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산자치주 시더현 광밍진의 빈곤 탈출을 위한 이주지인 이신(彜欣)단지. 1698가구가 이주했으며, 이 중 152가구가 빈곤가정이다. 사진/ XINHUA
“코끼리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코끼리 꿈을 꿀 수 없다.” 올해 34세인 이(彝)족 주민 지커구저(吉克古者) 씨는 단체 이주지역 ‘무언디(沐恩邸)’ 입주시의 기쁜 마음을 이와 같은 이족 속담으로 표현했다. 지커구저 씨는 원래 ‘절벽 마을(悬崖村)’이라고 불리던 쓰촨(四川)성 량산(凉山)자치주 자오줴(昭觉)현 쯔얼모(支尔莫)향 아투례얼(阿土列尔)촌에 살았다. 이 마을은 800m 높이의 가파른 절벽 12개에 있는 총 218칸의 통나무 사다리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어서 ‘절벽 마을’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몇 년 전, 이 곳 초등학생이 2시간 동안 절벽 사다리를 타고 등교하는 영상이 중국 온라인에서 퍼지면서 ‘절벽 마을’은 전국에 알려졌다. 그러나 지금, 지커구저 씨와 마을 내 84개 빈곤가정은 절벽 위에서 내려와 이주를 마쳤다.
높고 깊은 산, 굽이치는 산길, 척박한 토지, 불편한 교통......량산자치주 이족 주민들은 이런 환경에서 대대손손 살아왔다. 량산자치주의 대다수 빈곤촌은 해발이 매우 높고 극악의 자연환경을 가진 고한 지대에 위치해 있다. 극악의 자연환경은 바로 량산자치주가 극심한 빈곤지역이 될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원인이다.
극악환경으로 인해 발전이 제약된 빈곤인구 구제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이를 해결하고 획기적 발전을 이루기 위해 마을 이전이 중요 조치로 시행되었다. 국가의 맞춤형 빈곤지원(精准扶貧) 전략 ‘두 가지 문제 해결과 세 가지 사항 보장(两不愁三保障, 먹고 입는 걱정이 없고 교육·의료·주택 보장)’ 조치에 따라, 량산자치주 35만3200명 이주민들이 1492개 단체 이주지역에 입주하였으며 이로써 깊은 산골짜기 생활을 청산하고 완전히 새로운 삶을 맞이하게 되었다.
량산자치주 자오줴현 쯔얼모향 아투레얼촌은 ‘절벽 마을’이라 불린다. 2020년 5월, 마을의 빈곤가정들이 현 소재지의 이주지로 이사했다. 사진/ 아커주서(阿克鳩射)
산 아래 새 집으로
량산자치주 푸거(普格)현 터부(特补)향 쟈쟈거우(甲甲沟)촌에는 이족 특색이 물씬 풍기는 새로 지은 주택들이 늘어서 있다. 산 기슭에는 푸르른 담뱃잎이 물결치며 자라고 있고, 그 옆에는 빽빽한 옥수수 밭이 보인다. 그야말로 생기 넘치는 농촌마을의 모습이다.
“생활이 훨씬 좋아졌어요. 텔레비전도 새로 샀고요, 50인치 짜리 입니다. 예전 것은 아주 작았는데……” 전통 복장을 차려 입은 60세 이족 노인 사마르거(沙馬日各) 씨는 새 집에 들여놓은 새 플랫패널 TV를 기자에게 자랑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올해 3월, 사마르거 씨는 이곳 80㎡ 면적의 비영리 주택으로 이사했다. 거실 1개, 방 4개, 독립된 주방과 화장실 등등……오후의 따스한 햇살이 활짝 핀 노인의 얼굴에 환하게 쏟아졌다. 마당 한 켠에는 고추가 빨갛게 물들어가고 있었으며, 단콩 줄기가 열심히 벽을 따라 자라고 있었다. 평소에는 노부부 둘이서만 지내는 집이지만, 사마르거 씨는 방마다 2인용 침대를 두었다. “설이나 횃불절(火把節, 이족의 전통 명절) 같은 명절에 자식들이 돌아오면 묵을 방이에요.” 사마르거 씨는 자신의 새 집을 보면서 연신 웃었다.
“예전에 산에서 내려와 장이라도 볼라치면 반나절 이상 걸렸지요. 비 오는 날이면 두 다리 온통 흙범벅이 되는 건 물론이고 자칫하면 넘어지기 십상이었죠.” 사마르거 씨는 예전 해발 2500m 산 위에 살았을 때, 읍내에 장보러 가기 위해 산에서 내려오는데 2시간, 다시 올라가는데 3시간씩 걸렸다고 했다. 올해 3월, 60세의 사마르거 씨와 그의 아내는 산 아래 새 집으로 이주하였다. 새 집에서 뤄지산(螺髻山)진 까지는 걸어서 30분에 불과하며, 장이 서는 날이면 읍내까지 셔틀버스도 운행한다.
