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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차 산업의 선구자, 천쭝마오(陳宗懋)


2019-08-15      

천쭝마오 중국 공정원 원사이자 중국 찻잎학회 명예이사장 사진/궈사사(郭莎莎)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는 고금을 막론하고 늘 일상에서 차를 즐겨왔다. 향긋한 차 한 잔에는 수천 년 간 이어져온 동아시아의 역사는 물론 우리 삶의 모든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은 수천 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찻잎을 재배해 왔다. 오늘날 중국에서 찻잎과 차 산업을 논하기 위해서는 중국 차학(茶學)계의 대부로 꼽히는 ‘천쭝마오’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86세인 천쭝마오는 중국 찻잎 연구에서 최고 권위를 지닌 공정원(工程院) 원사(院士)이자 중국 찻잎학회 명예이사장, 중국 찻잎 농약잔류 문제 연구 분야의 일인자로 꼽힌다. 1960년대부터 찻잎의 농약잔류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해 차나무의 다양한 농약 분해 패턴과 예상 모형을 제시함으로써 중국 찻잎 농약잔류 연구의 신기원을 열었다. 또한 18개의 국가급 표준과 5개의 부급(部級) 표준 제정에 앞장서며 중국 찻잎의 잔류농약 감소와 찻잎 수출 확대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가 이끄는 실험실은 현재 중국 찻잎 수출과 관련해 유럽연합(EU)이 인정하는 유일한 검사기관이다.

팔순을 넘긴 나이지만 아직도 ‘현역’으로 뛰는 그는 지금도 찻잎 연구의 최일선에서 땀흘리고 있다. 매일 업무에 쏟는 시간만도 10시간이 훌쩍 넘는다.“사람은 절대 배움을 멈추면 안 됩니다. 출장 갈 때를 제외하고는 매일 아침 8시 반 연구소로 출근해 낮에는 연구원들과 함께 연구를 하고 사무를 처리합니다. 밤에 귀가하면 매일 2편에서 3편씩 문헌 자료를 살펴봅니다.”

학생들과 함께 차밭의 병충해를 식별하는 천쭝마오 원사(가운데)의 모습. 파키스탄 출신의 박사과정 학생 피다(우측)는 중국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파키스탄의 찻잎 생산량을 늘리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사진/궈사사

찻잎 농약잔류 문제를 해결하다
그는 1933년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는 사업체를 운영했고 어머니는 의사였기 때문에 그의 집안은 중산층에 속했다. 교육열이 남달랐던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그에게 독서 습관을 길러주었고, 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는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상하이 칭신(清心) 중등학교에서 보냈다. 미국인 선교사가 세운 크리스천 학교라 규율이 엄격하고 영어 교육을 강조한 까닭에 훗날 연구의 큰 자산이 된 영어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1950년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는 중국에서 전국 대입 일제고사인 가오카오(高考)가 시행된 지 얼마 안 되던 때였다. 원래 상하이 푸단(復旦)대 의대에 지원하려 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농예(農業)과에 진학하게 된 그는 생각지도 못하게 식물보호나 곤충 등의 연구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1952년 중국의 대대적인 대학 구조조정 실시로 그가 다니던 학과는 새로 설립된 선양(瀋陽) 농학원(農學院)으로 이전됐다. 선양에서 식물보호 전공으로 2년을 수학하고 1954년 졸업한 뒤에는 중국농업과학원 사탕무 연구소에서 사탕무 병충해 연구를 나서면서 본격적인 과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1960년 2월 다시 항저우(杭州) 중국농업과학원 찻잎연구소로 배치되면서 그와 찻잎의 깊은 인연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연구소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에게 부여된 첫 번째 과제는 바로 ‘잔류 농약’을 검출하는 일이었다. 그에게는 광저우(廣州) 세관에서 농약잔류 기준 불합치를 이유로 영국 세관으로부터 반려된 찻잎 샘플을 가져와 기준치를 초과한 물질이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임무가 주어졌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농약잔류 연구는 거의 공백에 가까웠다. 참고할 만한 사례도 전무했다. 여러 번의 실험 끝에 그는 국제 기준치를 크게 초과한 물질이 유기염소 계열의 살충제인 DDT(다이클로로다이페닐트라이클로로에테인)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찻잎의 잔류농약 검출 연구에 더욱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잔류농약 검출 연구는 때때로 기나긴 인내가 필요했다. 그는 아직도 30년 전의 그날을 잊지 못한다. 1990년대 중국에서 수출하는 찻잎의 40%가 S421(옥타클로로디프로필 에테르, OCDPE) 기준치를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영국인들은 중국 농가에서 대체 왜 찻잎에 S421을 뿌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우리가 S421을 뿌린 게 아니라 오염물이 섞여 들어갔을 수 있다. 원인을 찾아보겠다”고 해명했다. 참으로 중대한 작업이 아닐 수 없었다. S421이 검출된 경로를 찾지 못한다면 앞으로 중국 찻잎의 해외시장 진출은 요원할 것이었기 대문이다.

