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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로 이어지는 중한 역사와 문화


2024-06-17      



매년 4월은 동아시아에 복사꽃(桃花, 도화)이 만발하는 계절이다. 중국의 많은 지역에는 복사꽃 놀이를 가는 풍습이 있다. 베이징(北京)의 핑구(平谷), 시짱(西藏)의 린즈(林芝), 쓰촨(四川)의 룽취안이(龍泉驛), 저장(浙江)의 저우산(舟山) 등이 복사꽃 명소로 유명하다. 또한 장쑤(江蘇)의 우시(無錫)는 매년 ‘도화절(桃花節)’을 개최한다.


중국의 복숭아 문화

복숭아의 원산지는 중국이다. 중국 윈난(雲南)성에서 세계 최초의 복숭아씨 화석이 발견되어 복숭아의 진화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26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저장성 허무두(河姆渡) 신석기 시대 유적지에서는 6천여 년 전 야생 복숭아씨가 출토되었다. 허베이(河北)성 가오청(藁城)시 타이시(臺西)촌에서 출토된 복숭아씨는 중국의 복숭아 재배 역사가 적어도 3천년은 되었음을 보여준다. 당(唐)대 문학가 류종원(柳宗元)은 <곽탁타종수서(郭橐駝種樹書)>에서 복숭아 나무가 자두나무, 감나무, 매화나무, 살구나무와 각각 접목해 서로 다른 품종의 복숭아를 맺었다는 이야기를 기록했다. 고대 상업과 무역 왕래가 번성하면서 복숭아는 중국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유럽의 복숭아는 대부분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에서 전해졌다. 영어 피치(Peach)를 포함해 유럽 여러 언어에서 복숭아는 ‘페르시아에서 온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페르시아의 복숭아는 중국에서 실크로드를 통해 전해졌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 따르면 현장 법사는 치나북티(지금의 파키스탄 펀자브주 일대)에 도착해 현지에서는 복숭아가 생산되지 않고 사실은 오래 전 중국의 왕자가 가져와 심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현지의 ‘복숭아’라는 단어의 뜻은 ‘중국에서 가져온 것’을 의미한다.


복숭아, 복사꽃, 복숭아나무는 중국에서 매우 깊은 문화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 복사꽃은 사랑을 상징한다. <시경(詩經)>의 <주남·도요(周南·桃夭)>는 미인을 복사꽃에 비유하며 결혼을 축하했다. 삼국 시대에 조식(曹植, 조조의 셋째 아들)은 시를 지어 남쪽 지방 아름다운 여인의 용모가 복숭아와 자두 같다며 찬탄했다. 당나라 시인 최호(崔護)는 장안(長安)으로 가던 중 우연히 한 처녀의 집에 들러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듬해 그는 예전의 그곳으로 돌아왔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고 그녀도 보이지 않자 시 한 수를 지어 문에 적어 놓았다, 집안의 복사꽃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미인은 보이지 않는다는 ‘인면도화(人麵桃花)’라는 고사(故事)를 남겼다. 다행히도 최호가 다시 한 번 그 집을 찾았고 처녀가 집에 돌아와 문에 적힌 시문을 보고 상사병을 앓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처녀는 최호를 재회해 병이 나았고,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다.


고대 중국에서 복숭아와 복사꽃에 관한 시사(詩詞)는 셀 수 없이 많다. 그중 명(明)나라 문인 당인(唐寅, 자 백호)의 <도화암가(桃花庵歌)>는 매우 유명하다. 당인은 복숭아 과수원을 직접 가꾸고 자신을 ‘도화선인(桃花仙人)’이라 칭했는데, ‘도(桃)’의 동음어인 ‘도(逃)’를 사용해 세속을 떠나 자유를 추구하는 정신을 표현했다. 오늘날 중국인들은 우연히 맺게 된 인연과 사랑을 ‘도화운(桃花運)’이라 부른다.

복숭아는 주로 장수와 건강을 상징한다. 전설에서는 천상의 서왕모가 요지(瑤池) 옆에 반도(蟠桃, 감복숭아)나무를 심었는데, 반도 하나를 먹으면 장생불로(長生不老)할 수 있다고 한다. 서왕모는 매년 반도회를 열고 각계의 신불(神佛)들을 초대했다. 명대 소설 <서유기(西遊記)>에서는 손오공이 반도를 훔쳐먹었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중국의 신선 수성(壽星)은 손에 선도(仙桃)를 들고 있고 어르신 생신에는 장수를 의미하는 복숭아 모양의 빵을 찌는데, 이를 ‘수도(壽桃)’라 부른다. 많은 전통 중국 자기와 장식품, 서화 뿐만 아니라 정원과 건축에서도 ‘수도’와 ‘선도’의 모양이 자주 사용된다.


