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間一壺酒,獨酌無相親。舉杯邀明月,對影成三人。
月既不解飲,影徒隨我身。暫伴月將影,行樂須及春。
我歌月徘徊,我舞影零亂。醒時同交歡,醉後各分散。
永結無情遊,相期邈雲漢。
Huājiān yìhújiǔ dúzhuó wúxiāngqīn. Jǔbēi yāomíngyuè duìyǐng chéngsānrén.
Yuè jì bùjiěyǐn yǐng tú suíwǒshēn. Zàn bànyuèjiāngyǐng xínglè xūjíchūn.
Wǒgē yuèpáihuái wǒwǔ yǐnglíngluàn. Xǐngshí tóngjiāohuān zuìhòu gèfēnsàn.
Yǒngjiéwúqíngyóu xiāngqīmiǎoyúnhàn.
화간일호주 독작무상친 거배요명월 대영성삼인
월기불해음 영도수아신 잠반월장영 행락수급춘
아가월배회 아무영령란 성시동교환 취후각분산
영결무정유 상기막운한
꽃들 가운데 술 한 동이 두고, 벗도 없이 홀로 마시네.
잔 들어 밝은 달을 청하고, 그림자를 대하니 이제 세 사람이군.
달은 어차피 술을 못 마시고, 그림자는 부질 없이 내 몸만 쫓는구나.
그럼 잠시 달과 그림자와 더불어, 짧은 봄 놓치지 말고 즐겨보자.
내 노래에 어슬렁거리는 달, 내 춤에 난무하는 그림자.
맨 정신으로 함께 놀다, 취한 후엔 각자 제 갈 길.
영원히 맺어진 무정한 인연이여, 저 멀리 은하에서 또 만나길 기대하노라.
너무나도 유명한 이백(AD 701-762)의 너무나도 유명한 <월하독작>, 같은 제목의 4수 가운데 제1수다. 동서고금 가장 사랑 받는 시편 중 하나이지 싶다. 서기 744년, 이백이 장안(長安)의 짧은 관직생활에서 깊은 실의를 맛보던 시절의 작품이다. 극치의 낭만적 미학을 보여주는 이 시가 ‘실의의 결과물’이라니, 역설일까? 인생 자체가 원래 역설 덩어리라면 정설이라 하는 게 맞을까? 아무튼 <월하독작>제1수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태어난 매혹의 걸작이다.
그를 절망에 빠뜨린 것은 ‘나라 꼴’이었다. 탁월한 군주였던 현종이 30년의 태평성대를 보내고 삶의 권태에 시달리다 양귀비를 만나 자폐적 향락의 세계에 빠져들어 있었다. 작심한 듯 연호까지 바꾸고(天寶) 정사에서 거의 손을 뗀 황제의 빈 자리는 간신배들 차지가 된다. ‘개원의 치(開元之治)’로 쌓인 영광은 ‘안사의 난(安史之亂, AD 755-763)’이라는 파국을 향해 빠르게 무너져갔다. 특채 형식으로 등용된 이백 역시 호가호위하는 무리들을 못 견디고 1년만에 뛰쳐나온다.
이백의 시편들은 퇴고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일필휘지 형으로 이름 높다. 비범한 시상에 평이하고 진솔한 시어, 게다가 형식미도 뛰어나 천의무봉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백에게만 주어진 칭호 ‘시의 신선(詩仙)’은 그런 점에 대한 경탄이다. ‘인간세상에 귀양 온 신선(謫仙人)’이란 별명은 거침없는 자유로움에의 찬사일 터, 이 자유로움을 예술적으로 완성시킨 것이 이백 생애 세 가지 키워드, 달-술-시였다. <월하독작> 첫 수는 그 모든 요소를 다 가지고 있다. 주로 ‘술’에 관한 토로로 일관한 제2-3-4수에 비해 제1수가 유난히 사랑받아 온 큰 이유가 아닐까 한다.
한 구 한 구가 다 절묘하지만 후반부에 특히 끌린다. 봄꽃 흐드러지게 핀 가운데 홀로 술을 마시다 달과 그림자를 벗 삼아 춤추고 노래한 시간을 “맨 정신일 때(醒時)”라 했다. 술에 취해 몽롱한 상태로 노래하며 비틀비틀 춤추던 순간이야말로 ‘생생한 시간’이었다는 뜻인가? 달과 시인 그리고 시인의 그림자, 이들은 셋이자 하나였다. 그러나 시인이 만취해 몸을 가눌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는 달도 지고 그림자도 사라진 시각일 터, 그 상황을 “醉後各分散”이라 노래했다. 미련 없이 사라진 달과 그림자에 대해 시인은 “無情遊”, 무정한 인연(교유)이라고 서운해 하면서도 “영원히 맺어졌다(永結)” 단언하며 재회를 고대한다. 절절하면서도 사랑스럽다. 긴 말 필요 없을 작품을 두고 사족이 심했다. 부디 활용할 기회를 위해 암송해 두십사 당부 드리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