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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세계최장 해상대교를 만든 사람들


2018-04-20      글|양윈첸(楊云倩)

초특급 프로젝트는 이름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는 수많은 건사자들의 피땀으로 이뤄낸 것이다. 
사진/리숭린(李松林)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강주아오(港珠澳)대교가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홍콩-주하이(珠海)-마카오를 연결하는 세계 최장 해상교량인 강주아오대교가 링딩양(伶仃洋) 해역을 가로질러 완공된 것이다. 1983년 처음으로 계획이 언급된 이후 2018년 개통을 목전에 두기까지, 그 눈부신 업적의 완성은 건설에 참여한 1만 여 명의 피와 땀이 있었기에, 또한 많은 이들의 꿈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융링(朱永靈), 강주아오대교 관리국(局) 국장 사진/돤웨이(段崴)

2004년부터 강주아오대교 프로젝트 참여 
인터뷰에 참여한 관리국 사람들은 하나 같이 ‘주 국장’을 이야기 했다. 관리국 직원들 눈에 비친 주융링은 날이면 날마다 밤 10시가 넘어야 퇴근하는 ‘일 중독자’이자 넘치는 지혜와 풍부한 경험, 넓은 식견, 정확한 판단력을 갖춘 ‘신’이며 ‘공사의 대가’였다. 

주융링은 광둥(廣東)성고속도로유한회사 회장부터 강주아오대교 전기(前期)업무협조소조 판공실(강주아오대교 판공실) 주임 및 관리국 국장까지, 지난 15년 동안 업무기간 중 다리와 ‘한 몸’이 된 삶을 살았다. 

그에게 있어 강주아오대교는 하나의 시험장과 같다. ‘일국양제(一國兩制)’의 교차점으로 세 지역의 제도적 우위가 모두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주관적 능동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면서 각각의 역량을 한데 모아야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주융링은 원칙을 따르며 세 지역 정부 관계를 두루 생각하고 조화를 모색했다. 이치로서 상대를 설득하고 마음으로 상대를 움직였으며,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통한다’는 것을 신념으로 여겼다. 그는 ‘막후의 영웅’을 자처하면서 많은 영광을 동료들에게 돌렸다. “100년 후 역사책을 펼쳤을 때, 나는 대교관리국 최초의 국장으로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주융링의 말이다. 

위례(余烈), 강주아오대교 관리국 부국장 사진/돤웨이(段崴)

2004년부터 강주아오대교 프로젝트 참여 
사전 조사연구·자료 준비에서부터 안전 및 환경보호·대외홍보까지 하는 동안 쌓인 노트 필기 및 2만 여건의 문건, 400여 페이지의 이메일 등은 위례가 지난 14년간 다리 건설과 함께한 세월의 흔적이자 강주아오대교 기획부터 완공까지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많은 이들은 그를 직업 선택을 잘못한 ‘문인’이라 말한다. 최근 그가 쓴 시의 주제는 모두 강주아오대교와 관련된 것들이다.위례는 자신을 비롯한 사람들은 운이 좋고 행복한 엔지니어들이며, 위대한 공정에 참여한 건설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광의 순간 이면에는 더 큰 어려움이, 심지어 고난과 좌절이 있다. 그는 “7년 동안 섬 위에서, 배 위에서, 다리 위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공사를 해봤다면, 또 33번이나 긴장감 속에서 태풍 비상대응을 했던 과정을 보았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부러워하지도 않을 것이고 행복하다는 말도 믿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젝트는 막바지에 돌입했지만 위례는 앞으로도 관리국에 남아 대교 운영업무를 맡을 것이다. 강주아오대교의 좋고 나쁨에 대해 많은 말을 할 필요 없다고 그는 말한다. 다리 자체가 말을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장진원(張勁文),강주아오대교 관리국 공정총감 사진/돤웨이(段崴)

2004년부터 강주아오대교 프로젝트 참여 
29세 때 광둥성고속도로유한회사에서 강주아오대교판공실로 자리를 옮기면서 장진원은 고속도로유한회사에서 맡고있던 공정부 부부장을 포기했다. 당초 사람들은 고속도로 건설경험만 있던 젊은 청년이 대형 프로젝트 총감을 맡는다는 데에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장진원은 행동으로써 모든 것을 증명했다. 