복숭아나무는 악귀를 쫓아내는 도구로도 잘 알려져 있다. 송(宋)나라 이전에는 춘제(春節)에 복숭아나무판에 덕담을 쓰거나 부적을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이 ‘도부(桃符, 설날 아침 마귀를 쫓기 위해 문짝에 붙이던 작은 나뭇조각)’와 ‘춘련(春聯, 새해를 맞아 빨간 종이에 대구를 적어 문이나 기둥 등에 붙이는 풍속)’의 모태이다. 도교에서는 복숭아나무로 만든 검, 영패 등의 법기가 신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당나라 때 많은 사람들은 복숭아나무의 성장, 개화, 결실을 국가의 운명과 연결지었다.


그 외에도, 고대 중국인들은 복사꽃로 술을 빚고, 복숭아와 쌀을 함께 익혀 ‘복숭아밥(蟠桃飯)’을 만들고, 복숭아씨를 꿰어 팔찌로 만들어 손에 쥐고 즐겨 놀았다. 또한 복숭아의 열매, 씨, 꽃, 줄기, 잎은 모두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으로 사용됐다. 오늘날 중국은 복숭아 생산량이 가장 많은 나라로, 수밀도(水蜜桃), 황도, 백도, 반도, 유도(油桃) 등 품종이 다양하며, 복숭아에서 파생된 다양한 문화가 깊이 뿌리를 내렸다.


한국의 복숭아 문화

한국의 복숭아 문화는 중국과 상통하는 점이 많다. <삼국유사>는 신라의 왕과 도화녀(桃花女)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용모가 아름다워 도화녀라 불렸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결혼해 낳은 ‘비형랑(鼻荊郎)’은 악귀를 쫓는 신령으로 여겨졌다. 이는 실제로 복숭아가 한국 문화에서 액막이와 아름다움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의 복사꽃이 추운 겨울에 피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여러 차례 기록돼 있는데 이는 역병과 전쟁, 지진 등의 재해가 일어나는 흉조로 여겨졌다.


필률(篳篥, 구멍이 여덟 개 있고 피리서를 꽂아서 부는 목관 악기)은 서역에서 온 관악기의 하나로 당나라 때 성행했고 지역마다 제작 방식이 달랐다. 고대 한국에서는 복숭아나무 가지로 많이 제작했기 때문에 ‘도피필률(桃皮篳篥)’이라 불렸다. 서왕모와 반도(蟠桃)의 전설은 일찍이 고대 한국에 전해졌다. <고려사>에는 왕이 유희를 즐길 때 시신(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시던 신하, 侍臣)들이 생화와 선도(仙桃)를 앞 다투어 준비하는 모습이 기록돼 있다. 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 시대에 당악(唐樂)인 <헌선도(獻仙桃)>라는 노래가 있다. 공연자가 서왕모로 분해 반도를 바치며 왕의 장수를 기원하는 이 행사는 근대까지 이어졌다. 또한 <삼국유사>에는 ‘선도성모(仙桃聖母)’가 비구니를 일깨워 불사를 세웠다는 전설도 기록돼 있다. ‘선도성모’는 고대 중국 황실의 딸로 진한에 와서 신라의 시조를 낳았다고 전해진다.


조선 시대 태종은 교서관에 홍도(紅桃)를 하사하고 ‘홍도연(紅桃宴)’을 개최했으며, 예문관의 ‘장미연(薔薇宴)’, 성균관의 ‘벽송연(碧松宴)’과 매년 번갈아 개최하며 유아(儒雅)를 중시했다. 또한 조선 시대에는 복사꽃, 종도(種桃), 영도(詠桃) 등과 관련된 시문이 많이 남아있다. 그중에서도 조선 후기의 문신 김진규의 <도화>는 요지의 반도 과수원에서 복사꽃이 만발하고, 선녀와 밀회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묘사했다. 조현명의 <도화>에서는 농경생활을 노래했는데, 그는 봄에 1만 그루의 복숭아나무에 꽃이 피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부귀영화라 여겼다. 문인 남상길의 <도화>는 복사꽃이 만개해 봄빛을 가득 머금은 정원을 묘사했으며 깨달음을 얻은 승려도 이 절경에는 가슴이 설레일 것이라 생각했다.


<사기(史記)>에서 ‘도리불언이성혜(桃李不言而成蹊,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는 말을 할 줄 모르지만 꽃이 아름답고 열매는 맛이 있어 사람들이 줄줄이 열매를 따러 온 바람에 나무 아래에는 절로 길이 만들어졌다)’라 했다. 중한 양국의 문화 교류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거울 삼아 소통하고 교류하며 자연스레 형성된 것으로 오랜 역사와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 


글|위셴룽(喻顯龍), 상하이(上海)외국어대학 글로벌문명사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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