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공작(木雕孔雀) 네팔 대통령 증정 사진/왕윈충(王蘊聰)
“대명(大明)황제가 태감(太監) 정화(鄭和), 왕귀통(王貴通) 등을 파견하는 바를 불세존(佛世尊)에 명백히 알리노니……” 전시장 입구의 <석란산(錫蘭山·스리랑카) 보시(布施) 불사비(佛寺碑)> 복제품에는 정화가 2차 대항해를 떠나는 간곡한 사연이 적혀 있다. 비문에 새겨진 타밀어, 페르시아어, 중국어를 통해서 중국과 스리랑카의 100년 간 이어진 우정을 엿볼 수 있다.
수백 년 전, 위풍당당한 정화의 함대가 도달하자 현지인들은 이들을 뜨겁게 환영했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오늘, 아시아 각국의 문물들이 다시 중국 국가박물관에 모여 세계인들과 함께 시공간을 초월한 문명의 축제를 펼치고 있다.
5월 13일, 아시아문명대화대회 전시행사 중 하나인 ‘아시아의 장대한 아름다움: 아시아 문명전’이 중국 국가박물관에서 열렸다. 아시아 47개국과 그리스, 이집트 양대 고대 문명의 문물 총 400여 점이 전시되는 이번 행사는 아시아 국가들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첫 아시아 문명 특별전이자 참가 규모와 참가국 수에서도 전례가 없는 규모다.
방고도병(仿古陶瓶) 이스라엘 대통령 증정 사진/왕윈충
고대로부터 이어진 인연
전시 문물을 둘러보다 보면 서로 모양이 비슷한 두 점의 문물이 눈에 띈다. 하나는 아르메니아 비니 유적지에서 출토된 새 모양의 도자기 각배(rhyton)이다. 현재 아르메니아 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제작 시기는 기원전 8세기에서 7세기 사이 우라르투 왕국 때로 추정된다. 윗부분은 홍색, 백색, 흑색 3색이 서로 격자무늬로 어우러져 병의 몸체를 장식하며, 새의 날개를 절묘하게 표현했다. 물은 ‘새의 다리’ 부분으로 주입해 ‘새의 부리’ 부분으로 따라낸다. 다른 하나는 이란 테헤란에서 출토되어 현재 이란 국가박물관에 소장된, 기원전 247~224년 페르시아 시기의 문물이다. 잔의 몸체에는 적갈색의 기하학 무늬가 있고 말단에는 뿔이 긴 산양이나 야생 산양의 머리 부위가 있는데, 뿔 하나는 소실된 상태다. 특히 (야생)산양의 두 눈이 매우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고, 하단에는 수염도 새겨져 있다. 가슴 부위에는 유두 모양의 주입구가 있다.
그런데 이 두 개의 각배는 중국 산시(陜西)박물관에서 ‘박물관의 보물’이라 불리는 기원전 8세기 중엽의 작품 수수마노배(獸首瑪瑙杯)를 떠올리게 한다. 재질이나 공법 등이 모두 전형적인 고대 서양 옥 조각품의 특징을 갖췄다. 이 때문에 이 작품이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전래된 문물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각배는 보통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띤다. 원래는 동물의 뿔 형태를 띠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000년부터 고대 이란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도자기로 각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 문물과 같은 형태는 고대 파르티아 왕국의 예술품에서 흔히 목격된다. 이란과 주변 지역에서도 관련 유물이 대량 출토된 바 있다.아르메니아, 이란, 중국 산시성까지 만들어진 곳과 형상은 제각각이지만 형태의 유사성을 볼 때 과거 문명 간의 교류 동선을 가늠할 수 있다.
상감녹송석수면문청동패식 (鑲嵌綠松石獸面紋青銅牌飾) 사진/왕윈충
중-말레이 문화의 교차
천웨이런(陳威仁) 싱가포르 아시아문명박물관 관장 겸 싱가포르 문물국 박물관 총국장은 이번에 청나라 때 만들어진 ‘바바뇨냐(Baba-Nyonya, 峇峇娘惹)’ 도자기 작품을 출품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광서(光緒) 연간에 만들어진 분채(粉彩) 개완(蓋盅, 덮개가 있는 찻잔)이다. 분채 개완은 겉면에 봉황이나 모란 등의 전통적인 중국 무늬가 그려져 있어 예술적인 측면에서는 중국식을 따랐으나, 사용 측면에서는 말레이식 문화가 녹아들어 있다.
“전통적인 ‘바바뇨냐’찬은 손으로 집어 먹는 음식이었는데, 분채 개완은 식사 전 손을 씻는 용도로 쓰였다. 이런 용도는 말레이 문화가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관람객들은 이런 문물을 통해 중화 문화와 말레이 문화가 어떻게 ‘바바뇨냐’에서 서로 만나 결합했는지를 알 수 있다”고 천 관장은 설명했다.
