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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보이차, 이 좋은 차를 오래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2024-11-29      

발효 과정을 거쳐 깊고 풍부한 맛을 자랑하는 보이 숙차


겨울이 왔다. 드디어 보이차(普洱茶, 푸얼차)의 계절이 온 것이다.


굳이 ‘드디어’라고 붙인 것은 보이차를 편애하는 마음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차를 골고루 마시지만 “어떤 차를 가장 좋아하세요?” 하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보이차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아마도 차의 세계로 나를 이끌어준 것이 보이차여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보이차를 겨울에만 마셔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겨울에 마시는 보이차가 다른 계절보다 더 큰 매력이 느껴진다. 겨울 외출 뒤 집으로 돌아와 꽁꽁 언 몸을 녹이는 데 보이차가 최고다. 팔팔 끓는 물에 보이 숙차(熟茶)를 우려 마시면 몸이 사르르 녹는다. 숙차 특유의 메주 냄새 비슷한 큼큼한 향과 맛은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볕이 따뜻한 겨울날에는 보이 생차를 꺼내 쨍한 맛을 즐기기도 한다. 숙차는  숙차대로 생차는 생차대로 겨울의 추운 날씨와 함께 하기에 제격이다. 청(清)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푸이(溥儀)도 겨울이면 보이차를 즐겼다고 하니 겨울과 보이차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만은 아닌 것 같다.


보이차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때는 늘 조심스럽다. 워낙 마니아마다 의견이 제각각이어서다. “보이차는 이러이러한 차다”라고 섣불리 의견을 냈다가는 집중포화를 받기 일쑤다. 물론 그런 것이 두려웠다면 차에 관한 글을 쓰지도 않았겠지만 말이다.


보이차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를 이룰 만큼 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인연인지 필연인지 중국에서 처음 접했던 차도 보이차였다. 다오위안탕(道源堂)은 윈난(雲南)의 고수(古樹) 차밭에서 차를 제작해 판매하는 차관(茶館)이었다. 그래서인지 다오위안탕에서 파는 보이차가 내 차 생활의 첫사랑이었고 지금도 가장 사랑하는 차이기도 하다.


제대로 된 보이차는 정말 좋은 맛을 낸다. 건강에도 좋다. 다른 차들과 달리 보이 숙차는 온종일 옆에 두고 마셔도 크게 탈이 나지 않는다. 이건 내가 수년간 자신에 대한 임상을 통해서 얻은 ‘경험적 사실’이기 때문에 믿어도 좋다.


‘보이차를 처음 맛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맛본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보이차의 매력은 마시면 마실수록 더 도드라진다. 그래서인지 이 사람 저 사람 말을 보태 때로는 만병통치약처럼 보이차를 떠받드는 사람도 있다.


보이차를 주로 마시는 지역은 중국과 한국 등이다. 최근에는 유럽과 미국에서도 마시지만, 여전히 주요 소비지라면 한중이 대표적이다. 재밌는 것은 보이차를 소비하는 지역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상이하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 본토와 홍콩, 타이완(臺灣)에서도 각각 다르다.


 홍콩과 타이완에서는 후발효된 보이차를 즐겨마신다. 

홍콩의 보이차

홍콩에서는 보이차를 굉장히 오래전부터 애용했다. 대략 1850년대부터 윈난과 광둥(廣東)에서 홍콩으로 보이차가 넘어가 판매되기 시작했다고 하니 150년도 넘은 셈이다. 당시 홍콩에서 보이차는 한국의 함바집에서(건설 현장 식당) 내놓는 보리차 수준 음료였다. 본토에서 돈을 벌기 위해 몰려든 본토 노동자들과 홍콩 원주민들이 차러우(茶樓)에서 아침으로 딤섬을 먹을 때 공짜로 내주는 던 음료가 보이차였다. 물론 당시에도 고급 보이차가 있었지만, 홍콩에서 즐기던 보이차는 그런 수준에 불과했다. 찻잎도 여린 잎이 아닌 8~9등급의 거친 잎으로 만든 보이차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홍콩은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릴 만큼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일구게 된다. 공사판에서 콘크리트를 치던 노동자는 어느덧 건설 회사의 대표가 됐다. 이런 사람들은 재산이 어마어마하게 불어났음에도 고생하던 시절 마시던 보이차를 잊을 수는 없었다.


차의 강한 특성 중 하나인 ‘인 박힘’도 홍콩인의 보이차 수요를 지속하고 늘리는 데 한몫했다. 나 역시도 이틀 정도만 마시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할 정도로 보이차를 찾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장님이 된 홍콩 사람들은 더는 막일 판에서 마시던 공짜 보이차를 마시기 싫어했다. 결국 홍콩 자본은 보이차 원료인 사이칭마오차(晒青毛茶)가 생산되는 윈난으로 몰려갔고, 본인들의 입맛에 맞는 차를 주문 제작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홍콩에 들어온 보이차를 창고에 넣어 본인들 입맛에 맞게 잘 숙성시켰다.


