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봄은 벚꽃의 계절이다. 오래 전 유학하던 시절, 어느날 갑자기 교수님으로부터 수업일정 변경 공지를 받았는데 모두를 데리고 남산에 가서 수업한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벚꽃이 피었으니까”였다. 해마다 한국에서는 벚꽃 개화 예상 시간표를 보도하지만 꽃은 참 알 수가 없다. 무심코 찾아오는 봄날, 예상보다 훨씬 일찍 피어버린 벚꽃은 일상을 내려놓고 나들이 할만하다.

4월 초, 화창한 날에 남산 아래 동국대학교 입구에서 교수님과 학생들이 모이기로 약속했다. 교정에 들어서자 학생들과 봄나들이 인파를 볼 수 있었고, 조용한 캠퍼스는 꽃놀이 성지가 되어버렸다. 교내 도로를 따라 산에 오르다 보면 평소에는 버스나 케이블카를 이용해 남산으로 오르려는 관광객이 많은데, 이 때는 봄나들이를 위해 걷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최근 봄철 ‘벚꽃놀이 경제’가 발달하면서 서울의 주요 대학교·공원·상업지역과 한강둔치 모두 벚나무를 새로 심었다. 벚꽃 시즌에는 피크닉 파티, 뮤직 페스티벌 등이 열려 상인들이 특수를 누린다. 대부분 수 십년에서 백년에 이르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남산의 벚나무들은 꽃이 피면 색다른 화려함을 보여주는데, 산의 푸른 소나무들로 인해 더욱 돋보이는 눈벚꽃은 온 세상을 부드럽고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집 근처 새로 심은 벚나무의 자잘한 벚꽃을 보다가 남산의 벚꽃을 보니, 처음으로 오래된 벚나무의 가지 마디마디에 몹시 부드러운 여린 가지가 자라난 것을 알게 됐다. 쉽게 사라지는 아름다움에서 벚꽃은 사람들이 긴 생명력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남산 위 한양성곽 길을 따라 걷다가 이내 아스팔트 도로를 벗어났다. 산 속의 오솔길을 걷다가 떨어진 꽃을 주워 옷자락에 달았더니 일본 문학 속 벚꽃 아래의 ‘광기’ 이미지와 한국의 벚꽃 풍경은 확실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구름 같고 눈꽃 같은 발랄하고 싱그러운 것이 한국의 벚꽃이다.

그 날 우리는 남산타워에 올라 봄날의 도시를 바라보다가 저녁 노을이 질 때 별빛과 달빛 그리고 가로등 불빛 아래 꽃 그림자 속에서 산을 내려왔다. 봄날과 벚꽃에 대해 가장 좋은 답을 얻은 것 같았다.

그 날 이후 매해 봄이 오면 기회가 되는대로 필자는 남산을 거닐면서 만연한 눈벚꽃을 보며 봄날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꼈다. 그럴 시간이 없으면 근처 공원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관광객이 가득할 땐 길가에서 벚꽃과 소풍을 즐기는데, 치킨과 맥주가 배달되는 한국식 봄날의 진풍경이다. 또 문구점이나 카페에서 그 해 봄 한정판 벚꽃 노트나 텀블러를 사서 고이고이 받아 드는 것 역시 봄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예보에 따르면 2021년 한국 각지의 벚꽃 개화는 며칠 앞당겨져 3월 말 서귀포에서 시작해 4월 초 춘천까지, 곳곳에서 이른 벚꽃 놀이가 시작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수많은 페스티벌과 공연이 취소되었지만, 사람들의 봄날 벚꽃놀이에 대한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방역을 잘하고 사람들이 모이는 일을 피하면 벚꽃놀이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여가가 될 것이다. 꽃 피는 계절이 가기 전 이 성대한 봄기운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어디로 벚꽃놀이를 가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