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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 40년 역정을 기록한 도시, 선전


2018-09-25      글| 리샤(李霞), 인민화보사 편집장

 1978년 12월, 덩샤오핑이 제11기 3중전회에 참석했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선전(深圳) 서커우(蛇口)에서 시작됐다. 40년 동안 선전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979년 선전의 국내총생산(GDP)은 1억9700만 위안, 1인당 평균 GDP는 606위안에 불과했다. 2017년 선전의 GDP는 2조2400억 위안, 1인당 평균 GDP는 18만3100위안을 기록했다. 2017년 선전의 GDP는 전국 31개 성·직할시·자치구 가운데 15위를 차지했다. 1인당 평균 GDP는 중국의 대중도시 가운데 1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전국 평균(8836달러)의 3배가 넘는 수준이다.

현재 선전은 중국의 경제 중심도시, 과학기술 혁신 중심, 지역 금융중심, 비즈니스 물류중심으로 성장했다. 화웨이(華爲), 자오상(招商), 핑안(平安), 텅쉰(騰訊), 완커(萬科), 정웨이(正威), 헝다(恒大) 등 7개 세계 500대 기업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 500대 기업 200곳의 투자를 유치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는 2012년 12월 선전을 시찰하면서 “선전은 중국 최초로 개혁개방을 시행한 도시로 영향력이 가장 크고 가장 잘 건설된 경제특구”라고 말했다.

1980년대 선전시 선난(深南)대로  사진/ 쩡샹민(曾湘敏)

위에서 내려다본 지금의 선난대로. 40년 동안 선난대로는 선전의 개혁과 변화를 지켜봤다. 사진/CFP


사상해방, 발전의 새 장을 열다
1978년, 중국공산당 제11기 3중전회(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 이후 시중쉰(習仲勳) 당시 중국공산당 광둥(廣東)성위원회 제1서기 등 개혁의 선구자들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대외가공무역지구 건설에 관한 건의를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고 ‘처음으로 시도를 해보겠다’고 건의했다. 시대의 흐름과 상황을 잘 파악한 덩샤오핑(鄧小平)은 특구 건설을 제시하고 개혁가들에게 “혈로를 열라”고 독려했다. 서커우공업지구 건설 총책임자였던 위안겅(袁庚)은 ‘죽음을 불사하는’ 자세로 서커우공업지구에서 개혁개방을 실시했다. 그들의 비장한 자세에서 당시 개혁자들이 직면한 어려움을 알 수 있다.

1979년 전까지 중국은 ‘한솥밥’의 균등분배 원칙을 실시했다. 1981년 서커우는 ‘시간은 금이고, 효율은 생명’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경제 관념과 시간 효율 관념이 희박했던 1980년대에 이는 ‘사상의 속박을 부순 첫 번째 춘뢰(春雷)’였다. 서커우공업지구는 경제법칙에 따라 운영됐다. 초과생산 장려제를 시행해 생산자의 적극성을 유도했다. 주택분배제도를 폐지하고 직원 주택을 상품화해 노동자와 회사의 종속관계를 끝냈고, 인력의 자유로운 이동과 직업 선택을 촉진했다. 간부 종신제를 폐지하고 임용제를 시행해 간부가 될 수도, 반대로 해임될 수도 있게 만들었다.

분배제도, 관리체계, 간부 인사제도, 직원 채용제도, 급여제도, 주택제도 등 일련의 개혁이 서커우에서 시작됐다. 제도 마련과 개혁에는 리스크가 커 각급 지도자와 개혁자들의 지혜와 담력을 시험했다. 이 과정에서 경쟁 관념, 시장 관념, 계약 관념, 정보 관념, 성과 관념, 직업도덕 관념이 형성됐다. 중국의 현대화 과정에서 시대적·혁신적 분위기가 가장 짙은 정신 문명이 탄생된 것이다.