프로젝트가 끝나자 사람들은 “이제 어디로 갈 것이냐”고 그에게 묻는다. 그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말하곤 하지만 사실은 이번 프로젝트만큼 도전성이 있는 프로젝트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정리 하기’가 그의 구상이다. 경험과 교훈을 정리해 후대에게 남기고 싶다는 것이다. 시공은 경험이 끊임없이 누적되어 완성되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프로젝트는 선배들에 대한 경의의 뜻이며, 동시에 후대에게는 든든한 어깨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위대한 다리를 남길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문화적 의미 때문이라고 장진원은 말한다. 대교 완공은 종합국력을 보여주는 것이자 중국 개혁개방 40주년의 결과물이다. 그는 “많은 이들은 우리가 위대하고 느끼지만 사실 우리는 엔지니어로서의 본분을 한 것 뿐”이라고 말했다. 

가오싱린(高星林),강주아오대교관리국 국장조리 겸 계획합동부 부장 사진/돤웨이(段崴)

2008년부터 강주아오대교 프로젝트 참여 
강주아오대교프로젝트 참여 전 광둥성 교통운수청에서 재직하다 2015년부터 계획합동부를 이끌고 메인 대교 입찰모집·건설·운영·유지보수 관리를 해왔다. 앞으로는 관리국 핵심부서인 계획합동부 부장으로서 대교 인공지능 연구·응용 준비 업무를 맡게된다. 

흔히 생각하는 엔지니어 이미지와 달리 가오싱린은 매일 영어를 공부하고 책을 읽으며 운동을 한다. “끊임없이 깊이있게 공부하는 것은 교량 건설팀이 전진해나가는 동력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고, 평정심을 가지면 무슨 일을 하든지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강주아오대교가 오늘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그는 “사람이 노력하고 하늘이 도왔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사람과 프로젝트가 거둔 성과는 모두 시대의 흔적을 남긴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주아오대교 건설은 국가가 세계적으로 어떤 역사적 단계와 역사적 위치에 있는지 보여주었다. 엔지니어로서 국가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음은 영광이자 자랑이며, 또한 큰 책임이기도 하다.”

돤궈첸(段國欽), 강주아오대교관리국 안전환경보호부 부장 사진/돤웨이(段崴)

2005년부터 강주아오대교 프로젝트 참여
안전관리와 환경보호업무 성과에 대해 돤궈첸은 언제나 말을 아낀다. 기술분야나 현장시공 업무와 달리 그가 맡은 일은 기본 중 기본이라 성과를 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안전 및 환경보호 업무를 위해 기꺼이 ‘조연’을 맡겠다며 지난 2005년 기존의 일을 그만두고 강주아오대교판공실로 와 ‘13원로’ 중 한 사람이 된 이후부터 초대형 프로젝트를 이끄는 항해사가 되기까지, 돤궈첸은 이곳에서 인생에서 귀중한 1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강주아오대교 건설에 HSE(Health, Safety & Environment)관리방식이 도입된 데에는 돤궈첸의 피와 땀이 스며있다. 인재를 물색하고 국제적 이념을 받아들이며 홍콩·마카오와의 긴밀한 연락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한 것이 없었다. 특히, 건설참여업체들에게 HSE 이념을 받아들이도록 하고 이를 이행하도록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사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안전환경부는 무대 전면으로 나와 운영부서가 되었다. “(대교를) 운영하고 유지 보수하는 데 사람이 바뀌면 전체 효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다리를 잘 짓고 잘 관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뿌듯하다.” 

다이시훙(戴希紅), 강주아오대교 관리국 안전환경보호부 부부장사진/돤웨이(段崴)

2009년부터 강주아오대교 프로젝트 참여
다이훙신에게 있어 가장 흥분되고 잊을 수 없으면서 동시에 가장 고생스러웠던 순간은 바로 2013년 500여 척의 시공선이 차례대로 늘어서 긴장 속에 공사를 시작하던 때다. 

2009년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 다이시훙은 풍부한 시공경험을 자랑하는 수석엔지니어였다. 그러나 관리국이 안전관리 및 환경보호 인재를 갈구하던 것을 보고 전공분야가 아닌 안전환경보호부에서 해사협조 및 통항(通航)관리업무를 맡기로 했다. 