그러나 2년이 지나도 도무지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연구팀이 농약, 비료, 농수, 토양 등을 모두 검사해 봤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구차 푸젠(福建)으로 출장을 갔을 때 한 찻잎업체의 작업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이게 웬 연기죠?”
“아, 그거요. 모기향을 피워놓아서 그렇습니다.”

당시는 일정한 시스템과 표준화된 프로세스는 물론 생산환경에 대해 제대로 된 인식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기후가 습한 푸젠은 낮이면 날벌레가 날아다니고 밤에는 모기가 들끓어 작업장에는 인부들의 업무 집중도 향상을 위해 항상 모기향을 피워놓고 있었다. 문제의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일까?

그는 양해를 구하고 작업장 한 곳의 찻잎을 얻어 연구실로 돌아왔다. “용매에 넣고 결과를 기다렸죠. 5분 42초가 지나자 놀랍게도 S421이 검출됐습니다.” 그는 아직까지도 이 ‘5분 42초’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시장에서 종류별로 200개가 넘는 모기향을 사들여 용매에 담그고 기다렸다. 정확히 5분 42초가 지나자 일제히 S421이 나타났다. 드디어 원인을 찾은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한 실험 보고서를 작성해 상부에 올렸다.

2006년, 중국 농업부는 모기향에 S421 첨가 금지령을 내렸다. 또한 S421이 함유된 농약 제품의 관리를 강화하고 관련 제품의 등록 접수와 승인을 중단한 데 이어 S421이 함유된 기존 농약 제품의 등록 취소와 판매 금지 시한을 정해 발표했다.

“2007년 3월경 저희가 조사를 나갔을 때는 이미 시장에서 S421이 자취를 감춘 상태였습니다. 오염이 되었다면 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아울러 어떤 문제에 가로막혔을 때 포기하지 말고 어떻게든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 즈음에는 중국 찻잎의 농약 잔류 수준도 크게 낮아지는 추세였다.

그는 50년 가까이 찻잎과 잔류농약 문제를 연구해 왔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끈기와 깊숙이 파고드는 정신 덕분에 중국은 찻잎과 농약 연구 분야에서 탄탄한 연구 기반을 다졌고, 그 결과 수많은 작물 중에서도 찻잎에 처음으로 중국의 농약사용 안전 기준이 적용되게 되었다.
 
연구소에서 학생들의 잔류농약 분석 실험을 지도하는 천쭝마오 원사의 모습 사진/궈사사

중국 차 산업의 국제영향력 확대에 공헌
1990년대에는 세계 주요 찻잎 수입국들이 찻잎의 농약 잔류 기준을 크게 강화하면서 중국의 찻잎 수출 산업도 직격탄을 맞았다. 이처럼 각종 찻잎의 수출길이 막힌 상황에서 그는 ‘투사’로 나섰다. 차 안전과 관련한 국제 세미나에서 찻잎의 잔류농약 기준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중국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2005년 열린 ‘제16회 UN 정부 간 그룹회의 찻잎 분과회의’에서 그는 잔류농약 기준치에 하나의 통일된 표준을 만들지 않으면 앞으로 전세계 찻잎 생산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의 주장은 케냐, 스리랑카, 인도와 같은 찻잎 생산국들의 찬성과 지지를 받았고 세계 연간 찻잎 생산량 1위인 중국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차 산업의 발전에도 실질적인 역할을 발휘했다.

그때까지는 유럽연합을 비롯한 모든 나라가 관행상 마른 찻잎을 중심으로 농약잔류 기준을 측정했다. 그러나 어느 날 찻잔을 들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천쭝마오의 머릿속에 불현듯 어떤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보통 우리가 마시는 것은 찻물이니, 찻물 속의 농약잔류량에 관심을 가져보면 더욱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는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기뻐하며 벌떡 일어섰다.

그는 이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6가지 농약의 찻물 용해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해보았다. 결과는 각각 크게 다른 수치로 나타났다. ‘어떤 농약은 95%가 물속에서 녹고, 어떤 농약은 물속에서 녹는 양이 1%도 안 된다. 결국 해외의 찻잎 잔류농약 기준은 엄격하기는 하지만 합리적이지는 않은 셈’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찻잎의 잔류농약 측정은 찻물의 양도 고려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을 점점 더 굳어지게 만들었다. 2010년과 2011년, 70여 개국 과학자들이 모여 토론하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 농약잔류분과위원회(Codex CCPR)에서 중국 대표단 명의로 이에 대한 안건을 2차례 제출했다. 2차례의 수정을 거친 끝에 2015년 충칭(重慶)에서 열린 제48회 유엔식량농업기구(FAO) CCPR 총회에서는 ‘찻잎 속 농약 잔류허용기준(MRL)에 대해서는 찻물 속 잔류농약을 바탕으로 마른 찻잎의 MRL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중국 대표단의 안건이 통과되고 최종 회의보고서에 기록됐다. 

