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윌리엄 브라운(William Brown)은 ‘감동중국(感動中國) 2019년 인물’이자, 푸젠(福建)성 최초로 중국 영주권을 취득한 외국인이다. 그는 1988년에 중국에 왔으며, 샤먼(廈門)대학교 MBA센터 최초의 외국인 교수가 되었고 30여 년을 중국에서 지냈다. 주변에서는 그를 ‘라오판(老潘)’이라 부른다. 라오판은 1994년 처음으로 시짱(西藏, 티베트)을 방문했는데, 당시 시짱의 낙후된 모습은 그를 낙담케 했다. 25년 뒤 라오판이 다시 시짱을 방문했을 때, 시짱의 변화는 그를 감탄케 했고 시짱 미래에 대한 희망을 느끼게 했다. 사진/ 라오판 본인 제공
1994년, 중국 변경 지역의 개혁 수준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차를 타고 4만km에 가까운 중국 일주여행을 했다. 그 먼 여행에서 내가 가장 고대한 것은 서남 변방에 있는 시짱자치구였다. 어린 시절 나는 제임스 힐튼이 1933년 발표한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을 읽은 적이 있는데, 책 속에는 높은 산꼭대기에 있는 지상 낙원이 묘사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언젠가 시짱에 가보기를 꿈꿨다.
우리 승합차가 해발 5231m의 탕구라(唐古拉)산맥을 헐떡거리며 올라가 시짱에 입성하려고 할 때, 인근 산봉우리에 번개가 치더니 우박이 우리 차를 덮쳤다. 설마 신이 내 어릴 적 꿈을 실현 못하게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94년, 라오판의 아들과 짱족 목축민의 기념사진 사진/ 라오판 본인 제공
결국 우리는 시짱 북쪽의 안둬(安多)현에 도착했고, 야크 똥을 태워 난방을 하는 작은 집에서 하루 묵게 됐다. 다음날 아침, 키도 크고 덩치가 좋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시짱 사람 네 명이 내게 다가왔을 때 나는 무척 놀랐다. 그들은 그저 활짝 웃으며 내 아들의 금발머리를 쓰다듬으며 더듬거리는 표준말로 “사진 찍어도 돼요?”라고 수줍게 물었다.
나는 시짱과 시짱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당시 시짱의 열악한 생활여건과 빈곤한 상황은 나를 우울하게 했다. 서방은 시짱을 신비로운 샹그릴라로 묘사했지만 현실은 참혹했던 것이었다. 이 높은 해발에는 나무가 없고 동식물도 거의 없어 시짱 사람들 조차 생활하기 힘들었다.
시짱은 외진 곳에 있는데다 해발은 높고 기후가 열악한데, 과연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25년 후 시짱을 다시 방문했을 때 나는 희망을 보았다.
2012년 5월 10일, 이시단정(중앙)의 미국 캔자스대학교 석사과정 졸업식 사진/ 라오판 본인 제공
시짱의 상전벽해 변천사
2019년, 중국 2020년 빈곤퇴치 프로젝트 목표 달성 현황을 현지 탐사하기 위해 나와 샤먼대학교의 동료는 차를 끌고 여정이 2만km에 달하는 중국 일주에 나섰다. 길을 따라 지나가는 지역마다, 시짱의 가장 외진 현(縣)에서도 볼 수 있는 변화는 우리에게 혀를 내두르게 했다.
시짱의 솽후(雙湖)현은 평균 해발 5000여 m로, ‘겨울과 겨울 같은’ 이 두 계절만 있다. 그리고 공기 중에 산소가 희박해 ‘생명 금지구역’으로 불린다. 솽후 11만여 ㎢의 땅에는 겨우 1만4398명만이 살고 있다. 주민들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현지 정부는 빈곤한 목축민을 위한 시짱식 가옥을 짓고 3억2000만 위안(약 548억원)을 들여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해 마을 주민 3000명에게 전기를 공급했다.
나취(那曲)시 중국공산당 위원회 부비서장이자 솽후현 부서기인 량난위(梁楠鬱)는 이렇게 말했다.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는데 1인당 10만 위안 정도의 자본금이 들었다. 정부가 이렇게 하는 것은 오로지 솽후 주민들이 전기를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량난위는 베이징(北京) 페트로차이나(中國石油) 본부에서 온 원장(援藏, 시짱돕기) 간부로, 주요 업무는 ‘생명 금지구역’의 사람들이 빈곤에서 탈출하도록 돕는 것이다. 2002년 이래 페트로차이나는 이미 4억 위안을 들여 솽후현에 110건의 빈곤지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칭짱(青藏)고원은 아시아의 여러 강들의 발원지이다. 각 초원의 복구에는 종종 몇 십년이 걸린다. 고원의 취약한 생태 체계를 보호하기 위해 현지 정부는 시짱 사람들의 과학적 방목을 유도하고 생태계 보상 일자리를 마련했다.
