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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공간’ 아름다운 중국의 정원


2019-07-25      글| 곽예지(아주일보 기자)

베이징 서쪽에 위치한 이화원은 현재 보존이 가장 잘 된 황가 행궁 어원이다.  사진/ 왕헌신(王獻臣)

중국에서 정원은 정원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예부터 중국에서는 ‘인간은 자연을 감상함으로써 기쁨을 얻을 수 있고,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법이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원을 만든다는 것은 자연을 축소해 감상하기 위함이자 시인에게는 시상을, 화가에게는 그림의 소재를, 작가에게는 소설의 영감을 제공하는 ‘영혼의 공간’을 만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필자는 고등학교 시절을 중국에서 보냈다. 운이 좋게도 정원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쑤저우(蘇州)에서 생활하면서 중국 정원의 아름다움을 두 눈으로 직접 감상할 기회가 많았다. 쑤저우 4대 정원과 베이징(北京)의 이화원(頤和園)을 소개하고 필자가 느낀 한국과 중국 정원의 차이점을 설명하려 한다.

쑤저우의 4대 명 정원 중 하나인 창랑정은 쑤저우에서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정원이다. 사진/ VCG

아름다움의 극치, 쑤저우의 4대 정원 
쑤저우에는 여러 개의 정원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정원은 ‘쑤저우 4대 정원’으로 불리는 졸정원(拙政園), 유원(留園), 창랑정(滄浪亭), 사자림(狮子林)이다. 이 중 졸정원은 명나라의 관리였던 왕헌신(王獻臣)이 고향으로 낙향하여 1522년에 지은 정원이다. 쑤저우의 가장 큰 정원이자 중국 4대 명원으로 꼽힌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을 만큼 아름답다. 졸정원이라는 이름도 매우 특이한데 진대의 시 한 구절 ‘졸자지위정(拙者之爲政·어리석은 자가 정치를 한다)’에서 본뜬 이름이라고 한다. 졸정원에는 아름다운 건물과, 정원 전체를 압도하며 건물과 나무와 사람을 비추는 물이 있다. 물처럼 굽이치며 정원을 휘돌며 감싸는 회랑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며 더운 날이나 비 오는 날에도 졸정원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쑤저우는 산이 없는 평평한 곳이지만, 졸정원 안에는 기암괴석과 오묘한 모양의 산들이 가득하다. 명원이라고 해도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곳이다. 개인 소유가 아니고 국가가 관리하는 곳이라 유명세를 치르느라 하루 종일 관광객들이 가득 들어차 있어서 그 고적함을 감상할 여유가 없다지만 여전히 그 아름다움은 빛을 내고 있다. 

필자가 느끼기에 졸정원은 나무 하나하나 마다 이야기가 있고, 음악이 있으며, 시와 그림이 있는살아 숨쉬는 거대한 작품 같았다. 숨결마다 운율이 느껴지며, 눈길이 선을 이루고, 감정이 색채가 되는 작품 말이다.  

사자림도 마찬가지다. 쑤저우 시내 동북쪽에 있는 원림로(園林路)에 자리한 사자림은 중국 강남의 대표 정원 중 하나로 원 말기 1342년 설립됐다. 원대 승려인 천여선사(天如禪師)의 제자들이 스승을 추모하기 위해 지었다고 전해진다. 정원이 사자 모양의 태호석(太湖石)으로 꾸며졌기 때문에 ‘사자림’이란 이름이 붙었다. 스승이 득도한 곳이 천목산(天目山) 사자암(獅子岩)이라 사자림으로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태호석은 물의 영향을 받아 주름과 구멍이 난 돌의 일종이다. 글로만 보면 “그게 무엇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사진을 보면 무릎을 ‘탁’치며 “이 바위가 태호석이구나”라고 할 만큼 낯 익은 돌이다. 

이 갖가지 사자의 모습을 닮은 영롱한 태호석으로 이루어진 석가산이 사자림 정원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기암괴석의 모습이 매우 힘차고 정교하며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에 따라 마치 사자의 굴 속에 들어온 듯한 사자림에는 9개의 코스, 21개의 작은 동굴 입구가 있다. 청나라 건륭황제의 휘호가 있는 진취정(眞趣亭)이라는 정자도 볼 수 있다. 당대의 수많은 학자와 문인들이 이곳을 방문했으며, 사자림을 배경으로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시화집 ‘사자림기승집(獅子林紀勝集)’과 주덕윤(朱得潤)의 ‘사자림도(獅子林圖)’가 유명하다. 천여선사 사후 사자림은 쇠락하였으나, 명나라 만력제 17년인 1589년 장안의 명성화상이 사자림을 재건했다. 그 후 몇 차례 몰락과 개축을 거듭하다가 1917년 상하이(上海)의 거부 패윤생(貝潤生)이 사자림을 구매했다. 1954년 패윤생의 손자가 대중에 공개했고,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유원(留園)은 쑤저우 서북쪽 유원 거리에 위치하는 명대 정원이다. 사실 졸정원, 사자림, 창랑정은 직접 가봤지만 유원은 가보지 못했다. 아름답다는 이야기와 사진만으로 접했을 뿐이다. 유원은 1961년 중국 전국 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됐고,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1593년에 완공된 유원은 본래 명나라 관리의 개인 정원으로 만들어졌으나, 청나라 관리 유서(劉恕)가 이어받아 한벽산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도광 3년인 1823년 대중에 공개됐다고 한다. 이후 광서 2년인 1876년 성강(盛康)이 정원을 보수하며 유원이라 개명됐다. 과거 태평천국의 난과 중일전쟁을 거치면서 심하게 훼손된 바 있는데 1954년 중국 정부의 주도로 복구됐다.