선전 최초로 노동인사제도 개혁을 시행한 주위안빈관(竹園賓館)


1990년, 서커우공업단지유한공사 동사장(이사회 의장) 후보자 답변회  사진/ 본지 소장 자료


자본유치, 경제도약을 뒷받침하다
개혁개방 전 선전은 폐쇄된 작은 도시였다. 반면 강 너머에 있는 홍콩은 국제적인 금융도시였다. 큰 격차는 강력한 자극이 됐다. 문을 열고, 시야를 넓히고, 사상을 개방했다. 해외로 진출해 세계를 느끼고 선진 과학기술과 다른 문화를 배웠다. 선전의 개혁개방 과정은 ‘개방은 진보를 가져오고, 폐쇄는 반드시 낙후된다’는 이치를 증명했다.

선전시 해상세계문화예술센터에 위치한 ‘서커우개혁개방박물관’에서는 <봄날 이야기(春天的故事)>라는 제목의 개혁개방 40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소개문에는 ‘1978년 진리 기준에 대한 대토론에 따라 국무원은 해외에 시찰단을 파견해 선진국의 경험을 배워 전면 개혁과 대외 개방을 준비했다. 1978년 5월 서방 경제의 발전 상황을 이해하고, 경제 기술 협력의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기 위해 구무(谷牧) 국무원 부총리를 단장으로 한 중앙정부 시찰단이 서유럽 5개국 시찰에 나섰다. 이는 건국 이후 중국이 처음으로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국가급 정부 경제대표단을 파견한 것이다’라고 적혀있다. 선진국을 방문해 시야를 넓히고 경험을 배우며 자본을 유치하는 것은 개혁개방의 상징적인 조치다.


서커우에 설립된 중국 최초의 일본 독자기업인 산요전기(서커우)유한공사. 산요 근로자는 당시 서커우에서 가장 상징적인 풍경이었다.

1980년 1월 서커우가 전세계를 대상으로 본격적으로 기업과 자본 유치에 나섰다. 이는 중국 개혁개방의 신호로 국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80년 서커우는 최초의 중외합자기업인 ‘중국-스위스 기계공업유한공사’를 설립했다. 1982년 서커우 첫 중외 합자 경영수출입 상품 및 외화를 수납하는 쇼핑센터가 개장했다. 1983년 서커우 최초의 일본계 기업 ‘산요전기(서커우)공사’가 설립됐다.

1983년 9월 25일 국무원 비준을 거쳐 서커우 항구가 공식적으로 국가 대외개방 항구가 됐다. 40년 전 덩샤오핑은 “가난은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말했다. 2012년 시진핑은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인민의 바람이 바로 우리의 분투 목표”라고 말했다. 1980년대 중국이 선전경제특구 설립을 결정한 것은 ‘선전이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에서 먼저 한 걸음 걸어 국가 부강, 민족 부흥, 인민 행복을 위한 새 길을 모색하도록 한 것이다.’

바오안(寶安)구 화이더사구(懷德社區)의 공동경제 보유자인 화이더(懷德)주식합작공사는 사구의 토지 자원을 통합 계획해 현재 화이더공위안(懷德公元), 화이더펑징(懷德峰景), 화이더항강궈지(懷德航港國際), 화이더 옛마을 개조(懷德舊村改造)의 4대 자체 토지개발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화이더사구는 실물경제를 계속 발전시키고, 현대 항공물류단지를 건설해 항공물류, 스마트 창고, 공급사슬 관리를 중점 발전시키고 있다. 또한 첨단과학기술산업단지를 신규 건설해 재산권 주식전환 방식을 통해 상장회사 5곳, 첨단과학기술기업 100곳을 유치해 300억 위안 규모의 전문 단지를 조성했다.

화이더의 새로운 발전 계획은 시대적 특징이 강하다. 자본 운영을 통해 금융분야에 투자해 우수 자산과 주식 등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수익 창출을 모색했다. 2016년 화이더주식합작공사는 선전 농촌상업은행 주식을 매입해 지분 5.15%로 1대 주주가 돼 매년 배당금 7190만 위안의 수익을 거두고 있다. 또한 자체 경영, 독립 개발을 통해 자본 운영 수익을 최대화했다.


