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23
지난해 봄, 중국 베이징(北京)으로 발령받은 후 시내에 구한 집을 처음 찾아갔을 때다. 당시 중국에서는 해외발 입국자에 대해 3주간 격리를 실시했던 때라, 격리기간 지인을 통해 사진으로 집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지인이 알려준 아파트 주소 ‘XXX동 20층 23XX호’만 보고 당연히 20층으로 곧바로 올라갔지만, 23XX호는 찾을 수 없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23층으로 올라가자 비로소 우리집이 보였다. 건설사에서 중국인이 기피하는 숫자 4, 13이 들어간 4, 13, 14, 24층을 아파트 층에서 아예 빼버려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26층 버튼까지 있지만, 실제 높이는 22층까지인 셈이다.
중국인은 숫자 4를 ‘죽을 사(死)’와 발음이 비슷해 기피한다. 13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날이 ‘13일의 금요일’이어서 서양인들이 불행의 숫자로 여긴 것에서 비롯됐다. 중국에서 서양 문물을 일찍이 받아들인 상하이(上海)에서는 바보, 멍청이를 뜻하는 욕에도 숫자 13이 들어간다고 한다.
반면 중국인은 6, 8, 9를 좋아한다. 6은 순조롭게 일이 풀린다는 뜻의 ‘류(溜)’와 발음이 비슷하고, 8은 돈을 번다는 뜻의 ‘파차이(發財)’의 앞 글자 ‘파’와 발음이 비슷하다. 9는 장수를 의미하는 ‘주(久)’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게 이유다.
특히나 베이징올림픽이 2008년 8월 8일 저녁 8시 열렸고, 8이 반복되는 전화번호나 자동차 번호판에 집착하는 현상에서 숫자 8에 대한 중국인의 선호도를 알 수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치를 당시 중국인들이 ‘최고의 숫자 배열’이라며 부러워했는데, 한국이 그해 8월 8일이 아닌 9월 17일 개막식을 거행한 것을 안타까워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중국인은 홀수 대신 짝수를 좋아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졌다. 결혼 등의 잔치에 축의금이나 선물을 보낼 때 1, 3, 5를 피하고 짝수로 액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중국에서 생활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상식 중의 하나다. 좋은 일은 겹으로 이뤄진다는 뜻의 ‘호사성쌍(好事成双)’이라는 말에서도 중국인의 짝수 사랑이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2022년 2월 22일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결혼을 위한 최고의 길일로 여겨지기도 했다. 중국어에서 숫자 ‘2’가 ‘사랑’을 뜻하는 ‘아이(愛)’와 발음이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데다가, 2가 6번이나 들어간 날이라 짝수가 겹치니 이날 혼인 신고를 하려는 예비 부부들이 몰렸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이처럼 중국 숫자에는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담겨있다. 이를 미신이나 비과학적이라고 무시하기보다는, 이를 중국 비즈니스에 활용하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阿里巴巴)가 독신을 뜻하는 숫자 1이 4번 겹친 11월 11일을 솔로들을 위한 온라인 쇼핑의 날로 만든 게 오늘날 점차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쇼핑 축제의 날로 자리매김한 것처럼 말이다.
글|배인선,한국 아주경제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