“우리는 중앙통항, 측면통항, 수상항로표지 등 3부분을 포함해 157개의 항로표지를 설치했다. 도로에 신호등을 설치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밖에도 안전환경보호부는 교량 위에 시공 근로자를 위한 전문 항로표지플랫폼을 설치함으로써 근로자들의 안전을 지켰다. 이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최초로 시도된 것이자 HSE이념을 실천하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왕팡(王芳), 강주아오대교 관리국 계획합동부 직원 사진/돤웨이(段崴) 

2012년부터 강주아오대교 프로젝트 참여
“플랫폼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왕팡은 올해로 29세다. 함께 공부를 하던 친구들은 벌써 프로젝트의 부총책임자 등 직책을 맡고 있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초대형 프로젝트를 맡은 왕팡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교량프로젝트 전공 수업 당시 교수님께서 하셨던 말을 왕팡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 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초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면 그의 생애는 참으로 의미있는 것이다.” 강주아오대교관리국에 막 들어왔을 때 23세의 나이로 최연소 직원이었던 그는 어린 나이에 대한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다. “강주아오대교에서는 공부를 좋아하지 않아도 공부를 해야만 했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쳐질 수 밖에 없었다.” 

추천 대학원생이 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광둥성고속도로유한회사로, 다시 강주아오대교관리국으로 잇따라 자리를 옮겼지만 왕팡은 지금껏 한 번도 후회를 해본 적이 없다. “공정은 실천 속에 진행하는 것이다. 인생은 도전으로 가득 차 있지만 기회로도 가득 차 있다. 나는 평범한 돌이지만 강주아오대교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

류강(劉剛),강주아오대교 관리국 계획합동부 직원 사진/돤웨이(段崴)

2009년부터 강주아오대교 프로젝트 참여
주하이(珠海)로 집을 옮긴 류강은 많은 동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관리국 대부분의 직원들은 광저우에 살고 있기 때문에 프로젝트에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을 할애하다 보면 가정에는 소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주아오대교는 3개의 법률구역을 지난다. 류강은 강주아오대교관리국에서 법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유일한 직원이다. 광둥성교통운수청에서 관리국으로 전근한 뒤 가장 처음 한 일은 법률 고문을 선임하는 것이었다. 4개의 법률사무소로 구성된 연합체가 최종 관문을 통과했다. “한번은 세 지역이 모여 회의를 열었는데 100여 개가 넘는 문제들이 거론됐다. 모두 해결이 필요한 것들이었다.” 세 지역 법률 전문가와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강주아오대교 건설·운영·유지보수 및 관리에 관한 세 지역정부 협의>와 <강주아오대교관리국장정(章程)>이 잇따라 마련됐다. 강주아오대교를 어떻게 건설하고, 세 지역의 권리와 의무를 어떻게 분배하며, 직책은 어떻게 나눌 것인지 등에 대한 문제 모두 이 협의와 장정에 따라 처리한다. 

계획합동부에는 훌륭한 학습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고, 학과와 전공을 초월한 내부 연수모임이 있다. 개인 핵심 업무능력 제고·국제적 안목 및 사유능력 확장을 위해 내부 연수를 진행한다. 류강은 이러한 활동의 주요 기획담당자이기도 하다.

차이쥔푸(蔡俊福),중국철건전기화국그룹(中國鐵建電氣化局集團) 강주아오대교 교통공정 책임자 사진/돤웨이(段崴)

2004년부터 강주아오대교 프로젝트 참여
통신·요금·감시·제어·전력공급·배전·조명 등 12개 하부 시스템이 포함되는 강주아오대교의 교통공정은 종합적인 ‘대형 시스템’이다. 기존의 프로젝트에서는 항목별로 입찰자를 모집했으나 강주아오대교는 종합 입찰방식을 채택, 모든 하부시스템을 하나의 관리 플랫폼에 편입시켰다. 입찰자로 최종 선정된 차이쥔푸와 그 직원들의 부담이 얼마나 클지 감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카메라만 400여 개, 케이블 길이는 약 2000km, 건자재는 5000t에 이른다. 방대한 공사인 만큼 신경써야 할 세부적인 것들도 많다. 10여 개의 시스템을 일일이 대조해야 하는데 우리에게 있어서는 매우 큰 시험이다.” 차이쥔푸는 앞서 고속철 시스템 집중 관리 부분에서 적지 않은 경험을 쌓았다. 강주아오대교에서는 건축정보모델(BIM)에 기반한 전 생애 주기의 기술플랫폼과 서비스 체계 개발을 추진했다. 강주아오대교를 바라보는 그의 감정은 ‘숭경(崇敬)’이다. 숭경해야만 더욱 경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리쥔(于立軍), 중국철건전기화국그룹 남부지사 강주아오대교 교통공정 프로젝트부 사진/돤웨이(段崴)

2014년부터 강주아오대교 프로젝트 참여
동료들은 위리쥔을 ‘다오주(島主, 섬 주인)’라고 부른다. 서쪽 인공섬 건설의 시공 진도, 조직·자원 분배, 인력 배치 등을 그가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주아오대교 건설에 참여한 업체(單位)는 약 40여 개. 위리쥔이 속한 팀은 토건이 끝나야만 시공을 할 수 있고, 시공주기는 인력의 제약을 받기 쉽다. 