서커우 간척 항구 건설을 알리는 소리가 선전 서커우 5만(灣)과 6만 사이의 산등성이에서 울렸다. 현재 5만과 6만 사이에는 넓고 평평한 공업도로가 조성돼 있고 도로를 따라 과거 전국으로 퍼졌던  ‘시간은 금이고, 효율은 생명’이라는 표어판이 있다. 사진/ 천젠(陳建)

인재 유치, 발전의 에너지를 축적하다
럼, 라임, 소다수, 민트로 만드는 칵테일인 모히토(Mojito)를 베이징(北京)의 술집에서는 ‘모지퉈(莫吉托)’라고 부르지만 선전에서는 ‘멍치둬(夢奇多)’라고 한다. 이는 젊은이가 많고, 꿈이 많고, 기회가 많은 선전의 특징과 잘 맞는다.

선전은 기적 같은 발전을 거뒀다. 38년 전 이곳은 인구 33만명에 제일 높은 건물이 3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구가 2000만명이 넘고, 100m 이상 고층빌딩이 1000동에 달하며, 100% 도시화를 이뤘고, 외지 유입인구가 95% 이상이며, 주민 평균 연령이 32.5세다.

지금도 선전은 여전히 창업자의 낙원이고 혁신자의 아이디어 창고다. 40년 전 선전 지도자들이 보여준 장기적인 안목과 낡은 관습을 깨는 용기, 개혁자의 시험정신은 젊은이들에게 자유로운 생각을 심어주었다. 오늘 날 선전시 정부는 국제적인 안목과 서비스형 지원으로 창업자와 혁신자에게 칭송을 받고 있다.

오늘날 선전은 인구 2000만명 이상, 100m 이상 마천루가 1000동 가까이 있다. 사진/ 차오저우(喬舟)

선전시 정부는 이 젊은 도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인재가 핵심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인재정책을 최적화하고 ‘잉펑계획(英鵬計劃)’, ‘쿵췌계획(孔雀計劃)’ 등 국내외 다양한 고급인재 유치 계획을 실시했다. 특히 국제적인 인재를 대상으로 한 맞춤형 정책을 내놓고 글로벌한 시야에서 전세계를 대상으로 인재 유치 정책을 펼쳤다.

룽웨이(龍威)는 올해 39세로, 칭화(淸華)대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석유회사 BP에서 지구 중심핵 디지털화와 스마트 결정 기술 분야의 전문가로 일했다. 그가 이끄는 팀은 2017년 광둥성 ‘주장 인재계획(珠江人才計劃)’ 혁신창업팀과 선전시 해외우수인재 ‘쿵췌팀’ 프로젝트에서 자금을 지원받았다.

그는 “선전은 혁신 도시로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며, 국제적인 마인드를 가져 미국과 창업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게 자금 지원만 받은 것이 아니라 서비스형 정부의 실무적이고 효율적인 지원도 받았다. 다장(大疆), 비야디(比亞迪), 자오상, 핑안(平安), 중신(中信), 화웨이 등 국내외 유명기업도 선전시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다.

서전딩(佘振定)은 올해 35세로, 칭화대학교에서 바이오소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선전에서 10년 동안 서전딩의 연구팀이 개발한 인공피부는 중국 최초로 개발한 것으로, 큰 면적으로 진피가 손상된 피부의 재생 및 기능 복원에 적용되는 기술이다. 이는 세계 선진 수준으로 시장 잠재력이 100억 위안이 넘는다. 그는 선전란두(蘭度)바이오소재유한공사를 설립하고 과학연구 성과를 산업화시키고 있다.