중국 다수 고서에 따르면 유원은 건축 예술이 뛰어나며, 누각이나 회랑을 정교하게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화창(花窓)이라 불리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이 일품이라는 평가도 많다. 유원은 중부, 동부, 서부, 북부의 네 구역으로 나뉘며 구역마다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각각 산수, 회랑, 전원 풍경 등의 주제가 설정됐다. 특히 동부 정원인 둥원에 있는 관운봉(冠雲峰)은 한 덩어리의 돌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거대하다고 한다. 태호석으로 돼 있으며 높이 6.5m, 무게가 5톤에 달한다. 이것은 쑤저우 고전원림 중 가장 큰 규모로 꼽힌다. 

창랑정은 쑤저우에서 가장 오래된 정원이다. 개인적으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정원이기도 하다. 1963년 장쑤(江蘇)성 문물보호지역,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2006년 중국 전국중점문물 보호 단위에 지정되며 아름다움을 인정받았다. 

창랑정은 본래 오대(五代)시대 오월국(吳越國) 광릉왕(廣陵王)의 개인 정원이었으나 1044년 북송 시대 시인 소순흠(蘇舜欽)이 사들였다고 한다. 굴원(屈原)의 시의 한 대목인 ‘창랑지수(滄浪之水)’에서 따와 지금의 창랑정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필자가 창랑정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정원에 비해 규모가 작은데도 불구하고 훨씬 크고 넓어 보이며 탁 트인듯한 시원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이는 정원 내부에 물을 흐르게 해 주변에 있는 산과 나무가 물에 비치도록 하는 ‘차경 기법’을 차용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이 점이 독특하다. 

뿐만 아니라 담백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간결하고, 고풍스러운 건축 양식은 다른 중국 정원에 비해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108종에 달하는 디자인의 창문 양식도 빼놓을 수 없다. 구양수, 소순흠의 시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500명의 역대 현인들의 신상을 모신 오백명현사(五百名賢祠)도 눈에 띈다. 기암괴석의 가산과 정자, 취령룽, 청향관, 오백명람사 등 누각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창랑팅에서 가장 큰 건축물은 명도당(明道堂)이다. 명대에 학문을 강의하던 곳으로 이용되었다. ‘송평강도(宋平江圖)’가 걸려있다.

 사자림도 쑤저우 4대 명 정원 중 하나로 65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원나라 시기의 대표적인 정원이다.사진/ VCG

대륙의 정원 ‘이화원’
사실 중국의 정원이라 하면 가장 대표적인 정원은 베이징의 이화원이다. 세계 주요문명 중 하나인 이화원은 동양 문화 발전에 커다란 역할을 한 중국식 정원술의 철학과 이념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이화원은 전체 면적의 ¾에 해당하는 2.97㎢가 호수인데, 곤명(昆明)호라는 이름의 이 호수는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의 인공호수다. 호수 조성 공사에서 나온 흙으로 산까지 만들었는데, 그게 ‘만수(萬壽)산’이다.

1750년 청나라 건륭제는 청의원을 지어 황실의 여름 별궁으로 쓰게 하였다. 1860년과 1900년 외세의 침공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복구됐다. 서태후는 1889년부터 죽을 때까지 이곳에 거주했으며, 청나라 해군의 군자금을 빼서 이화원의 복구와 확장에 썼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이화원을 아꼈다. 이에 따라 이화원은 서태후의 여름 별장이라고도 부른다. 

이화원은 1924년 공원으로 바뀌면서 대중에 공개됐다. 내부에 눈에 띄는 건물로는 3층짜리 극장이 딸린 이락전(頤樂殿), 서태후의 침전이었던 낙수당(樂壽堂), 그리고 십칠공교(十七孔橋) 등이 있다. 728m에 이르는 장랑(長廊)은 중국 고전 문학에 나오는 장면들을 묘사한 1만4000여 점의 회화로 정교하게 장식된 산책로다. 석방(石舫)은 나무로 만든 호숫가의 누각으로, 대리석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도록 채색됐다. 양쪽에는 모조 바퀴가 달려 있어 마치 미시시피 강의 외륜선과 흡사하다.

