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0 글| 이재호(아주경제 베이징 특파원)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의 우한대학교 캠퍼스는 중국에서 내로라하는 벚꽃 명소 중 한 곳이다. 하지만 지난해 3월에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캠퍼스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지만 인적을 찾을 수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도시 전체가 봉쇄되고 학교 출입도 불가능했던 탓이다. 우한대학교는 타오바오(淘寶) 앱을 통해 벚꽃 축제를 인터넷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시민들의 아쉬움을 달래기에는 부족했다. 우한 봉쇄는 벚꽃이 다 지고 난 뒤인 4월 8일까지 지속됐다.
그렇게 해가 바뀌어 또다시 벚꽃 시즌이 돌아왔다. 올해 우한대학교 캠퍼스의 풍경은 지난해와 사뭇 다르다. 언론 보도에서 본 우한대학교는 벚꽃을 즐기러 온 상춘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실명 예약제를 실시할 정도다. 특히 축제가 시작된 3월 13일과 14일을 ‘의료진 전용 봄꽃 구경일’로 지정한 게 눈에 띄었다. 코로나19 퇴치에 앞장선 의료진의 노고를 기리기 위한 작은 성의다. 이틀간 1만3000명에 달하는 의료진과 그 가족들이 우한대학교를 찾아 망중한을 즐겼단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우한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린 의료진이나, 따뜻한 배려를 아끼지 않은 우한대학교 측 모두에 경의를 표한다.
필자도 지난해에는 봄꽃 구경을 포기했었다. 가족들이 한국으로 일시 귀국하는 바람에 함께 손잡고 나들이할 이도 없었고, 주요 벚꽃 명소 중 문을 연 곳도 없었다. 코로나19가 세상에 나오기 전인 2019년에는 중국 지인들의 손에 이끌려 베이징(北京) 위위안탄(玉淵潭) 공원에 갔었다. 44만㎡이 넘는 광활한 부지를 가득 메운 벚꽃도 장관이었지만 두 손을 꼭 잡고 공원을 거니는 노부부, 솜사탕을 손에 들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웃음을 짓던 아이들, 벚꽃향 아이스크림을 서로 먹여 주며 깔깔대던 연인들의 모습이 더 기억에 남는다. 사람 사는 행복이 이런 것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던 하루였다.
중국에는 우한대학교 캠퍼스와 위위안탄 공원 외에도 상춘객들의 발길을 붙잡는 벚꽃 명소가 많다. 항저우(杭州) 사람은 타이즈완(太子灣) 공원을 추천할테고, 난징(南京) 출신이라면 지밍쓰(鷄鳴寺)의 벚꽃길을 최고로 칠 것이다. 봄꽃으로 워낙 유명해 춘청(春城)으로도 불리는 쿤밍(昆明)에서는 위안퉁산(圓通山) 산책로에 핀 벚꽃이 절경이라는 얘기를 누구에게서 들은 것 같다. 필자가 직접 가본 곳 중에는 칭다오(靑島)의 중산(中山)공원 벚꽃이 인상적이었다. 길 양편의 벚나무 가지는 서로 맞닿을 만큼 길게 뻗어 있다. 그 아래를 걷노라면 벚꽃 잎이 눈발처럼 흩날린다.
미증유의 전염병이 잠시나마 앗아갔던 봄의 정취를 다시 느낄 수 있게 돼 정말 다행이다. 내년에는 전 세계의 더 많은 사람들이 걱정 없이 봄꽃 구경에 나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필자가 좋아하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 한 소절을 읊어 본다. “작은 정원에 벚꽃을 새로 심어, 꽃가지 사이를 한가로이 거니니 마치 나들이 같구나(小園新種紅櫻樹, 閑繞花枝便當游)”
올해는 꼭 마지막 벚꽃 잎이 떨어지기 전 상춘의 기쁨을 누리러 가보리라.
글| 이재호(아주경제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