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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도를 바꾼 중국 교통의 혁신


2024-11-29      



중국에서 15년 넘게 살고 있는 한국인이다. 중국에 사는 교민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하겠지만, 나 역시 처음에 왔을 때 중국에서 이렇게 오래 살게 될 줄 예상 못 했다. 중국 생활이 힘들고 어려운 점도 있지만 늘 신선했다. 뭔가 하루하루 변화가 많아 심심하거나 지루한 날 없이 생활이 흥미로웠다. 그중 오늘은 중국에서 15년 살면서 계속 변화하고 혁신하며 나의 중국 삶을 다채롭게 하는 중국의 교통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12306, 기차표의 변화

처음 해외 배낭여행을 온 곳이 중국이었다.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항저우(杭州)를 여행했다. 중국이 내 운명인 줄 바이두도 네이버도 구글도 몰랐을 것이다. 여행자로 중국을 왔다 갔다 하다가 15년째, 취푸(曲阜), 베이징을 거쳐 상하이에서 살게 될 줄을…


2000년까지 중국에 고속철이 없었다. 터콰이(特快), 콰이처(快車)라고 속도로 구분하는 일반 궤도열차가 있었다. 중국어가 서툰 외국인에게 기차표를 살 때 터콰이(特快), 콰이처(快車), 롼워(軟卧), 잉워(硬卧) 롼쭤(軟座), 잉쭤(硬座)라는 단어는 수능 정답만큼 중요했다.


당시 기차표를 사려면 외국인 전용 창구가 따로 있었다. 중국인들이 긴 줄 서 있는 창구보다 외국인들만 따로 기차표를 살 수 있어 다행이었다. 기차표는 딱딱한 도화지 같은 표 한 장과 별도 명세서가 있었다. A4 크기 가득, 기차 에어컨 비용과 청소비 등 내용이 구구절절 적혀 있었다. 베이징에서 상하이까지 17시간 걸리니 천천히 다 읽어보기도 했다. 점심 먹고 타서 저녁 먹고 한숨 푹 자고 일어나 아침 먹어도 여전히 기차 안이다.


상하이역에 내리자마자 해야 하는 일은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미리 예약하는 일이었다. 상하이 역에 외국인 창구가 따로 있어 어렵지 않게 기차표를 샀다. 일반 창구에는 8월 아스팔트도 녹을 것 같은 더위 속, 기차표 사려고 줄 서 있던 중국인들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2011년부터 기차표는 전산으로 출력하는 부드러운 분홍색 종이표로 바뀌었다. 그리고 예약 시스템이 전산화된 뒤 출발지가 아니어도 다른 곳에서 출발하는 기차표도 살 수 있게 됐다. 전체 일정에 맞는 기차표를 미리 사고 출발하는 계획성 있는 여행이 가능해진 것이다.


2012년에 기차표 실명제가 실시됐다. 부당한 이득을 올리는 암표상과 여행사에게 날벼락이었지만 일반인들에게 봄비 같은 좋은 소식이었다. 초창기 실명제를 도입할 때는 본인 인증 절차가 어설퍼 아무 이름이나 넣어도 표 구매가 가능했다. 중국을 띄엄띄엄 보면 안 된다. 중국 철도 시스템은 빠른 속도로 보완해 정확도를 높여가며 본인 인증 기반의 예매 시스템을 구축했다. 중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이제 진짜 실명으로 기차표를 사야 한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중국 전역에서 종이 기차표가 사라졌다. 중국인들은 신분증, 외국인들은 여권만 있으면 기차를 탈 수 있게 됐다. 미리 가까운 역에 가서 종이 기차표로 받아야 했던 번거로움과 기차표 분실이라는 리스크가 사라졌다. 경비청구를 위한 종이 기차표도 전자 증빙으로 대체 가능해졌다.