이족의 새 터전은 쓰촨성 담배공사와 싼샤(三峡)그룹의 원조를 통해 ‘그룹화·소형화·전원화·생태화·산업화’를 목표로 건설되었다. 현재 쟈쟈거우촌에는 맞춤형 빈곤퇴치 지원 대상 120개 가정, 총 512명 모두 새 집 이주를 완료하였다.
국가의 맞춤형 빈곤지원 정책 지원 하에 량산자치주 이주 작업은 지역별 상황에 따라 맞춤형 정책으로 순차적으로 진행 중이다. 쟈쟈거우촌과 같은 마을의 경우 마을 구역 내에 이주지역을 마련하여 기존에 일구던 토지를 떠나지 않고도 새 집 이주가 가능하도록 했다. 절벽 마을과 같이 험지에 있는 빈곤촌의 경우, 읍내 근처 지역에 단체 이주지역을 마련하여 새 집 이전과 동시에 ‘촌민’에서 ‘주민’으로 신분 전환까지 가능하게 하였다.
“부모도 나에게 이렇게 좋은 생활 여건을 주지 못했는데, 국가가 마련해 주었어요. 당과 국가에 너무나 감사합니다.” 지커구저 씨의 새 집이 위치한 무언디 단지는 자오줴현 중심가 옆에 위치한 현내 가장 큰 빈곤가정 이주지역이다. 지커구저 씨 가족 6명은 100㎡ 크기의 방 3칸 짜리 주택을 배분받았다.
량산자치주 자오줴현 산차허(三岔河)향 산허(三河)마을 주민 제하오(吉好)의 가족들이 새 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둥닝(董寧)
산업 육성을 통한 빈곤 지원책으로 안정적 삶 실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이주 문제가 기본적으로 해결된 이후, 이주민들의 입학∙의료∙취업 등 문제, 그 중 특히 취업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이야 말로 빈곤민들의 ‘이주·안정·수익창출’을 실현하는 관건이며 이주민이 다시 빈곤에 허덕이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보장조치이다.
시더(喜德)현에서 출발하여 굽이진 산길을 따라 푸른 숲과 맑은 계곡, 그리고 이따금 나타나는 폭포를 지나 30분쯤 달리다 보면 깊은 산 속 자리한 아허우(阿吼)촌을 만날 수 있다. 해발 2500m가 넘는 산비탈 위에는 새로 지은 집들이 들쭉날쭉 늘어서 있다. 2016년 3월, 중국국가전망(中國國家電網) 쓰촨 전력공사는 아허우촌에 대한 집중 지원을 시작했다. “집중 지원 전에 여기는 길도 없고, 전기도 수도도 없었어요. 일인당 수입은 겨우 1500위안(약 25만원)에 불과해 심각한 빈곤촌이었습니다. 아무도 여기에 시집오려 하지 않았어요.” 국가전망에서 파견된 왕샤오빙(王小兵) 아허우촌 제1서기는 마을 전체 224가구, 총 932명 중, 빈곤 등록 가구가 72개, 총 321명이었다고 소개했다. 국가 맞춤형 빈곤지원책이 실시 후, 아허우촌은 2017년 마을 전체 빈곤퇴치에 성공했으며, 빈곤가정 연평균 수입이 2015년 일인당 1500위안에서 2019년 8979위안으로 약 6배 증가했다.
왕샤오빙 서기의 소개에 따르면, 2017년 72개 가정이 해발 3000m의 깊은 산 속에서 현재 이주지역으로 옮겨왔으며, 이주민 안정과 발전 실현을 위해 국가전망 쓰촨 전력공사가 설립한 ‘리훠(丽火)현대농업공사’의 진두지휘 하에 농축산협력사를 설립하였다. 농축산협력사를 통해 표준화 면양농장을 건설하고, 잉여토지 279무(亩, 1무는 약 666.67㎡)를 정비하여 백합, 패모, 복숭아 등 3개의 특색산업기지로 조성하였다. 왕샤오빙 서기의 소개에 따르면, 2019년 아허우촌 농축산협력사의 백합, 패모, 면양 등 생산량이 매우 좋았으며, ‘빈곤 대상 소비 특별 지원+전자상거래’ 방식으로 연간 수익이 32만5800위안을 기록하였다. 협력사 원가 및 운영자금을 제외하고 마을주민 배당금은 총 16만8000위안으로, 빈곤가정은 가정당 1500위안, 일반가정은 가정당 1000위안씩 배당되었다.
