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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 문헌 속의 ‘정위(精衛)’


2023-02-23      

정위는 중국 고대 전설에 등장하는 새다. <산해경>에서는 중국 북방의 파주(發鳩)산에 까마귀와 비슷하지만 무늬가 있고 하얀 부리에 붉은 발톱을 가진 ‘정위’라는 새가 있다고 했다. 그 새가 우는 소리를 따서 이름이 붙여졌다. ‘정위’의 중국어 발음은 그 새가 우는 소리와 비슷하다. ‘정위’는 원래 염제의 막내 딸로 이름은 여와다. 어느 날, 여와가 동해에서 놀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죽은 뒤 ‘정위’라는 새로 환생해 산에서 나뭇가지와 돌을 물어와 동해를 메우기를 했다고 한다. 여기서 ‘정위전해(精衛填海)’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고대 한국 상소문에 등장한 ‘정위전해’

‘정위’ 이야기가 언제 고대 한국에 전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산해경>과 함께 유입돼 고대 한국인들 사이에서 전파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비교적 빠른 기록은 고려 시기다. 12세기 고려 문신 최유청은 표문에서 ‘함석전해, 절심정위(銜石填海, 切深精衛)’라면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항상심을 잃지 않겠다는 결심을 표현했다.


조선시대에서는 관리들이 일을 추진하기 어려울 때 ‘정위전해’를 인용해 국왕에게 변화를 요구하거나 어명을 거두라고 요청했다. 1618년 광해군이 궁궐을 지으라고 명령한지 일 년이 가까워진 시기에 건축 도감은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것을 발견하고 공사를 중단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이를 ‘정위의 전해’에 비유해 준공이 어렵다고 말했다. 1653년 우의정 김육은 상소에서 지방 관리가 다리 건설에 백성을 강제 동원했지만 효과가 미미하다며 “정위의 전해와 비슷해 공을 이루기 어렵다”고 했다. 1735년 사간 허집은 상주문에서 관리를 탄핵하면서 그들은 ‘정위의 전해와 같이 위험하다’면서 관리들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재물을 탐한다고 고발했다. 1874년 호조 판서 김세균은 고종에게 ‘정위도 방법이 없을 만큼’ 재정이 어렵다고 호소했다.


1792년 양산 군수 성종인은 정조에게 일부 지방에서 제방을 건설하면서 민력을 소모하는 것이 ‘정위의 함목(銜木)’과 같다고 비유했다. 1798년 관원 이우형은 민간의 물막이벽 시설 대부분이 폭우나 홍수가 생기면 ‘정위의 목석’처럼 다 떠내려간다고 지적했다. 이를 막기 위해 이우형은 중국의 <농정전서(農政全書)>의 ‘수책지법(水柵之法)’을 연구해 해결 방안을 내놓았다.


일부 관원은 ‘정위전해’를 인용해 마음은 있으나 힘이 닿지 않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1667년 사간 최유지는 현종에게 자신의 관직을 낮춰 달라며 “정위지전해, 유불능자기야(精衛之填海, 猶不能自已也)”라고 했다. 1783년 우의정 김익은 정조에게 “정위지전동명, 촌심수절(精衛之鎮東溟, 寸心雖切)”이라고 하면서 몸이 좋지 않아 중임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언급한 예를 통해 ‘정위전해’는 관리들 사이에서 비교적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의미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1638년 행부사과 최유연은 인조에게 조정의 기강을 다잡으라고 건의하면서 “정위에겐 바다를 메우겠다는 의지가 있었는데, 하물며 일국의 군왕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사자성어, ‘정위사’와 해양 교류

중국에서 ‘정위전해’는 유명한 사자성어다. 큰 어려움에도 물러서지 않고 용감하게 맞서 싸우는 위대한 정신을 가리키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정위’ 이야기가 고대 한국 사회에 융합되면서 ‘정위전해’, ‘정위함석’ 이야기도 사자성어로 한국 국어사전에 수록됐다. 그러나 중국과 달리 한국에서 이 사자성어는 대부분 자신의 능력을 모르고 헛된 일을 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뜻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인다.


