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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와 시가 빚어낸 화려한 천년 고도


2024-06-17      

시안 대당불야성의 웅장한 건축군과 다채로운 공연이 성당(盛唐)의 기상을 재현한다.


산시(陝西)성 중부에 위치한 시안(西安)은북쪽으로는 웨이(渭)하, 남쪽으로는 친링(秦嶺)산맥과 맞닿아 있고 여덟 개의 강이 도시를 관통해 예부터 ‘팔수요장안(八水繞長安, 시안의 옛 이름)’이라고 불렸다. 윤택한 관중평원에 비옥한 황토는 열정적이고 소박한 사람들을 길러냈고, 13개 왕조의 도읍이었던 시안은 무궁무진한 문화 유산과 역사 이야기가 살아 숨쉬고 있다.


시안 도심에 도착하면 건물의 외관에서 이곳의 역사와 문화 저변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다. 도시 전체가 종루(鐘樓)를 둘러싼 형태로 건설됐고 사방에는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가장 완벽한 고성벽이 남아 있다. 성벽 둘레 약 14km, 네 귀퉁이에 성루가 있고 4면에 성문과 98개의 망루가 있는 고대 중국 도시 방어 건축물의 걸작이다. 성벽 위는 도보나 자전거 통행이 가능하다. 볕과 바람이 좋은 오후,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선 젊은 부부나 교복 입은 학생들이 즐겁게 무리지어 자전거를 타는 모습 등 여유로운 슬로우 라이프의 한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수백 년 동안 백성을 보호하는 요새 역할을 하며 모진 풍파가 훑고 지나간 성벽 위에서 도시를 바라보면, 시간을 거슬러 진나라 제국이 천하 통일하던 시대로 돌아가기도 하고 대당성세(大唐盛世)의 번영을 목격하기도 하는 듯 하다.


시안 성벽 서문


성벽 중심에는 중국에서 현존하는 종루 중 가장 큰 명대 종루가 있고, 이를 중심으로 동, 서, 남, 북 네 방향으로 대가(大街)가 뻗어 있다. 남쪽 방향 큰 길을 따라 남쪽 성문을 지나 동쪽으로 가면 불교 건축물이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대안탑(大雁塔)이다. 대안탑은 당나라의 고승 현장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보존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탑은 높이 64m, 총 7층으로 구성됐으며 각 층에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불상과 벽화가 있고, 현장법사의 진적도 전시되어 있으며, 탑 꼭대기에서 도시 전체를 또한 내려다 볼 수 있다. 비록 7층 규모지만 현재의 20층 건물 높이에 해당할 정도로 매우 웅장한 건축물이다. 대안탑 주변에는 시안 최대의 대안탑 광장이 있다. 매일 밤 음악 분수 공연이 펼쳐져 시안 시민과 관광객들의 좋은 휴식처가 된다.


부용원(芙蓉苑)이라고도 하는 부용원(芙蓉園)은 수나라와 당나라의 황실 정원이었다. 대당부용원(大唐芙蓉園)은 원래 당나라 부용원 유적 북쪽에서 당나라 황실 정원의 양식을 본떠 재건한 것이다.


시를 통해 만나는 옛 사람들

시안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번영했던 수도이다. 특히 무수한 문인과 예술가들을 매료시켰는데, 그들은 시안의 풍속과 경치를 자신의 시작품에 녹여 내고, 자기의 감회와 포부를 토로했다. 대안탑에서 남쪽으로 뻗은 ‘대당불야성(大唐不夜城)’은 당나라 시대 건축 양식을 모방한 보행자 거리다. 이곳의 나무에는 시구(诗句)가 적힌 장식등이 주렁주렁 걸려 있어 관광객들을 옛 시인의 영적 세계로 초대해 마치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관광객이 대당불야성 보행자 거리에서 ‘성당밀합(盛唐密盒)’ 공연을 보고 있다. 연기자 두 명이 각각 당 태종의 명신 ‘방현령(房玄齡)’과 ‘두여회(杜如晦)’가 되어 퀴즈를 내고 관광객이 무대로 올라와 정답을 맞추는 공연이다.


두목(杜牧)은 <과화청궁(過華清宮) 절구 삼수>에서 ‘장안에서 돌아보니 비단을 쌓아 놓은 듯하고, 산꼭대기의 수많은 문들이 차례로 열리는구나. 질주하는 말이 일으키는 먼지를 보고 귀비가 웃네, 여지(荔枝)가 실려 온 줄은 아무도 모른다네(長安回望繡成堆 山頂千門次第開, 一騎紅塵妃子笑, 無人知是荔枝來)’라고 썼다. 양귀비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묘사한 것이다.


당 현종과 양귀비의 쓸쓸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도 장안이라는 이 도시에 비극과 낭만의 색채를 더했다. 마찬가지로 당 현종과 양귀비의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해 회자되는 백거이(白居易)의 명작 <장한가(長恨歌)>에도 대당의 흥망성쇠에 관한 감회가 담겨 있다.


시안 성벽 위를 둘러보는 관광객들


장안성은 천 년여의 세월이 축적돼 번영을 이뤘지만, 몰락까지는 불과 몇 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안사의 난 이후 국가 전체 인구의 3분의 2가 사라지고 동서 수로 교통이 마비돼 그 후로 장안의 번영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당 현종과 양귀비 사랑의 상징인 화청궁은 당나라의 흥망을 지켜봤다. 당나라 초기에 건설된 화청궁은 현종 집권 이후 절정을 맞았다. 당 현종은 매년 10월 이곳으로 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안사의 난 이후 정국이 급변해 현종은 황좌에서 내려왔고 화청궁도 빠르게 쇠락했다.


시안의 여름, 노을이 지는 종루와 고루(鼓樓)


화청궁에 들어가면 거대한 목욕탕을 볼 수 있는데, 밤마다 흥청망청 유희를 즐겼던 현종과 양귀비의 사치스러운 생활이 떠오른다. 뒷산에 있는 작은 정자는 양귀비가 머리를 말리던 곳이었다고 한다. 천하의 부귀 영화를 다 누리던 양귀비가 이 정자에 올라 짙은 밤하늘을 마주하며 이 번영이 사라진 후 몰려올 비참함을 상상이나 했을까.

글 | 위안수(袁舒) 사진 | V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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