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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예술 둔황, 장인 정신으로 이어가다


2025-02-20      

둔황 연구원 문화재보호 기술서비스센터 직원이 벽화를 복원하고 있다.


역사 문헌에서 묘사된 막고굴(莫高窟) 풍경은 다음과 같다. “(당곡·宕谷 일대는) 냇물 양옆에 나무들이 늘어서 있고, 곳곳에 사찰과 울창한 숲이 있다.” 그러나 당(唐)나라 이후 둔황(敦煌) 지역은 사막화가 급격히 진행돼 서기 366년 악존(樂僔)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갔던 숲과 들판은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를 마른 강바닥과 끝없이 펼쳐진 모래가 메웠다.


1600여 년의 세월 속에서 바람과 모래의 침식을 받아온 막고굴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 안에 담긴 혁신과 창조의 유전자는 여전히 살아있어 중화 문명의 역사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고 중화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대대로 계승하고 있다.


둔황 연구원 문화재디지털화 연구소 직원이 막고굴 제341굴에서 영상을 수집하고 있다.


보존: 다음 천 년을 위해

“훼손된 많은 부분이 대부분 복원됐고, 지금은 기갑(벽화 바탕색 층이나 안료 층이 갈라져 비늘 모양으로 들뜨거나 탈락되는 현상)과 부풀어 오름(주로 벽화 안료 층이 작은 수포 모양으로 부풀어 오르면서 벽화 기저에서 분리되는 현상)을 처리하고 있다. 소상(塑像)은 이미 복원 완료됐다.” 인즈훙(殷志宏) 막고굴 제55굴, 둔황 연구원 벽화 복원사의 말이다.


10세기 전후 중원의 대지에서는 전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변방에 있던 둔황은 상대적으로 평온했다. 당시 이 지역을 다스리던 조(曹)씨 가문은 불교를 믿었고 막고굴에 비교적 큰 규모의 석굴을 개착했다. 조씨 가문은 둔황에 독특한 스타일을 지닌 불교문화를 창조했고 막고굴 제55굴에서 당시 석굴 개착의 성대한 광경을 어렴풋이 엿볼 수 있다.


천 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제55굴을 복원하기 전까지 이 동굴 내부는 알칼리화로 인한 들뜸(벽화 바탕에 가용성 염분이 습한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용해돼 결정이 생겨 기저층 구조가 파괴되고 알칼리성 가루가 생기는 현상)이나 부풀어 오름 현상으로 벽화의 대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또 기갑으로 발생한 벽화의 안료 층이 생선 비늘처럼 겹겹이 일어나 생동감 넘치던 원래의 불상이 흐릿하게 변했다. 제55굴에 기록된 역사 문화 정보를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해 2022년부터 둔황 연구원 문화재보호 기술 서비스센터의 작업자들은 제55굴에서 ‘벽을 마주하는’ 작업에 몰두해 왔다.


“현대의 문화재 보호는 최소한의 개입이 원칙이다. 막고굴 제55굴의 보존·복원에 사용하는 재료와 방법도 모두 가역적이다. 가능한 원래 상태를 유지하도록 노력하며 ‘보존을 위한’ 파괴를 피하고 있다. 기술이 못 미치면 차라리 그대로 두는 방법을 택한다. 앞으로 더 새로운 재료, 더 나은 복원 방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미래 복원을 위한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인 복원사는 다른 굴과 마찬가지로 막고굴 제55굴도 복원 전 일련의 보존 절차를 엄격히 준수했다고 말했다. 우선 55굴이 가진 역사, 예술, 과학 가치를 종합적으로 검토 및 평가하고, 벽화 보존 상태를 상세하게 조사하고 기록했으며, 그 환경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했다. 동시에 제작 재료와 손상 메커니즘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수행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복원에 사용할 재료와 기술 방식을 선정해 보존 복원 방안을 마련한 다음 보존 작업을 시작했다.


제55굴 한 구석에서 복원사가 기갑된 벽화를 복원하고 있었다. 그는 측면에 들뜬 벽화 뒤에 병 입구를 대고 유기 규소와 아크릴레이트가 혼합된 접합제를 조심스럽게 주입했다. 그런 다음, 복원용 칼로 면지를 받쳐 들뜬 벽화를 단단하게 다시 붙이고 눌러 굳혔다.


