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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땅에서 개방의 땅으로…시짱을 가다


2024-09-26      

포탈라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권기식 회장


최근 초청을 받아 시짱(西藏)자치구의 라싸(拉薩)와 르카쩌(日喀則, 시가체) 등을 방문했다. 지난 5월 16일 오전 청두(成都) 톈푸(天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어느덧 히말라야의 설산 위를 날고 있었다. 저곳에도 사람이 산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인간의 생존력에 새삼 경외심이 들었다.


비행기는 어느덧 라싸 외곽 궁가(貢嘎) 공항에 착륙했다. 라싸 시내의 모습은 여느 중국 도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간판에 짱문(藏文)을 먼저 쓰는 것에 눈길이 갔다. 라싸는 인구 100만명의 대도시로, 라싸강 남쪽에는 인구 30만명 규모 신도시도 들어섰다. 현대식 아파트와 쇼핑센터를 보며 이곳에도 서울의 강남 같은 욕망의 도시가 있다는 생각과 인간 사는 곳은 어디나 다르지 않다는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시내 호텔에 여장을 풀고 라싸 제 8중학교를 방문했다. 학교 교장이 짱족 전통복장을 입은 학생들과 함께 맞이했다. 이 학교가 짱족과 한족, 다른 소수민족의 청소년들을 함께 교육하는 학교이다. 수업 중인 교실에 들어가니 학생들이 짱어(藏語)와 중국어를 함께 배우고 있었다. 특별활동 시간에는 시짱 전통 음악극과 서예, 장기 등을 선택해 배우는 것이 한국의 학교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2천여명에 이르는 학생 중 집이 지방인 학생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학생들 사이의 친밀도가 매우 높은 것 같았다. 참관을 마칠 무렵 체육관에서 학생들이 짱족(藏族) 전통 탈춤공연을 했다. 마치 안동 하회탈 공연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학교 참관을 마치고 탕카(唐卡) 학교도 방문했다. 탕카는 면화나 실크, 비단에 거대한 부처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전통적으로 틀을 짜지 않고 돌돌 말아 직물 뒷면에 그림을 부착하고 앞면을 비단 덮개로 얹는 형태로 제작된다. 시짱 불교 미술의 신비하고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전시관에 있는 탕카 작품들은 섬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저녁에 문성공주(文成公主) 공연을 관람했다. 문성공주는 송첸캄포(松贊干布, 617~650)와 결혼한 인물이다. 혼례 여정은 당 나라 수도 장안(長安)에서 라싸에 이르는 3000km의 길고도 험난한 여정이었다. 혼수품은 일상에 사용하는 용품 뿐만아니라 농업기술과 건축, 공예 등이 함께 전수돼 시짱 지역 문화적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 당시 곰파라 불리는 불교 사찰이 지어졌고 포탈라궁도 이때 건설됐다. 라싸시 외곽에 있는 무대는 웅장했다. 실제 산을 배경으로 축구장 보다 큰 무대를 만들고 포탈라궁 등을 꾸몄다. 출연 배우만 800여명이라고 하니 가히 중국적 스케일이 아닐 수 없다. 2시간의 공연시간이 한순간에 지나갈 정도로 몰입감이 있었다.


라싸의 대형 산수실경 무대극 <문성공주> 공연


17일 오전에는 포탈라궁을 방문했다. 라싸의 붉은 산 위에 흰색과 붉은색으로 칠해진 웅장한 건물은 1400여년의 풍상을 견디며 시짱의 대표적 건축물이 됐다. 포탈라궁의 총 건축면적은 13만㎡이다. 전체 부지는 36만㎡이며 높이는 13층으로 117m에 달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기 때문인지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았다.


오후에는 라싸시 소재 시짱자치구 정부청사를 방문해 런웨이(任維) 부주석 등 지방정부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한중 지방정부 교류 등에 대해 대담했다. 온화한 모습의 런 부주석은 “시짱자치구 방문을 환영한다”며 “앞으로 한국 불교계가 교류를 위해 시짱지역을 방문한다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필자는 “지난 20여년간 시짱자치구는 괄목할 성장을 이루었다”고 말하고 “한국인들의 불교 성지 방문 등을 적극 추진해 환경과 발전이 조화로운 시짱과 한국의 교류 및 협력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만찬을 마치고 인근 전통 수공예 제작소를 방문했다. 주로 야크털과 양털로 가방 등 각종 제품들을 만들어 파는 곳인데 장인들만 300여 명이라고 했다. 매우 좋은 제품이라 가방 하나를 구입했더니 총경리가 호랑이 수공예 인형을 선물했다. 선한 품성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8일 오전 시짱자치구 제 2의 도시인 르카쩌시로 갔다. 라싸시 신도시에 있는 기차역에서 직행 기차를 탔다. 라싸에서 르카쩌까지는 2시간이 걸렸다. 르카쩌는 초모랑마(珠穆朗瑪, 에베레스트) 자락에 있어 초모랑마로 향하는 중요한 관문이다. 라싸보다 해발고도가 200여m 더 높은 곳에 위치한 도시며 도시 면적은 라싸보다 크다. 인구 80만명 규모의 도시인데 최근 외곽지역에 공단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짱족 불교 겔룩파(格魯派) 4대 사찰 중 하나인 자시룬부(扎西伦布, 타시룬포) 사원도 방문했다. 짱족 불교 지도자 11세 펜 첸 어얼더니 췌지제부(額爾德尼·確吉傑布)가 있는 곳이다. 자시룬부 사원은 살아있는 불심의 현장이다. 기념일이 아닌 평일에도 시짱 전역에서 5천여명이 찾아와 기도를 올린다고 한다. 수행하는 스님만 880명이라고 하니 정말 큰 사찰이 아닐 수 없다. 자시룬부 사원은 1447년 창건됐으며, 15만㎡의 면적에 달한다. 사원 곳곳에 있는 안내판은 짱어와 중국어, 영어, 일본어, 한국어 등 5개 언어로 표기되어 있었다. 한국과의 교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오후에 짱족 마을을 방문했다. 정부의 지원으로 새롭게 조성된 마을이었다. 주민들의 생활은 안정되고 평화로워 보였다. 젊은 부부가 사는 집을 방문했다. 청보리 술을 내오고 과자를 권하는 등 환대가 극진했다. 여주인의 여동생이 푸젠성 샤먼시에서 한족 청년과 결혼해 잘 살고 있다며 자랑삼아 사진을 보여주었다.