각각의 건물들이 모두 아름다운 장식을 자랑하고 역사적으로도 흥미롭지만, 가장 매력적인 것은 호수 너머로 바라보는 전통적인 중국 풍경이다. 바다와 인공 호수의 자연 풍광이 정자, 전각, 궁전, 사원, 교각 등의 인공 요소들과 결합하여 매력적이기 그지없는 조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화원은 또 국제적으로도 영향력이 큰 중국 문화 양식의 깊은 미의식을 반영하는 중국 정원 조경의 철학과 숙련을 한 몸에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필자가 느끼기에 이화원은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는 점과 동적인 구성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정원을 거니는 사람이 한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회랑을 통해 움직이게 만들며, 마치 미로 같은 공간에서 공간마다 느껴지는 풍경과 경치가 각기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다. 한 정원에서 느껴지는 수백 수만 가지 감정 덕분에 예술작품이 많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같은 듯 다른 한·중 정원
한국의 정원은 중국 정원 기법에 큰 영향을 받기도 했으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독창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 국토가 아름다운 산과 물로 뒤덮여 있는 장점을 활용하여 한국의 정원에서는 자연이 모방되거나 축소되기보다는 자연 자체가 적극적으로 도입되는 특징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정원을 조영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의 지형을 변형시키지 않으면서 정원의 자리를 잡는 일이다.

한국의 정원은 봄이면 신록이 움트고 꽃이 만발하며,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져 시원하고, 가을에는 풍성한 열매와 색색의 단풍을 볼 수 있고, 겨울에는 잎이 진 나뭇가지 사이로 고독을 느낄 수 있는 생활 속의 자연이자 풍류의 장이었다. 한국의 정원은 형태와 기능에 따라 신림(神林), 궁원(宮苑), 사원(寺院), 서원(書院)과 별서(別墅)의 원(苑), 지방관아의 누원(樓苑), 민가(民家)의 정원, 묘림(墓林) 등으로 구분되는데, 시대에 따라 다소 다른 특징을 보인다. 특히 조선시대의 지당(池塘) 형태는 곡선보다는 직선 위주라는 점에서 중국 정원과 구별된다는 견해도 있다.

한국 전통정원의 미와 풍취는 서울 종로의 석파정(石坡亭), 창덕궁의 후원인 비원(祕苑), 강원도 강릉의 선교장(船橋莊), 전남 완도의 부용동(芙蓉洞) 정원, 담양의 소쇄원(瀟灑苑), 대전의 남간정사(南澗精舍), 경남 함안의 무기연당(舞沂蓮塘), 경북 영양의 서석지(瑞石池), 월성의 독락당(獨樂堂), 봉화의 청암정(靑巖亭), 경주의 안압지(雁鴨池)에 남아 있다.

한국의 정원은 선비가 주로 만드는 만큼 소박하고 정갈함이 있다. 도교의 이상향을 담으면서 자손의 번창을 가장 중요시하는 문화인 만큼 음양사상이 요체라 할 수 있다. 연못을 네모반듯하게 만들고 가운데 둥근 섬을 둔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자연관을 나타낸다. 비원의 부용지가 대표적이다. 한국의 정원은 조선시대 이래로 네모난 방지로 완성되게 된다. 대개 뒤뜰에 후원을 두기 때문에 휴식과 독서를 위한 장소가 되므로 조용하고 깔끔하고 검소하지만 조금 심심한 감이 있다. 담양에 가면 선비들이 조성한 많은 정원들이 몰려 있다. 담양은 사실 대나무보다 정원이 유명하며, 여기서 한국의 시가문학이 발달했다.

중국의 정원은 대부분 부유한 관리들이 조성해서 규모 면에서 크다. 개인정원이다 보니 불로장생이 가장 큰 관심사가 된다. 따라서 신선이 사는 선계를 본떠서 기암괴석으로 장식하고 꽃을 화려하게 가꾼다. 연못은 울퉁불퉁 자연형으로 만들고, 연못을 판 흙으로는 가짜산(假山)을 만들고 조망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웅장하고 화려하지만 다소 세련미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주는데, 이는 규모가 작고 화려하지 않지만 세련된 느낌을 주는 한국의 정원과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중국 뿐 아니라 일본의 정원도 비교대상이 되곤 한다. 일본의 정원은 중국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지만 중국 정원과는 달리 정원의 모든 구성요소, 즉 바위의 배치, 그림자의 형태, 식물 상호간의 조화 등 세밀한 여러 부분에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일본의 정원은 사찰에서 승려들에 의해 수도와 사색의 일환으로 발전해 왔으므로 매우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다. 알 듯 모를 듯 오묘하다 하여 ‘유겐(幽顯)’이라 부르기도 한다. 물을 사용하지 않고 모래 또는 이끼와 돌만으로 마치 바다와 산을 상징하는 ‘건조암석정원(dry garden)’이 대표적이다. 한국 중국과는 다른 독특함으로 고요함과 사색의 극치를 이루며, 작은 공간에서도 조성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국, 중국의 정원보다는 세계적으로 더 유명하다. 그러나 휴식 공간이라는 느낌보다는 관람지라는 느낌이 강하다는 단점이 있다. 서양인의 눈으로 볼 때, 세 나라의 정원이 별 차이가 없게 느껴질지 모르나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고 한다.

글| 곽예지(아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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