기갑은 흔히 발생하는 손상이지만 숙련된 복원사라도 하루에 최대 손바닥만 한 크기의 벽화 한 조각을 복원하는 것이 고작이다. 부풀어 오름 현상을 복원하는 것은 더 오래 걸린다. 절차가 더 많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보존, 충전재 주입 및 건조 대기만으로도 며칠이 걸린다. 건조가 완료된 뒤에도 염분 제거 처리가 필요하다. 벽화 복원가는 ‘벽화의 의사’다. 말을 할 수 없는 ‘환자’를 상대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과정은 느리지만 서두르면 안 된다. 확실한 연구와 완벽한 복원 방법, 재료 실험 결과 없이 성급하게 복원해버리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인 복원사의 말이다. 제55굴은 둔황 막고굴 중 대형 굴에 속하는데 벽화 면적이 500여 ㎡에 달한다. 이런 굴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7~8명으로 구성된 팀이 4~5년 동안 작업에 매달려야 한다.


벽화 복원의 의미에 대해 인 복원사는 “우리가 복원한 문화재는 적어도 앞으로 십수 년, 심지어 수십 년까지 안정적으로 보존할 수 있다. 그러면 후대 사람들도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둔황에는 인즈훙과 같은 벽화 복원사가 100여 명이 있다. 막고굴에 현존하는 벽화는 4만 5000㎡ 규모다. 80년 가까운 경험을 축적한 둔황 연구원은 체계적인 벽화 보호 기술과 과학적 절차를 확립했다. 막고굴의 최대 적은 시간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막고굴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막고굴을 최대한 오래 보존하는 것이 모든 관계자들의 초심이다.


막고굴 제341굴에서 둔황 연구원 문화재디지털화 연구소의 위인이 촬영한 영상의 기술 매개변수를 컴퓨터로 점검하고 있다.


재창조: 역사의 목소리를 듣다

1944년 둔황 예술 연구소(둔황 연구원의 전신) 설립 전까지 약 400여 년 동안 막고굴을 관리하는 사람이 없었고, 막고굴 문화재 보존은 여러 위험과 위협에 노출돼 있었다. 찬란한 둔황 문화를 지키기 위해 문화재 자체 보호와 복원 작업 외에 둔황 연구원은 선진 기술을 이용해 둔황 석굴의 문화재 데이터를 수집, 저장, 가공해 디지털 세계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했다.


“이 4세대 고화질 자동 촬영 설비는 소프트웨어 제어를 통해 설정된 매개변수와 순서에 따라 분할 촬영해 전체 벽면의 정보를 기록한다.” 막고굴 제341굴에서 둔황 연구원 문화재디지털화 연구소의 장타오(張濤)가 이같이 말했다.


촬영된 벽화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컴퓨터로 전송되면, 한쪽에서 둔황 연구원 문화재디지털화 연구소의 위인(余音)이 화면을 보며 이미지를 검사한다. “동굴의 크기, 구조, 스타일이 저마다의 특색을 갖고 있으며 왕조별 심미관도 다르다. 천 개의 부처가 각각 자태를 지니고 있어 각 동굴의 데이터 수집 작업은 맞춤형 계획을 통해 진행된다.”


데이터 수집은 디지털 막고굴 구축의 첫걸음일 뿐이다. 벽화를 디지털화해 영원한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면 이미지 수집 후 연결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돼 한 사람이 하루에 약 20장의 사진을 이어 붙일 수 있어 벽화 한 면을 완성하는데 2개월 정도가 걸린다. 이 과정에 생기는 오차는 밀리미터 단위로 제어해 인물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까지도 ‘이음새 없이’ 연결하며, 이후 보정 작업을 진행해 형태 변형을 예방한다.


채색 조각상의 3D 재건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 막고굴 제45굴의 1m 높이의 주불 조각은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재건하는 데 사용된 삼각면만 무려 400여만 개 이상이고, 막고굴 제158굴의 15.6m 높이 열반상의 3D 재건에만 2년이 걸렸으며, 사용된 삼각면은 1억 개가 넘었다.


2006년 4월, 둔황 연구원은 데이터센터(이후 문화재 디지털화 연구소로 개명)를 설립해 주로 둔황 석굴 및 관련 문화재 디지털화 기술 연구와 응용 작업을 담당했다. 지속적인 테스트와 탐색, 연구를 통해 복잡한 동굴 환경에서 정밀하게 조명을 배치하는 방법, 곡률이 제각각인 벽화에서 고품질 이미지를 수집하는 방법, 이미지 연결 시 발생하는 변형 제어 방법 등 일련의 기술 난제를 해결해 벽화 디지털화 핵심 기술과 업무 규범을 확립했다.