이전에는 보이차가 들어오면 그해에 죄다 소진시켰다. 공짜로 제공하는 차이기에 따로 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홍콩의 비싼 부동산 가격을 생각한다면 공짜로 내주는 차인 보이차를 보관하기 위해 굳이 임대료를 들여가며 창고를 운영할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


상황이 바뀌었다. 질 좋은 보이차가 홍콩으로 들어오고 홍콩 지하 창고에서 습기를 먹어가며 곰팡이를 피운 보이차는 지상 창고로 다시 올려져 통풍이 잘되고 건조한 창고에서 곰팡이가 사라질 때까지 잘 익혀졌다. 그렇게 10년 이상을 묵힌 차들이 시장에 나왔다. 이 차들이 요즘 우리가 만나는 차계의 골동품, 보이차의 모습이다. 보이차 좀 마신다는 사람들의 입맛 표준은이렇게 홍콩 보이차의 역사와 결을 같이 한다.


타이완의 보이차

타이완의 보이차는 어땠을까. 1980년대가 되면서 타이완 사람들은 본토의 고향 집을 방문할 수 있게 됐다. 당시만 해도 타이완에서 직항 항공편이 없어 홍콩을 경유해야 했다. 신정현 작가의 <처음 읽는 푸얼차 경제사>에 따르면 타이완 사람들은 이때 홍콩에서 보이차를 처음 맛보게 된다. 알다시피 원래 타이완은 녹차와 우롱차가 유명하다.


보이차 맛을 본 타이완 사람들은 보이차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윈난을 찾아가 보이차를 주문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보이차에 고급문화를 덧씌웠다. 격식을 중시하는 일본의 차 문화도 첨가했다. 이렇게 타이완의 고급스러운 보이차가 탄생했다. 차를 알아보는 타이완 사람의 선구안, 여기에 문화적 요소를 불어넣은 그들의 노력은 보이차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중국 본토에서는 찻잎을 바로 따 즉석에서 끊이는 등 주로 생차와 햇차를 마셨다.


본토의 보이차

윈난에서도 보이차를 마셨다. 하지만 홍콩과 타이완 사람들이 즐기는 후발효(찻잎을 덖은 뒤 오랫동안 자연 발효시킴)된 보이차는 아니었다. 이들이 마시는 보이차는 자신의 집 마당에 심은 차 나무에서 잎을 따 즉석에서 끓인 것이었다. 내가 윈난을 방문했을 때도 소수민족이 집 앞 차 나무에서 찻잎을 따 곧바로 차로 마시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생차 그리고 햇차를 즐겼다.  


중국 본토에서 보이차를 즐기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홍콩의 지속적인 수요와 타이완의 보이차 러시, 국유화됐던 차장의 민영화 이후에야 보이차는 사람들의 혀에 닿을 수 있었다. 물론 윈난을 제외하고 그렇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도 관심과 사랑을 받는 보이차는 점차 웰빙형으로 즐기는 추세다.


한국의 보이차

그렇다면 한국의 보이차는 어떨까. 한국의 보이차에는 여러 모습이 섞여 있다. 보이차를 굉장히 초기부터 마셨던 ‘엄근진 유생형’ 보이차 마니아부터 건강을 위해 마시는 ‘웰빙형 마니아’, 다이어트를 위해 마시는 ‘다이어터 형 마니아’ 등 소비층이 다채롭다. 초기부터 보이차를 마셨던 사람들은 ‘생차 제일주의’를 고수하며 숙차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숙차는 가짜 보이차’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기도 한다. 진기(묵힌 햇수)가 오래된 차가 아니면 상종도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한국에서도 보이차 마니아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차 업계에서는 자본주의가 고도화하고 사회가 발전할수록 차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고 판단한다. 내 생각도 그렇다. 사람이 먹고 살 만해지고 혹독한 현실에 내몰릴수록 신체와 정신능력을 각성시키는 음료들보다 심신의 안정을 찾아주는 음료를 찾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보이차는 ‘웰빙형’에 가까워지고 있다.


겨울이 깊어 가고 있다. 보이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앉아 있다. 앞으로 석 달 동안 최상의 환경에서 보이차를 마실 수 있어 기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리고 더 오래오래 겨울 보이차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세월은 흐르고 내가 차를 즐길 수 있는 날도 하루씩 줄어들고 있으니 말이다. 


글 | 김진방(한국)

사진 | 인공지능(AI)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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