15세기 초에서 17세기(중국 명청 시기) 중국 이민족들은 말라카,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일대에 정착하며 현지 원주민들과 통혼(通婚)했다. 이들의 후예를 일컫는 명칭이 바로 ‘바바뇨냐(남성은 ‘바바’, 여성은 ‘뇨냐’)’이다. 현지 말레이인의 영향을 받아 중화 문화와 말레이 문화가 결합된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분채 개완류 용기는 사이즈가 다양해 밥이나 국을 비롯해 여러 음식물을 담을 수 있다. 뚜껑이 달린 조금 작은 용기는 주로 화장품을 담는 데 쓰인다. 이번에 전시된 분채 개완은 보기 드문 대형 용기로, 매우 부유한 집안에서 일상 생활용품으로나 쓰던 것이다. 보통 혼인을 할 때는 반드시 색감이 화려한 뚜껑 달린 용기를 써야 하는데, 여유롭지 못한 집안에서는 이런 날에 부잣집에서 용기를 빌려오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돌려줄 때는 용기에 음식을 가득 담아서 주는 것이 관례였다.
일대일로 사업이 진행되면서 중국과 말레이 문화권 간 민심(民心)이 더욱 단단히 연결되고 문화 교류도 점점 더 밀접해지고 있다.천 관장은 ‘바바뇨냐’ 출신들의 유대가 한층 강화되고 말레이 문화권과 중국의 문화 교류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바바뇨냐’와 같은 도자기를 전시한다고 말했다.
악렉산드리아 모자이크 (亞曆山大裏亞圖景馬賽克) 요르단 사진/왕윈충
청대분채시구화훼문병(清代粉彩詩句花卉紋瓶) 중국 사진/왕윈충
석조비슈누입상 (石雕毗濕奴立像) 캄보디아 사진/왕윈충
공작도금배(孔雀鍍金杯) 카자흐스탄 대통령 증정 사진/왕윈충
문명들의 향연과 공감대
이번에 전시된 중국 문물 가운데 중국 닝샤(寧夏) 구위안(固原)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유금은호(鎏金銀壺)는 유난히 이국적인 색채가 짙다. 독특한 외형의 유금은호는 가운데 부분이 세 가지 장면으로 구성되었다. 정면은 젊은 파리스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황금 사과를 주는 장면, 왼쪽은 파리스가 아프로디테의 도움을 받아 헬레네를 강제로 데려오는 장면, 오른쪽은 헬레네가 다시 남편 메넬라오스의 곁으로 돌아간 장면이다.
이와 같은 고대 그리스 신화는 이역만리 넘어 머나먼 중국 북주(北周)의 장군 이현(李賢)의 묘에서 출토된 문물에 등장한다. 따라서 이것이 중앙아시아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장인들이 그리스의 도안을 모방해 만든 산물이거나, 사산왕조 치하에서 진(晉)의 16국 중 하나였던 대하(大夏)에 소속되어 그리스의 영향을 상당 부분 받았던 장인들의 손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어찌 되었든 그것이 중국과 외부 세계의 교류를 방증한다는 점 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로부터 문명끼리는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박물관의 판테르말리스 관장은 “그리스와 중국의 문화 교류는 최근 들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고, 전시 쪽이 특히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2018년 10월 고궁박물관은 그리스에서 건륭(乾隆)을 테마로 전시회를 열어 그리스 시민들에게 중국의 역사와 철학,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을 알렸다.
채회악무도여용(彩繪樂舞陶女俑) 중국 사진/왕윈충
아크로폴리스박물관도 상하이(上海)박물관과 전시회 교류를 한 적이 있다. 아크로폴리스박물관은 매우 중요한 소장품 두 점을 상하이에서 전시했고, 상하이박물관도 똑같이 귀중한 소장품 두 점을 그리스로 보냈다. 그리스는 또 상하이에 두 명의 전문가를 파견해 관람객들에게 대리석 조각상을 관리하는 방법을 시연했고, 상하이박물관의 전문가들은 그리스 시민들에게 중국 산수화를 그리는 방법을 소개했다.
아크로폴리스박물관은 오랜 역사를 지닌 두 나라 간의 문명이 더욱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전시회에 석조 알렉산더 대왕 두상(頭像)을 출품했다. 이번 전시회는 기존 방식에 더해 멀티미디어 기술을 적용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최신 비디오 기술을 통해 아시아 각국의 대표적인 세계문화유산과 잘 알려진 문화 경관의 시각적 효과를 높였다.
지금 아시아 각국은 소중한 역사를 바탕으로 상호 교류와 배움을 확대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번 아시아 문명전에서 벌어지는 문명들의 향연은 아시아 국민들이 그 어느 때보다 함께 공동 번영과 행복한 미래를 만들고 인류 운명공동체를 위해 지혜와 역량을 내놓겠다는 충만한 자신감과 의지를 세계에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