르카쩌시 정부가 야심차게 조성한 공단을 둘러보았다. 아직 다 차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기반시설과 구획정리가 잘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단에서 청보리로 맥주를 만드는 공장을 방문했다. 깨끗한 제조시설을 통해 알콜 도수 1.5도에서 7.5도까지 다양한 맥주들이 생산되고 있었다. 공장 참관을 마치고 맥주를 시음했는데, 필자에게는 1.5도짜리 맥주가 입맛에 맞았다. 도수도 낮고 건강에 좋은 청보리로 만들었으니 음료 처럼 마셔도 좋을 듯 싶다.


자시룬부 사원에 기도하러 온 짱족 불교신자들 


저녁에 호텔에 돌아오니 르카쩌에 있는 중국인 친구들이 찾아왔다. 한명은 소수민족인 바이(白)족이고, 다른 한명은 한족이다. 이들은 저녁 겸 술을 대접하고 싶다고 했으나 나는 고산병 우려돼 찻집으로 가자고 했다. 은행원인 이들은 필자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1시간 거리인 바이랑(白郞)현 지인의 과수원에서 직접 딸기와 토마토를 따왔다며 르카쩌 명물인 구기자차도 함께 건넸다. 자연이 청정 무공해라서 그런가 사람들도 순수하기 그지없었다. 찻집을 나와 시내를 걷는 데 한 쇼핑센터에 '파리바게트'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 오지에서 한국 기업의 간판을 보니 반가웠다. 늦은 시간이라 가게가 문을 닫아 중국 친구들에게 빵을 사주지 못한 게 아쉬웠다.


시짱은 히말라야 설산에 둘러싸인 은둔의 땅이었다. 과거 중국의 전략은 토번이라 불리는 이민족이 기름진 땅 중원을 넘보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송첸캄포왕이 당나라 공주와의 혼인을 요구했을 때 이를 수락했던 것이다. 문성공주의 혼인은 평화와 문명의 사절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문성공주는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라싸에 이르는 먼 거리를 수많은 기술자와 물품을 가지고 이동했다. 낯선 땅에 얼굴도 모르는 이민족 남자를 찾아가는 문성공주는 함께 모시고 간 불상 앞에서 매일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그 불상은 지금 라싸에 있는 대조사(大昭寺, 조캉사원)에 모셔져 있다. 그래서 문성공주는 당나라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짱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신중국 건국 이후 시짱에서 농노제가 폐지되고 토지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래도 시짱은 여전히 은둔의 땅이었다. 그런 은둔의 땅이 이제 개방의 땅이 되고 있다. 결정적인 계기는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칭짱(靑藏)철도의 개통 덕분이었다. 지난 2006년 개통된 칭짱철도는 칭하이(靑海) 시닝(西寧)과 라싸를 잇는 고속철도로 총길이가 1956km이다. 칭짱고원 불모지를 달리는 고속철도는 은둔과 고립의 땅인 시짱에 사람과 물자를 끌어들였다. 사람은 몰려들고 물가는 싸졌다. 필자가 19일 저녁에 라싸 시내 상점가에서 만난 상인은 간쑤(甘肅)성 출신의 회(回)족이다. 그는 칭짱철도 개통 이후 라싸로 이주해 장사를 하고 있다. 현재 쓰촨성 청두에서 라싸를 잇는 총연장 1629km의 촨짱(川藏)철도도 건설 중이다. 이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라싸는 고속철도로 동남아 국가들과도 연결된다.


밤에 호텔 밖에 나와보니 고원의 맑은 하늘에 별들이 쏟아질 듯 총총하다. 하늘과 가까이 사는 사람들, 기도가 절절한 사람들, 그들은 시짱 사람들이다. 20일 아침 라싸 시내 산책 길에서 만난 두 여인은 먼 지방에서 출발해 몇달동안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면서 대조사로 가고 있었다. 오체투지는 부처님에 대한 무한한 존경의 의미로 이마를 포함한 오체를 바닥에 대고 절하는 것이다. 이 여인들의 이마에는 굳은살이 배기고 푸른 멍이 들었다. 이 절절한 기도는 무엇인가? 시짱에서의 일주일 내내 머리속을 맴도는 물음이다. 이번 여정에서 만난 선한 시짱 사람들에게 따뜻한 인사를 전하고 싶다. 짜시델레(扎西德勒, 당신의 행복과 행운을 빕니다).


글|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사진| 권기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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