과학자들은 언제나 더 나은 목표를 갈망하게 마련이다. 그는 최근 연구팀과 함께 차밭의 화학생태 연구로 연구 방향을 틀었다. 간단히 말해 차나무와 해충, 천적 간의 관계를 통해 생물학적 방제를 시도함으로써 화학적인 농약 사용을 줄여 전체적인 농약 잔류량을 낮추는 방법이다.

연구팀은 해충이 선호하는 파장을 이용해 만든 LED 유아등(誘蛾燈)으로 해충 섬멸률을 높이는 실험을 진행하고, 해충을 유도하는 노란색과 익충을 쫓는 빨간색의 ‘천적 팔레트’를 이용해 해충의 섬멸 정확도를 높였다. 또한 인공적으로 만든 암컷 해충 모형의 냄새를 통해 성적 유인 물질을 풍겨 수컷 해충을 끌어들이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그는 연구소가 개발한 화학생태 방제법을 통해 2018년 중국의 농약 감소량이 40%, 일부는 100%까지 됐다고 밝혔다. 이는 ‘13차 5개년 계획’의 ‘농약과 비료사용량 감축(藥肥雙減)’ 항목에서 5년 안에 농약 사용량을 25% 줄이겠다는 목표를 뛰어넘는 수치다.

2018년 4월, 중국식품과학기술학회와 국제식품과학기술연맹은 그에게 식품안전 부문에 기여한 탁월한 공로를 인정하여 ‘과학정신상’을 수여했다. ‘과학자로서의 책임과 사명을 짊어지고 명료한 과학자의 정신을 보여주었다’라는 짧은 시상 멘트에는 그가 걸어온 필생의 행적이 압축되어 있었다.

세상과 소통하며 행동하는 과학자
그는 연구뿐 아니라 직접 차 농사를 짓는 등 ‘행동하는 과학자’이다. 백발이 성성한 원로 연구자임에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차 산업을 알리는 일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잘못된 지식이나 근거 없는 낭설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말을 안 하면 차에 대해 어떻게 알리겠는가? 다만, 반드시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말해라.”중국에서 식품안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최근 이와 관련된 갖가지 유언비어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심각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특히 2017년에는 찻잎을 둘러싼 유언비어가 극에 달했다. 그는 한때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던 ‘보이차 발암설’에 대해 ‘보이차의 아플라톡신 문제’를 주제로 대중 연설을 했다. ‘과학 이론’, ‘보이차의 아플라톡신 함량’, ‘보이차의 아플라톡신과 음용자의 안전 문제’ 등 세부 주제로 나눠 보이차의 안전 문제에 대한 대중의 궁금증을 자세히 풀어주는 자리였다. 그는 인터뷰 중에 “과학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말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중국 차 산업의 빠른 발전은 중국의 오랜 차 문화에서 비롯되었습니다.”그는 최근 차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는 이유로 중국의 뿌리 깊은 차 문화와 차의 건강 효능에 대한 연구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점점 주목하게 된 점을 꼽았다. 그의 열정을 자극하는 또 다른 분야는 바로 차 문화 연구와 차 지식 보급이다. 그가 편찬한 <중국다경(中國茶經)>과 <중국찻잎대사전(中國茶葉大辭典)> 등은 중국에서 이미 차학 연구와 찻잎 지식의 대표서가 된 지 오래다. 특히 <품차도감(品茶圖鑒)>에는 214종의 찻잎과 찻물이 수록되어 가히 ‘품차(品茶)’ 문화를 집대성했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에 펴낸 <중국다경>에는 여러 왕조의 다사(茶事)를 담고 있는데, 현재까지 재판본이 30쇄 넘게 찍혔다. 2014년에는 <찻잎의 건강효능(茶葉的保健功能)>이 출간되기도 했다.

“찻잎은 산업 가치사슬이 길고 기술 응용 수준이 높은 데다 여러 영역과도 맞물립니다. 농업과 가공업, 헬스산업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직 배워야 될 것도 많고, 해야 할 일은 더더욱 많습니다.” 그는 차가 우리를 건강하게 할 뿐 아니라 가난한 지역을 경제적으로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에 ‘향촌 진흥’의 핵심 아이템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앞으로 중국의 차 산업은 더 많은 혁신과 확장을 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찻잎을 연구하다 보면 재미도 있고 그 안에 멋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이 일을 계속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찻잎 표준화와 농약 사용량 감축 면에서 더 많은 일을 계속 해나가려 합니다.”화려한 수식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그의 눈빛 너머로 창밖의 고요한 차밭 풍경이 펼쳐진다. 그 안에 중국 차 산업의 밝은 미래가 보이는 있는 듯했다. 

 

글|모첸(莫倩), 장진원(張勁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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