천 년 동안 문화재는 매일 노후화가 진행돼 왔다. ‘영구 보존, 영속 활용’을 실현하는 것은 문화재 보호 전문가들이 직면한 난제다. 둔황 연구원에게 문화재 디지털화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언젠가 석굴 벽화 등 문화재가 현실 세계에서 사라진다고 해도, 다원화와 스마트화가 결합된 석굴 문화재 디지털 자원 데이터베이스에 둔황 석굴 정보가 영원히 보존돼 후대에도 계속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둔황 연구원 미술 연구소의 예술가들은 성당(盛唐) 시기 웅장함을 품고 있는 막고굴 제172굴을 복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특히 한웨이멍(韓衛盟) 둔황 연구원 미술 연구소 부소장이 이끄는 복원성 임모(臨摹) 프로젝트는 둔황 연구원의 해외 전시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성당 시기에 건설된 막고굴 제172굴의 남북 벽면에는 거대한 벽화가 각각 한 폭씩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대당성세(大唐盛世) 벽화 예술의 정수라고 할 수 있지만, 벽화 내용의 많은 부분이 변색돼 바래졌고 일부 소실된 부분도 있다. 2016년부터 둔황 연구원 미술 연구소의 예술가 십여 명이 동굴 전체의 복원 임모 작업을 시작했다. 이는 둔황 연구원이 처음으로 시도한 굴 전체 복원 임모 프로젝트였다.


임모는 막고굴의 예방적 보호를 위한 중요한 조치 중 하나다. 1955년 당시 둔황 연구원 원장이었던 돤원제(段文傑)는 제130굴 <도독부인예불도(都督夫人禮佛圖)>의 연구성 복원 임모를 완료했고, 이는 복원 임모의 모범 사례로 남았다. “벽화를 잘 임모하기 위해 많은 연구와 비교 작업을 했다. 이미지가 불분명한 부분은 보존이 잘 된 다른 곳에서 근거를 찾았고 수차례 고증을 거쳐 완전하게 보완했다. 즉, 복원 임모는 임의로 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역사적 근거가 있어야 하고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돤 전 원장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다. 그는 사라질 위기에 놓인 당대 대형 미인도를 보존하는데 성공했다. 또, 그가 정리한 벽화 임모 방법은 후대로 이어져 오늘날에도 사용되고 있다.


임모는 예술가의 개성을 구속하는 과정이다. 돤 전 원장은 둔황의 청년 화가들에게 “먼저 예술가의 낭만과 열정은 잠시 접어두고, 이곳의 물과 음식에 익숙해지면서 십 년 동안 꾸준히 임모를 해 봐라. 그리고 다시 창작을 논하자”라고 말한 바 있다. 세대를 이은 예술가들이 이 길을 따라 막고굴의 세계에 한 걸음씩 다가갔다.


2003년, 한웨이멍 부소장은 시안(西安) 미술학원 유화과를 졸업하고 둔황으로 왔다. 2012년 한 부소장은 일본 유학에서 다녀온 뒤에야 막고굴의 우수성을 깨달았다. “일본인은 여전히 당나라 때 중국에서 전해진 기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래서 귀국한 뒤 우리의 옛 기법을 이해하고 벽화에 담긴 의미를 읽어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옛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기술 등을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을지는 각자 수행에 달려 있다.”


한 부소장은 “석굴에 들어가 ‘벽화와 마주하는 것’은 자아를 성찰하는 과정이다. 벽화 내용 자체가 마음을 움직여 더 평온해진다”라고 말했다. 임모는 천 년 전 장인과 마음을 소통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제172굴에는 찬란히 번영했던 당나라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를 완전하게 재현하는 것은 그들의 공통된 바람이다.


둔황 연구원 보조 관원 푸샹보(付祥波)가 미술연구소에서 조각상에 채색하고 있다.


