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1
중국에서 생활하며 가장 인상 깊은 것 중 하나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나른한 주말 오후 창밖을 내다보면 줄넘기 경쟁을 벌이는 아이들, 간이 네트까지 설치해 놓고 배드민턴 삼매경에 빠진 가족을 목격할 수 있다. 아파트 단지를 트랙 삼아 조깅을 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내 몸도 덩달아 근질근질해지곤 한다.
전 세계적으로 건강과 장수를 위해 취미로 운동을 즐기는 이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의 경우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한풀 꺾이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기 관리 목적으로 헬스클럽이나 수영장 등을 찾는다. 중국은 실내 운동뿐 아니라 야외에서도 별다른 장비나 기구 없이 신체를 단련할 수 있는 여건이 잘 조성돼 있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 차별화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애용하는 조깅 코스 중간에 있는 작은 공원에는 여러 대의 탁구대가 설치돼 있는데 빈 자리를 본 적이 없다. 탁구를 좋아하는 편이라 가끔 도전장을 내미는데 아들과 같은 학교를 다니는 초등학생에게도, 허리가 좀 굽은 60~70대 노인에게도 번번이 패한다. 대학교 때 미국의 기자이자 작가인 에드거 스노가 쓴 ‘중국의 붉은 별’을 읽었는데, 국공 내전이 한창인 상황에서도 젊은 홍군들이 짬을 내 탁구를 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는 대목이 기억난다. 당시 중국인의 유별난 탁구 사랑을 느낄 수 있었는데, 요즘 잦은 패배를 통해 직접 체감하는 중이다.
2000년대 초반 베이징(北京) 유학 시절 저녁 식사를 마치고 캠퍼스를 거니는데 기숙사 앞 공터에서 수백 명의 중국 여학생들이 짝을 지어 배드민턴을 치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대열도 장관이었고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몇 년 전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에 출장을 가서 어학 연수차 와 있던 다른 언론사 선배와 술자리를 가졌다. 요릿집에서 만난 그 선배는 중국 전통 복장 차림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태극권 수업을 받고 오는 길이란다. 공원에서 산보를 하다가 삼삼오오 모여 태극권을 수련하는 어르신들을 보고 흥미가 생겨 본격적인 배움의 길로 접어든 사례다. 귀국 전 사범 자격증을 따 한국에서 태극권 도장을 여는 게 목표라고 들었는데, 꿈을 이뤘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많은 중국인들이 유년기 때 맨손 체조나 줄넘기 등부터 시작해 청소년기와 청년기, 중장년기를 거쳐 노년에 이르러서도 다양한 운동을 즐기는 모습은 본받을 만하다. 최근 필자의 사무실 인근에 작은 스케이트보드장이 조성됐다. 야외라 별도 요금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아이가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걸 유심히 지켜보던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스케이트보드를 취미로 삼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과거에는 외국 유학생 외에 스케이트보드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지 않았는데, 이번에 중국에 다시 온 뒤 새로 눈에 들어온 광경이다. 한쪽에서 한 젊은이가 몇몇 초등학생들에게 각종 동작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유료 강습인가 했더니 지나던 길에 보기 안타까워 잠깐 실력을 전수 중이란다. 가르치는 이와 배우려는 이 모두 머금고 있는 미소가 싱그러웠다.
스포츠는 체력 단련 외에 사회적·국가간 신뢰 증진에도 도움이 되곤 한다. 1970년대 미중 수교의 발판을 놓은 양국의 탁구 국가대표 선수도, 공원 안 탁구대에서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뤘던 필자와 장(張)씨 할머니도 스포츠를 통해 교류하고 마음을 나눴다. 한국도 코로나19 방역 상황이 하루빨리 호전돼 시민들이 이전처럼 햇살 가득한 야외에서 운동을 즐겼으면 좋겠다. 필자의 선배가 꼭 태극권 도장을 열어 더 많은 한국인들에게 중국의 전통과 문화를 전했으면 한다.
글|이재호 한국 아주경제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