중국 기차표는 온라인 여행 플랫폼이나 ‘톄루(鐵路, 철로) 12306’이라는 한국 코레일과 같은 앱에서 살 수 있다. 표가 없더라도 대기 예약도 걸어 놓을 수 있다. 즈푸바오(支付寶)나 웨이신(微信) 같은 모바일 페이는 필수이지만 이제 중국 발행 카드와 한국 발행 카드로도 모두 연동이 가능하다.


이제 금요일 저녁 퇴근 후 기차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가고 싶은 여행지를 정하고 일요일에 돌아오는 기차표를 사며 떠나는 주말여행이 가능해졌다. 한때 두꺼운 도화지 같던 중국 기차표는 부드러운 명함 크기 종이로 줄어들었고 마그네틱 부착 종이 티켓을 거쳐 휴대폰 속 QR코드로 진화하다 이제 신분증과 여권 스캔만으로 탈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표’가 되었다.


K-T-D-G 열차의 변화

2008년도에 베이징-톈진(天津) 구간에 고속철(CRH, China Railway High-speed)이 도입됐다. 베이징에서 톈진까지 2시간 걸리던 것을 30분으로 줄이면서 톈진에서 베이징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생겨나고 톈진은 베이징에서 당일로 놀러 갈 수 있는 친근한 동네가 되었다. 그때 산둥(山東) 취푸에 살았다. 12시간 넘게 걸리던 지난(濟南)-베이징 구간이 고속철을 타면 4시간 만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했다. 알라딘 요술램프에서 나온 지니가 베이징을 들어 지난 앞에 가져다 놓은 기분이었다.


시속 200km가 넘는 둥처(動車)도 빠르다고 느꼈는데 2017년 6월에 가오톄(高鐵) 푸싱(復興)호가 시속 300km 넘는 속도로 중국을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 12306 앱에서 열차번호 D로 시작하는 둥처보다 G로 시작하는 가오톄 표만 검색한다. 예전에는 K보다 T가 좋았고 D가 더 좋았는데 이제는 G 아니면 눈에 안 보인다.


내년부터 총 길이 1318km인 베이징-상하이 구간에 CR450이 도입된다고 한다. 시속 450km로 베이징-상하이를 2시간 30분대로 주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30년 전에 17시간 걸려 하루 꼬박 덜컹덜컹 침대 기차 타고 누워 왔던 길을 이제 2시간 30분 만에 편하게 앉아 갈 수 있다니 놀랍다.


중국 열차의 서비스도 다양해졌다. 좌석에 붙어있는 큐알코드를 스캔하면 열차 내 식당 음식이나 음료를 간편하게 주문할 수 있다. 열차 외부 배달(外賣)도 가능하다. 맥도날드나 KFC 등 패스트푸드를 주문해 중간 정차역에서 받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사람과 화물만 타던 기차는 이제 자동차도 실어 나른다. 베이징, 상하이에 사는 사람들이 중국 서부 지역인 쓰촨(四川) 청두(成都), 우루무치(烏魯木齊), 쿤밍(昆明) 등 여행지에 미리 자기 차를 보내고 본인은 기차를 이용해 이동해, 미리 도착해 있는 자기 차를 타고 서남부 지역 여행을 즐기는 것이 가능해졌다. 기차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고 다양해졌다.


중국 철도의 빠른 발전과 변화는 1박 2일 걸리던 충칭(重慶), 시안(西安)과 2박 3일 걸리던 우루무치까지 멀고도 멀던 지역까지 가는 여행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줬다. 올해 8월 30일, 황룽쥐자이(黃龍九寨)역이 정식 개통돼 청두에서 쥐자이거우(九寨溝)까지 이동 시간을 대폭 줄였다. 이제 우리는 청두에 가서 푸바오(福寶)도 보고 쥐자이거우도 볼 수 있게 됐다. 최근 여행자들의 버킷리스트인 쿤밍-라오스 루앙프라방 구간 국제여객열차가 완전 개통했다. 아직 타보지 않았지만 내년에는 타보고 싶다.


글 | 제갈현욱(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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