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25
중국 극장가에 ‘허스토리(Her stroy, 그녀의 이야기)’가 뜨고 있다. 남성 감독들이 주류를 이루는 영화계에서 여성 감독이 연출한 여성 중심의 영화들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난해 중국에서 깜짝 흥행에 성공한 영화 ‘호동서(好東西, Her stroy)’가 대표적이다. 호동서는 중국어로 ‘좋은 것’이란 뜻인데 한자 ‘하오(好, 좋을 호)’를 해체하면 ‘여자(女子)’가 된다. 영화는 여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일상 이야기를 코믹하면서도 날카롭게 다뤘다. 영화 호동서의 영어 제목도 그녀의 이야기, ‘허스토리(Her Story)’다.
중국 여성 감독 샤오이후이(邵藝輝)가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상하이(上海)에 사는 세 여성의 이야기다. 전직 기자로 최근 실직한 독립적인 싱글맘 왕톄메이, 그녀의 재치 있는 초등학교 딸 왕몰리, 그리고 겉으론 자유분방하지만 마음씨 여린 젊은 무명가수 샤오예가 한 지붕 아래 살아가면서 서로 용기를 북돋아주고 성장해 나가는 내용이다.
지난해 중국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영화도 여성 감독이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다. ‘열랄곤탕(熱辣滾燙, YOLO·욜로)’이다. ‘맵고 뜨겁게’라는 뜻의 영화 열랄곤탕은 중국 여성 코미디언 배우 자링(賈玲)이 영화감독과 주연을 맡은 코미디 영화다. 일본 화제작<백 엔의 사랑>을 리메이크한 이 영화는 과체중 여성 주인공이 복싱 코치를 우연히 만나 체중을 감량해 나가며 복서로 성장하는 내용을 그렸다.
스크린 속에 나오는 그녀들은 총명함과 지혜로 무장하고 정직함과 과감함으로 세상을 헤쳐 나간다. 좌절은 그녀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정의를 향한 굳건한 신념은 그녀들을 빛나게 한다. 이는 현모양처나 순진무구한 전통적 여성상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여성 히어로의 탄생이다. 관객들의 심미적 취향 변화도 오늘날 사회에서 여성의 역량이 점차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이는 동시에 현대 중국 여성들이 가정과 일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자신의 존엄을 지켜나가는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반영한다.
이러한 영화계의 변화는 중국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여성의 활약과 맞닿아 있다. 과거 남성 중심 사회였던 중국에서 여성의 지위는 꾸준히 향상돼 왔다. “여성은 하늘의 절반을 떠받칠 수 있다.” 중국 혁명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이 남녀평등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중국 직장 내 여성의 영향력도 차츰 커지며 ‘유리천장’을 깨부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중국 시장조사업체 윈드사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중국 본토 증시 상장사 여성 최고위직 비중이 두드러지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세계경제포럼이 최근 발표한 ‘2024년 성별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여성의 노동 참여율(61%)은 세계 4위이며, 기업 고위 임원직의 약 40%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 평균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이 주도하는 미래 산업 환경에서 여성의 섬세함, 공감 능력, 협력적 리더십은 혁신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오늘날 기술혁명 시대는 이제 더 이상 ‘근육질 싸움’이 아닌 ‘지혜의 싸움’이다. 본능적으로 돌봄의 마음을 가진 여성이 더 유리하다.” 2018년 방한한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馬雲)이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르는 대목이다.
글|배인선(한국), 한국 아주경제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