2017년 8월, 태풍 ‘하토’가 주하이를 강타했지만 위리쥔 팀의 협력과 노력 하에 근로자 모두 무사히 현장을 빠져나오며 한 명의 사상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길게는 한 달이 넘도록 다리 아래 땅을 밟지 못했지만, 그래도 위리쥔은 한 번도 인상을 찌푸린 적 없다. “온 마음을 다하고 설계에도 높은 기준을 적용했다. 다른 프로젝트들에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
 
류징궈(劉經國),중교제2항무공정국유한회사(中交第二航務工程局有限公司) 강주아오대교 터널공정 책임자 사진/돤웨이(段崴)

2011년부터 강주아오대교 프로젝트 참여
‘80허우(後, 1980년대 출생자)’ 터널프로젝트 매니저 류징궈는 대학 졸업 직후 상하이-베이징 노선 고속철 건설에 참여했다. 이후 2011년 강주아오대교 건설 현장으로 배치받아 침매터널·인공섬 주체(主體) 건설 등에 참여했다. 하루 하루 발전하고 업그레이드 하면서 자신과 프로젝트의 성장과정을 확인하는 것, 이는 그로 하여금 프로젝트에 열정을 품을 수 있게 했다. “터널건설이 요구하는 높은 기술수준과 많은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세부 공사에 매력을 느낀다. ‘무(無) 결점, 무 관용’이 최종 목표다. 간단하게는 ‘완벽’ 두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공사현장에서 지낸 몇 년간, 긴장 속에서 주말을 잊은 채 살았다. 그는 프로젝트가 끝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이렇게 오래 걸리고 이렇게 심혈을 기울인 프로젝트는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왕샤오솨이(王小帥), 중교연합체 터널공정 홍보 간사 사진/돤웨이(段崴)

2017년부터 강주아오대교 프로젝트 참여
2017년 여름, 신입사원 연수과정을 마친 왕샤오솨이는 자신이 강주아오대교프로젝트에 배치된 것을 알고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고된 근무환경은 도시에서 자고 나란 그에게 결코 녹록지 않았다. 인공섬 위에서 먹고 지내며 밤이면 머리 위로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와 땅을 울리는 기계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일과 생활이 하나가 되어버리니 폐쇄적으로 변했다. 밤에 산책을 하다가 주하이와 홍콩의 화려한 불빛들을 봤는데, 어두컴컴한 망망대해에 혼자 있다는 생각에 더 처량해졌다.” 강주아오대교가 아니었다면 일찌감치 도망갔을지도 모른다고, 왕샤오솨이는 부끄러운 듯 말했다. 

공사 현장에서 지내는 동안 대교를 참관하러 온 국내외 인사들을 보았고,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또, 매일을 근로자들과 함께 보내면서 성실함과 강인함을 배웠고, 엔지니어들과의 교류를 통해서는 노력과 희생을 배웠다. “근로자들이 힘들다고 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모두들 프로젝트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근로자들과 린밍(林鳴) 총엔지니어의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것도 왕샤오솨이의 일이다. 근로자들이 퇴근 후 사진을 찍어달라며 자신을 찾을 때,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 일에 참여했는지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슝쥔밍(熊俊明),중교연합체 강주아오대교 터널공정 콘크리트공 사진/돤웨이(段崴)

2017년부터 강주아오대교 프로젝트 참여
서쪽 인공섬에서 슝쥔밍을 봤을 때,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에 든 삽으로 상하수도 덮개와 노면 사이의 틈을 메워 평평하게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조금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된다. 프로젝트에서 요구하는 수준이 매우 높고 엄격하다. 린 수석엔지니어가 매일 현장을 돌아다니며 세심하게 신경 쓴다. 얼마나 훌륭한 프로젝트인데, 당연히 잘 해야 한다.” 

56세의 슝쥔밍은 충칭(重慶) 출신이다. 숙련된 콘크리트공으로 많은 공사에 참여했지만, 그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역시 강주아오대교다. 물론, 좋은 대우와 편안한 업무는 그에게도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경험이 더욱 소중하다. 바로 흰돌고래를 본 것이다. 

“33마디로 구성된 해저터널이 완성됐다. 너무 신기하다. 세계 최대 규모의 공사인 만큼 현장을 찾아오는 외국인들이 많다. 또 TV에도 자주 우리 모습이 등장하는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어서 매우 뜻 깊다.” 


글|양윈첸(楊云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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