현재는 정부투자, 시짱 건설인재들의 노력과 페트로차이나 등의 지원으로 솽후 짱족(藏族, 티베트족) 주민들은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되었고, 평균수명도 늘어났다.
라오판과 이시단정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사진/ 라오판 본인 제공
지식이 운명을 바꾸다
진정한 시짱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룩하게 한 것은 정부의 교육에 대한 투자이다.
라싸(拉薩)에서 나는 샤먼대학교 역사상 최초의 짱족 졸업생인 이시단정(益西旦增)을 만났다. 그는 인구 200명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시단정은 현재 시짱대학의 부교수로 재직중이다. 샤먼대학교를 졸업한 뒤 이시단정은 미국과 싱가포르에서 유학하며 해외 복수석사 학위를 받은, 그야말로 전도유망한 젊은이였다. 양질의 교육이 이시단정에게 준 것은 우월감이 아니라 책임감이었다.
이시단정은 말했다. “샤먼대학교를 졸업한 뒤, 많은 친구들이 함께 창업하자고 요청했다. 하지만 시짱 교육정책의 수혜자로서 라싸로 돌아가 시짱 교육개선에 공헌하고 시짱 건설에도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다.”
짱족 청년이 가진 새로운 기회에 대해, 그는 마음속으로 감격을 느꼈다. “몇 년간 나는 시짱 교육의 변화를 봤다. 솔직히 말해 25년 전에는, 나 같은 일반 가정의 젊은이에게는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는 아주 적었다. 심지어 이것이 다 무료다!” 이시단정의 말이다.
“당신 마을의 생활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내가 물었다.
그는 “내가 어렸을 때는 텔레비전도 없고 라디오 조차 없을 만큼 생활 조건이 매우 빈약했다. 지금은 우리 마을에 텔레비전, 냉장고, 인터넷이 있고, 사람들 모두 위챗(微信)으로 연락한다. 농촌에서는 도시보다 생활이 더 좋다. 정부는 농촌에 수도, 전기 사용료에 지원을 해준다. 만약 농·목민이 병원에 가면 정부에서 비용의 70-80%에 대해 보조금을 준다. 짱족 사람들의 집은 예전보다 훨씬 예쁘고 넓어졌고, 자동차와 트럭도 있어 마치 미국 중서부의 주민 같다”고 말했다.
나 스스로도 시짱 전자상거래의 왕성한 발전을 봤다. 외딴 산골짜기에서도 전용 전자상거래 업체의 트럭이 시짱제품을 운송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난 1-6월, 시짱의 온라인 판매액은 24억5900만 위안으로 전년동기 대비 19.72% 증가했다.
“해외 유학 이후, 왜 굳이 시짱대학교로 돌아와 교편을 잡은 건가요?”라고 내가 물었다.
이시단정은 말했다. “나는 이미 교육의 기회를 누렸다. 그 기회는 많은 친구들이 꿈꾸었지만 얻을 수 없던 것이었다. 나는 고향으로 돌아와 내가 배운 지식과 본 것, 느낀 일들을 친구들에게 나눠줄 책임이 있다. 내 저서 <멀고 먼 시짱(遠方的西藏)>을 통해서 친구들과 학생들, 아이들에게 열심히 일하고 용감하게 꿈을 좇을 것을 격려했다. 모든 강의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반드시 원대한 포부를 품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나를 보라, 나도 할 수 있다! 내가 해낸 모든 것은 그들 역시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시단정은 짱족 청년과 기타 소수민족 청년의 창업을 돕기 위해, 정부가 많은 우대정책을 제공했다는 점도 말했다. 그가 말하길 “내 친구들 중에는 변호사, 교사, 교수들이 있다. 25년 전과 비교해 아주 커다란 변화는 과거에 학부모는 자녀가 집에 남아 현지에서 일하기를 원했지만, 지금은 일터에서 일찍이 돈을 버는 것보다 교육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싶어한다.”
“마지막 질문으로, 당신은 미래에 시짱이 어떤 모습이 될 거라 생각하는가?” 내가 물었다.
그는 “시짱 사람들의 생활 수준은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행보는 계속 이어져 갈 것”이라고 답했다.
현재 이시단정은 쓰촨(四川)대학교 장학(藏學, 시짱 연구학) 연구소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며 시짱의 역사, 사회, 경제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학업을 마치면 바로 다시 시짱대학교로 돌아가 교편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두 가지 목표는 시짱의 교육을 개선하는 데 공헌하는 것과 시짱 건설에 힘을 보태는 것이다.
1994년, 시짱의 빈곤은 해결될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다. 현재, 시짱 사람들의 생활은 부유하고 행복하고 건강하다.
이시단정이 시짱의 미래에 대해 확신에 차 있다. 나 역시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