사자성어 외에 고대 한국의 많은 문인들이 정위를 주제로 한 시가를 많이 남겼다. 그중 대표적인 작품은 ‘정위사(精衛詞)’를 꼽을 수 있다. 15세기 성현(成俔)은 <정위사>에서 ‘상전변화유가대, 신수마멸심무궁(桑田變化猶可待, 身雖磨滅心無窮)’이라고 하면서 ‘정위의 몸은 닳아서 없어질 수 있지만 그 마음은 영원하고 창해(滄海)도 결국은 메워져 뽕밭으로 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8세기 말 성해응은 <정위사>에서 ‘유래충지사. 진분즉성명(由來忠誌士. 盡分即成名)’이라고 하면서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을 토로했다. 19세기 조면호도 <정위사>에서 ‘내원욕도창상변, 소향마고설내원(乃願欲覩滄桑變, 訴向麻姑說乃願)’이라며 ‘세상 사람들은 ‘정위’를 모르지만 ‘정위’는 창해를 뽕밭으로 만들려는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마고(麻姑)만이 그의 바람을 경청한다’고 지적했다. 마고는 중국 도교 신화 속 여신으로 매우 오래 살아 바다가 육지로 세 번 변하는 과정을 직접 봤다고 한다.


‘정위’는 바다와 관계가 있어 해양 교류 관련 시문에서도 많이 언급됐다. 문신 정탁은 중국으로 가는 사신 황경미에게 선물한 시에서 ‘막언정위난전해, 천의장장감지성(莫言精衛難填海, 天意章章感至誠)’이라며 황경미의 여정이 순조롭기를 기원했다. 문인 정희득은 전란으로 포로가 되어 대마도에 체류하면서 일본 승려 겐키(玄規)에게 보낸 시에서 ‘동해비정위(東海悲精衛)’라고 써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비통한 심정을 표현했다.


고려 개성 서쪽에 ‘전포(錢浦)’라는 지명을 가진 곳이 있다. 당나라 선종이 상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 이곳에 도착해 배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썰물로 바닥이 온통 진흙이었다. 부하들이 동전을 가져와 진흙 위에 깔아 황제가 뭍에 오르도록 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 문인 한재렴은 돈으로 길을 깐 것은 ‘정위전해’와 다름없다며 이 이야기에 강한 의문을 표했다. 그러나 필자는 ‘전포’ 전설은 오히려 고대 중한 양국의 해상 무역이 빈번하고 번영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고대 시문 속 다양한 ‘정위’ 이미지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은 ‘정위함석이전, 유류지황설야(精衛銜石而填, 悠謬之謊說也)’라며 ‘정위’ 전설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 이른 시기의 실학자 이익은 세상에는 별의별 것이 다 있기 때문에 ‘정위’ 전설을 일부러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고대 한국인은 대부분 ‘정위’에 대해 많은 상상을 했고, ‘정위’의 문학적 이미지를 빌려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김시습은 <조정위(嘲精衛)>에서 ‘기불량기력, 지대종불체(豈不量其力, 誌大終不替)’라고 하면서 정위를 조소함으로써 세상일의 무상과 인생의 헛 보냄을 표현했다. 유몽인은 ‘정위만로동해수(精衛謾勞東海水)’라는 구절을 통해 사십이 넘었지만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반면 조면호는 <자시(自示)>에서 스스로를 ‘정위’에 비유하면서 자신은 남들과 달리 세속에 구애받지 않고 천성이 호방하다고 했다. 이건은 <추야(秋夜)>에서 ‘아원화위정위조. 투사함목새남명(我願化為精衛鳥. 投沙銜木塞南溟)’라고 했다. 여기서 ‘정위’는 세속에 구애받지 않고 신념대로 행동하는 자유의 새다.


문인 김이곤은 ‘나능화정위, 일야함목석. 해수유감단, 차한불가극(那能化精衛, 日夜啣木石. 海水猶堪斷, 此恨不可極)’이라며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는 여자의 마음을 표현했다. 송상기도 ‘망부석(望夫石)’의 입을 빌려 ‘불여화작금정위, 전득창명견고심(不如化作禽精衛, 填得滄溟見苦心)’이라는 시를 쓰고 사랑하는 이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보다 행동으로 표현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여기서 ‘정위’는 충성과 지조를 지키는 애정의 새다.


채제공은 ‘간재부모분전석, 정위함지견지성(艱哉父母墳前石, 精衛銜枝見至誠)’이라는 구절을 통해 부모에 대한 자식의 지극한 효심을 표현했다. 안민학은 ‘자오중은천공대, 정위정심해막전(慈乌重恩天空大, 精卫情深海莫填)’이라는 구절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여기서 정위는 혈육의 정과 효도의 새다.


정위 새 한 마리가 수많은 이미지로 변화했다. 사실 <산해경>에서 ‘정위’에 대한 기록은 150여 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산 넘고 바다 건너 한국까지 전파돼 역사에 수많은 기록과 다양한 이미지를 남겼으니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글|위셴룽(喻顯龍),상하이(上海)외국어대학 글로벌문명사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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