 사막화 때문에 소멸할 위기에 처했다.
쑤허는 1992년 어지나치에서 기장(旗長)으로 재직하던 때부터 헤이청에 나무를 심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건이 여의치 않아 결국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그러다 2000년, 당시 아라산멍 정협 주석을 맡고 있던 그는 베이징(北京)에서 세계적인 사막화 퇴치 전문가 도야마 세이에이(遠山正瑛) 박사를 만나게 된다. 그때 당시 이미 수년간 중국에서 사막화 퇴치에 힘쓰고 있던 도야마 박사에게 쑤허는 헤이청 주변지역의 사막화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어지나치 방문을 요청했다. 2001년부터 2002년간 도야마 박사는 두차례 헤이청을 방문하여 주변 사막지대에 내건성이 강한 싹사울나무 4000 그루를 심었다. 하지만 관리와 급수 부족으로 대부분 죽고 말았다. 싹사울나무가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누군가가 이곳을 지키며 계속 관리해야 했다. 하지만 삭막하고 모래바람이 날리는 황무지에 남아 지키겠다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 때 쑤허는 생각했다. 이곳에 남아 싹사울나무를 돌보면서 나무로 키워내겠다고.
2004년, 조기 퇴직을 선택한 쑤허는 아내와 함께 어지나치 사막에 터를 잡고 사막과의 고독한 싸움을 시작했다.
난관을 극복하다
사막 정중앙에 위치한 헤이청 유적지는 한여름 기온이 40도를 넘고 연간 강수량이 50mm도 안되는 곳이다. 쑤허 부부의 거처는 가장 가까운 읍내에서 30km 이상 떨어져 있으며 도로 상황도 매우 좋지 않다. 이들은 매달 한번씩 읍내에 나가 생필품을 구입했다. 첫 두해 동안 부부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나무를 심으며 간단한 국수로 끼니를 때웠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이 중 10%만 겨우 살아남았다.
헤이청은 정녕 나무를 심을 수 없는 곳이란 말인가. 쑤허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수십 년간 사무실에서만 근무했던 쑤허는 사실 조림기술과 묘목특성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했다. 그는 전문가를 찾아가 지식을 전수받고, 대량의 자료를 읽어가며 이론을 공부했다.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실험을 통해 드디어 효과적인 내건성 재배기술을 알아냈다.
“사막에 나무를 심으려면 물이 가장 중요하다” 쑤허는 오래 전 버려진 우물을 찾아내 10여 일에 거쳐 쌓인 모래를 파냈다. 다행히 우물 속에 충분한 물이 있었다. 부부는 나무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우물에서 물을 길어 차로 임지까지 실어 날랐다. 싹사울나무 한 그루당 20kg의 물 두통씩을 뿌리자 생존율이 70%까지 올랐다.
하지만 싹사울나무 숲이 점점 더 넓어지면서 우물 하나로는 부족했다. 급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쑤허는 2012년 관정팀을 불러와 20m 깊이의 우물 7개를 파고 펌프를 설치해 임지 관수 효율을 높였다. 또한 물을 절약하기 위해 펌프에 연결해 묘목 뿌리 부분에 바로 관수하는 특별한 호스를 발명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일이 훨씬 수월해졌고 생존율도 90%로 높일 수 있었다.
“사막에 나무를 심는 것보다 심은 후 확실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관리하는데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 노부부는 서로를 북돋으며 불타는 뙤약볕 아래에서 나무에 물을 주고 하루도 빠짐없이 순찰을 돌았다. 나무를 심을 때마다 쑤허는 낡은 옷으로 둥치를 세심히 감쌌다. “이렇게 하면 토끼나 쥐가 갉아먹지 못한다. 나무도 살아있는 생명이고, 나에게는 모두 친자식 같다. ”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다
조림 초기에는 일손이 부족할 때 주변의 목축민들을 고용하기도 했다. 쑤허는 육묘, 식수, 관리, 해충 퇴치, 쥐 퇴치, 야생토끼 방지 등 수년간 쌓은 노하우를 아낌없이 이들에게 전수했다. 목축민들은 조림을 도우며 수익도 얻고 싹사울나무 재배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현지 목축민 만두거르러(滿都格日勒)는 “어르신은 우리에게 집 주변에 심으라고 싹사울나무 묘목을 주셨다. 싹사울나무가 잘 뿌리내리자 종용(苁蓉) 씨앗을 주시면서 뿌리쪽에 심으라고 하셨다. 귀한 약재인 종용 재배를 통해 추가적인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 경제적 이득이 생기니까 자발적으로 싹사울나무 심기에 나서는 목축민들이 더 많아지고 환경도 점점 더 좋아졌다”고 전했다.
그 후 쑤허의 육묘원은 조림에 필요한 묘목 외에 주변 목축민들에게 무상으로 매년 3만 그루의 묘목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쑤허는 빈곤가정에게 묘목을 제공하면서 단 한가지 조건을 요구했다. 즉 싹사울나무가 잘 자라면 한 사람당 세 가정씩 식수활동에 동참시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생태계를 보호하는 동시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수익을 안겨줄 수 있다면서 “나 혼자로는 한계가 있어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해야 생태계의 근본적인 개선을 이룰 수 있고 주민들도 더 나은 생활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2018년 9월, 쑤허는 작업 중 제초기에 말려들어가는 사고를 당한다. 당뇨병이 있어 상처가 아물지 않아 결국 절단수술을 받았다. 의족을 착용하고 재활에 성공한 후 그는 다시 헤이청으로 돌아와 조림을 이어가며 사막의 푸른 빛을 지켜냈다.
2021년 6월 20일, 쑤허는 지병으로 인해 74세 나이에 별세했다. 지난 17년간 쑤허 부부는 총 9만 그루의 싹사울나무를 심었으며, 너비 500m, 길이 3km, 면적 233ha의 싹사울나무 숲을 조성하였다. 그의 영향을 받은 약 300개의 목축민 가정이 이를 이어받아 계속 싹사울나무를 심고 있으며, 아라산멍에서 가장 큰 면적의 인공 싹사울나무 숲을 완성했다.
쑤허는 이제 하늘의 별이 되었지만 그가 피와 땀을 쏟은 ‘오아시스’는 영원히 헤이청에 남아 조국의 북방을 수호할 것이다.
글|란산촨(冉珊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