서전딩은 선전시 정부는 업다운 스트림을 아우르는 관련 정책과 인재 유치 정책을 다양하게 만들어 젊은 창업자에게 훌륭한 조건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한 예로 회사내 젊은이들은 정부가 건설한 임대아파트에 거주해 혼잡한 통근을 하지 않는다. 덕분에 일하는 즐거움과 삶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차오원징(曹文靜)은 올해 32세로, 선전 ‘이민 2세대’다. 부모 세대는 전통적이고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선전에서 창업하고 열심히 일해 ‘선전 2세대’인 자녀들의 모범이 됐다. 선전의 양호한 창업 환경은 그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심어주었다. 차오원징은 동업을 통해 500만 위안을 투자해 다펑신구(大鵬新區)에 현대적 스타일의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했다. 초등학교때부터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꽃과 나무, 고양이와 개를 좋아했던 차오원징은 이곳에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리자훙(李佳鴻)은 올해 24세로, ‘선전 2세대’다, 호텔관리를 전공하고 힐튼과 웨스턴 호텔에서 실습했지만 차오원징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를 선택했다. 그는 이유를 “5성급 호텔에서 손님들과 삶과 일, 각자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손님과 차를 마시며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20-40세에는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고, 40-60세에는 이 도시를 떠나 새로운 경험을 쌓고, 60-80세에는 다시 선전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젊은이들은 선전이 가장 좋을 때에 태어났고, 이 도시를 사랑한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생활이 그들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했고, 용감하게 시도해보도록 했다. 그들은 선전이 있어 행복하고, 선전은 그들이 있어 행운이다.

협동정신, 건강한 지역사회를 육성하다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면 인간과 사회는 어떻게 진보해야 할까? 2017년 선전시는 시민 교양 향상을 위한 ‘6대 행동’을 내놨다. 수심(修心), 양덕(養德), 수법(守法), 상지(尚智), 숭문(崇文), 건체(健體)가 그것이다. 선전시 정부는 개혁 발전에 필요한 인재는 첨단기술력은 물론 국민 교양과 사회 교양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화이더사구 간부들은 주민이 ‘물질보다 정신이 더 풍부하고, 주머니보다 머리가 더 부유하길’ 바란다. 판(潘) 씨는 화이더촌에서 가장 많은 성씨로, 북송 말년 허난(河南) 싱양(荥陽)에서 이곳으로 이주했다. ‘화이더’는 조상의 덕을 기린다는 뜻이다. 마을 입구 사당은 문화대혁명 시기에 부서졌다. 1990년대 후손들은 당시 촌위원회 주임이었던 팡취안웨이(方權威)를 주축으로 자금을 모아 사당을 재건했다. 오늘날 사구 관리에서 사당 문화와 가풍, 가훈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화이더사구는 사회의 자체 관리 능력과 개인의 교양을 향상시키는 현대화 사구 관리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함께 참여하고, 함께 노력하고, 함께 누리는’ 사회 관리 구도는 구역(區域)장, 가(街)장, 항(巷)장, 건물장 차원의 자치관리 틀에서 변호사, 심리상담사, 마약금지 사회복지사, 양노기관이 보조한다. 또한 사회기관을 육성 및 지원하며, 오락, 자선, 사회서비스 등 방식으로 치안 관리, 사구 돌봄, 환경 보건, 갈등 해결, 사구 문화 건설 등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교양이 높아지고 사회의 자체 관리 능력도 강화된다.

40년 발전을 통해 선전은 부를 축적했고 건강한 사회를 육성했다. 90년대 선전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빈번한 절도와 지저분한 도시 외관이 가장 인상에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선전은 질서정연하고 선의가 가득하다. 자동차는 양보하고 서비스는 친절하며 곳곳에서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다. 왕웨이중(王偉中) 중국공산당 선전시위원회 서기는 “선전은 사랑이 넘치는 도시이자 자원봉사자의 도시로 10명 당 1명 꼴로 자원봉사를 한다”고 말했다. 목표는 ‘전국에서 가장 안전하고 안정적이며, 가정 공평하고 공정하며, 법치 환경이 가장 좋은 지역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광둥성을 시찰하면서 선전에게 ‘개혁을 멈추지 말고 개방의 발걸음을 멈추지 말라’고 당부했다. 선전경제특구가 거둔 성과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이 거둔 역사적 변혁이자 역사적 성과의 축소판이다. 선전의 개혁개방 역사는 사상 해방과 대외 개방이 ‘중국이 일어나 부유해지고, 강해질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이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했다.
(미서명 사진은 선전시 당위원회 선전부 제공)


글| 리샤(李霞), 인민화보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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