선양: 문명의 영원한 전승

관광객을 실은 버스들의 행렬이 새벽의 짧은 고요함을 깨우며 막고굴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전국 각지에서 방문한 여행객들이 동굴로 들어가자 막고굴이 만든 천 년의 시간이 관광 해설사의 설명으로 생동감 넘치게 살아났다. ‘막고학당(莫高學堂)’에서 여행객들은 광물성 염료의 전통 제조법과 벽화 복원을 배우며 천 년 전 장인들이 막고굴 안에서 어떻게 벽을 마주하며 수행했는지 체험한다. 막고굴과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둔황 석굴 문화재보호 연구원 전시센터에는 1:1 복제 동굴 8개가 전시돼 있어 북량(北涼)에서 원(元)나라까지 석굴 예술을 감상할 수 있다.


천웨이(陳唯)는 전시센터 해설사로 관광객에게 특별전 설명을 마치면 1층 홀에 마련된 전시대 앞에서 책을 읽으며 관광객의 동향을 살핀다. 경력 2년 차인 천 해설사는 설명을 하다 보면 관광객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전시관을 순찰하거나 쉬는 시간에 틈틈이 공부를 한다. “연구원 자료센터에 둔황학 관련 책과 자료가 많이 소장돼 있다. 학자들의 최신 연구 성과도 있어 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둔황 석굴과 장경동에서 출토된 유물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둔황 문화에는 깊은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함의가 내포돼 있어 중국 고대 역사 문화를 연구하는 귀중한 사료다.


2024년 1월 ‘백권본(百卷本)’ <둔황석굴전집(敦煌石窟全集)>의 제2권 <막고굴 제256, 257, 259굴 고고학 보고서>가 정식 출간됐다. 동굴의 세부 사항이 전부 기록돼 있는 이 고고학학 보고서는 고고연구소 학자들이 13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인 내용이 담겨있다. 둔황 학술사에는 가장 기초적인 연구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 역사가 그들에게 부여한 학술 사명은 연구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으로 이는 한 도시의 지하 기반 구조물을 건설하는 것과 같다. 오늘날 역사, 고고학, 예술, 문화재 보호 등 다양한 학문을 아우르는 둔황학은 방대한 연구 성과를 거뒀다. 2024년 8월 27일, 전국적인 둔황학 연구 성과와 1차 자료를 집대성한 둔황학 연구 문헌 데이터베이스가 공식 오픈했다. 이는 전 세계 학자를 위해 구축한 개방과 공유의 학술 자원 플랫폼으로 세계 둔황학 발전에 새로운 동력을 주입했다.


둔황학 연구 문헌 데이터베이스는 ‘디지털 둔황’의 일원이다. 최근 둔황 연구원은 막대한 양의 디지털 자원을 활용해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갖춘 디지털 문화 상품을 제작했다. 중화 우수 전통문화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문화재와 문화유산이 빛을 발하고 영원히 발전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역사적 원인으로 원작의 채색 부분이 많이 탈락되고 퇴색돼 임모자의 색채 소양이 높아야 다양한 색채를 식별할 있다.

 

‘디지털 둔황’ 자원 데이터베이스에 로그인하면 1:1 비율로 제작한 실제 동굴의 3D 모형이 생성되면서 사막 한가운데 있는 천 년의 보물이 눈앞에 펼쳐진다. ‘디지털 장경동’에 들어서면 이용자는 ‘시간을 거슬러’ 당나라 후기, 북송, 청나라 말기 등 시대로 순간 이동할 수 있다. ‘둔황을 찾아 떠나는 탐험-디지털 둔황 몰입전(尋境敦煌—數位敦煌沉浸展)’에서 관람객은 막고굴 제285굴의 ‘만신전(萬神殿)’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디지털 둔황’은 둔황 문화를 널리 알리는 중요한 창구이자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다양한 예술 전시회와 학술 행사 등이 중국내 각 도시를 비롯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튀르키예 등 국가와 지역으로 진출해 문명 간 교류를 촉진하고 민심을 연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둔황 문화의 찬란함은 세계 각 민족 문화의 정수가 융합된 것이다. 중화 문명이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융화되고 발전해 온 본보기로, 과거를 생생하게 이야기할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둔황 문화를 잘 보호하고, 연구하며, 발전시키고, 잘 선양하는 것은 인류의 염원이다. 둔황에서 출발해 중화 문명의 역사를 깊이 탐구함으로써 둔황 문화가 우리 세대뿐 아니라 자손만대에까지 이어지도록 하자. 


글 | 톈샤오(田瀟)

사진 | 둥팡(董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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