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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 된 중국의 전통예술


2024-06-17      



예술은 감정이나 사상을 전달하고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결합시키는데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점에서 인문학의 중요한 분야다. 특히 민족 정체성을 드러내는 주요한 시각 수단으로서 그 나라의 미감을 파악하게 해준다.


왕수(王澍)는 중국 최초로 ‘건축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Pritzker Architecture Priz)을 받은 인물로, 중국 전통 회화를 건축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그는 왕희맹(王希孟)의 <천리강산도(千里江山圖)>를 모티브로 저장(浙江)성 중국미술학원(中國美術學院)의 샹산(象山)캠퍼스를 설계했다. 북송시대에 창작된 <천리강산도>는 산수를 종합적 시각에서 그려낸 것으로, 절묘한 산세 표현과 신비한 청록색이 압권이다. 왕수는 “무릇 미술대학이란 <천리강산도>처럼 산수로 둘러싸인 천연의 풍광 속에 있어야 하며 그림의 모든 부분이 청록색 산수에 녹아든 것처럼 캠퍼스 안의 모든 건축물 역시 대자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리강산도> 그림에서 모티브를 얻은 중국미술학원 샹산 캠퍼스 사진/황윤정


이에 건축 관계자들은 처음에는 왕수의 생각에 반대했으나 곧 중국미술학원이 중국 전통 산수 화풍을 이을 수 있는 환경이 될 것이라는데 공감했고, 결과적으로 중국미술학원은 자연 안에 조화롭게 자리하며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캠퍼스 중 하나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실제로 중국미술학원 샹산캠퍼스를 거닐면 마치<천리강산도> 화폭 안에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게 되니, 왕수의 아이디어는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있겠다.


왕수가 전통 예술의 형태를 직간접적으로 디자인에 차용했다면, 중국의 신예 디자이너들은 최근 10년 동안 전통 예술을 ‘해체’하고 ‘분해’함으로써 디자인 안에 녹여내는 새로운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전통 예술을 그대로 들고 오기보다는 그것을 한번 더 해석하고 숨겨진 의미를 파악해 디자인에 녹여내고자 한다. 이로써 전통 예술은 디자인 안에서 해체되고 재구성되며 새로운 현대적 의미를 부여받는다.


일례로 중국 패션디자이너 왕즈(王汁)의 작품을 살펴보자. 그가 만든 우마 왕(UMA WANG)은 중국의 유명 독립 브랜드로서 중국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우마 왕은 해외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 전통 복장을 응용하고자 했는데, 독특하게도 복장의 형태나 소재, 패턴이 아닌, 개념에서 모티브를 따 왔다. 몸에 딱 맞춰 의복을 제작하는 서양식 입체 재단과 달리 중국 전통 복장은 천을 둘러 몸을 편안히 감싸는 평면 재단이라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우마 왕은 중국 전통 복장을 착용했을 때 느껴지는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패션 철학으로 삼아 한 장의 천을 온몸에 두른 듯한 스타일을 창조했다.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의 형상이 아닌 운치에 집중한 우마 패션 사진/황윤정

 

비정형적 패션은 기존 중국 디자이너들과는 완전히 다른 패션 문법으로 단숨에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왕즈는 치파오(旗袍)를 응용한 기존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대부분 ‘형식’에 치중되어 있었음을 지적하며, 이제 동양 디자이너들은 치파오의 ‘운치’에 집중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자국의 문화에 자신감을 가져야 표상적인 복제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문화의 형식보다 본질과 개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우마 왕의 시도는 전통 복장의 형태미에 집중해온 기존 중국 패션계에 경종을 울리며 전통 예술이 복제를 넘어 해체의 대상으로 진화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마찬가지로 중국을 대표하는 시각 디자이너 허젠핑(何見平) 역시 중국의 전통 예술인 수묵화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작품을 선보인다. 그는 독일 베를린에서 살며 동양과 서양 사이 경계에 있는 디자인을 고민하고 있다. 그가 모교 중국미술학원을 위해 만든 전시 포스터에서 이러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포스터에는 ‘예술(藝術)’이라는 한자가 수많은 레이어에 겹쳐 표현되어 있는데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 이 포스터에는 동양 미학을 완전히 꿰뚫은 통찰력이 녹아 있다. 고대 동양의 수묵화를 살펴보면 검은 묵과 흰 여백의 경계가 아스라하게 먹의 번짐으로 남아 있다. 이는 흑과 백, 즉 있음과 없음을 칼로 자른 듯 구분 짓지 않으며 모든 것이 무한한 회색의 가능성으로 남아 있는 동양 사상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동양식 여백 개념을 차용한 허젠핑의 포스터 디자인 사진/허젠핑 제공


허젠핑은 이러한 동양식 여백을 디자인에 차용하여 검정과 흰색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어 있는 서양의 여백개념에 의문을 던진다. 그의 디자인은 먹을 사용하지 않았고 수묵화의 번짐 기법이 없는데도 충분히 동양적인 아취를 풍긴다. 이처럼 허젠핑은 수묵화를 보다 개념적으로 사용하여 동양 예술을 활용한 중국 평면 디자인의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이는 먹의 형상을 직접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전통을 드러내려 했던 기존의 중국식 디자인에 대한 ‘선 긋기’ 작업이라 볼 수 있다. 실제 허젠핑은 자신의 디자인에서 중국적 요소를 도출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는 “디자인에서 지형학적 구분은 의미가 없다. 중국미술학원에서 배운 그래픽 디자인 또한 먹과 붓을 쓰는 일이었기에, 자연스레 몸에 밴 총체적 경험이 디자인에 스며들었다고 보는 것이 적당하다”라고 밝히는 등 중국적 디자인과는 거리를 둔다.


이처럼 전통 예술을 다양하게 응용하는 중국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통해 예술과 디자인의 밀접한 관련성, 그리고 현대 중국의 미감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현대 디자인 분야에서는 예술과 디자인을 엄격히 구분 짓는 시도에서 벗어나 디자인과 예술을 융합하는 유연한 형태의 시각예술이 주목받고 있다. 영국의 디자인 평론가 릭 포이너(RICK POYNOR)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디자인은 예술의 범위를 초월하는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디자인 작품이 미술상품들의 대체재로서 충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처럼 전통예술을 직접적으로 적용하거나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융합,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중국 디자이너들의 시도는 전통의 창조적 전승뿐 아니라 중국 현대 디자인의 중요한 분기점을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의의를 갖는다.

글|황윤정(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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