아허우촌의 사례처럼 산업을 일으키고 고용 안정을 실현하는 것이 빈곤인구의 확실한 빈곤퇴치를 이루는 중요한 조치가 되었다. 량산자치주의 각 현에서는 현지 상황에 따라 혁신모델을 모색 중이다. 부퉈(布拖)현은 성급 농업산업단지 부쟝수펑(布江蜀丰)산업단지, 중약재 농장 7개, 과수원 2개, 축산농장 5개를 조성하였다. 자오줴현은 읍내 주변에 여러 개의 현대농업산업단지와 의류가공 공장 등을 유치하여 주변 이주민들의 취업 활로를 개척하였다.
새 집으로 이사한 후 마을 주민들에게 새 삶이 열렸다. 사진/ 아커주서
과거 이 곳의 이족 주민들을 대대손손 감자와 메밀만을 심으며 살아왔다. 예전에는 그야말로 ‘감자로 배 채우고, 닭 판 돈으로 소금 사는’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지금은 ‘정부+기업+협력사+빈곤가정’의 산업 육성을 통한 빈곤지원 메커니즘이 형성되어 ‘산업의 상품화’가 실현되었다. 대대손손 살아오던 땅은 변함없지만, 그들의 삶은 나날이 번창하는 중이다.
직업교육을 통한 빈곤지원책으로 새로운 삶 개척
옛말에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치라(授人以鱼不如授人以渔)”고 했다. 량산자치주 이족 주민들은 그동안 배운 기술이 없어 타지에 돈을 벌러 나갈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각 이주단지에서 굴착기, 용접, 조리기능사, 가정부, 이족 자수 등등 다양한 직업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게 되면, 이족 주민들에게는 타지 취업, 현지 창업 등 여러 선택지가 생길 것이다.
8월 21일, 광둥(廣東)성 포산(佛山)시의 량산자치주 빈곤지원 사업중 하나로서 ‘찾아가는 조리기능사 수업(送厨到家, 送教上门)’, 즉 무료 조리기능사 수업이 량산자치주 자오줴현 싼펀허(三岔河)향 싼허(三河)촌 이주단지에서 개강하였다. 수업에 참여한 35명 주민들은 광둥성 요리대가를 따라 후이궈러우(回锅肉, 중국식 매운 삼겹살 볶음)을 배우기 시작했다. 광둥 포산순더(顺德)요리학원의 중식조리 대가 옌진밍(嚴金明)은 이번이 6번째 방문 교육이며, 앞으로 20일 동안 이 곳 학생들에게 40가지 요리를 수업할 예정이다.
량산자치주 자오줴현 사라디포(灑拉地坡)향 제바나다(姐把娜打)마을 유치원 어린이들이 선생님의 지도 아래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학교 입학 전에 표준어를 가르쳐 입학 후 언어 장벽을 겪지 않도록 해 아이들의 학습 흥미를 크게 높였다. 사진/ 둥닝
“재료 중 80%는 현지 구매이고, 수업은 광둥식 요리와 쓰촨식 요리가 각각 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옌진밍은 현지 주민들이 현지 조달 가능한 재료로 광둥식 요리의 정교한 조리법을 배울 수 있도록 수업을 진행한다. 그는 자신의 수업을 통해 그들이 기능을 익히고 작은 식당이나 농가체험장을 운영해 수입을 늘릴 수 있기를 바란다. 이주 후, 싼허촌의 관광 사업 또한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점심 무렵이 되면 많은 주민들은 자신의 집을 개방해 농가체험장으로 제공한다. 43세의 이족 학생 제례아무(节列阿木) 씨는 요리기술을 제대로 익혀 앞으로 본격적으로 농가체험장을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양말자수 한 켤레 당 25위안씩, 하루에 최대 10켤레씩 할수 있어요.” 올해 25세인 어이궈(俄依果) 씨는 품에 이제 막 4개월이 된 아이를 안고서 기자와 인터뷰하는 와중에도 자수바늘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바늘이 지나는 곳에는 이족의 전통문양이 피어났다. 인터뷰 도중에도 틈틈이 자수 지도교사가 다가와 그녀의 자수법을 지도했다.
어이궈 씨는 올해 5월 하간(哈甘)향에서 무언디 단지로 이주한 후 단지 내 이족 자수 수업에 등록했다. 이수 후, 단지 내 자수공방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일해 매달 2000여 위안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오랜 전통을 가진 이족 자수는 이렇게 계승되어 이족 여성들이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사업이 되었다.
새 집 이주, 산업 육성, 기술 교육 등을 통해 깊은 산 속에서 나와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들에게 바뀐 것은 비단 삶의 터전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살아가는 믿음과 마음가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