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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슴도치> 시대의 격랑 속 동북지방 아웃사이더 이야기


2024-10-15      



얼마 전 개봉한 영화 <고슴도치(刺猬)>는 주변에서 ‘괴짜’ 혹은 ‘별종’이라 불리는 왕잔퇀(王戰團)과 그의 조카 저우정(周正)을 중심으로 1980년대부터 중국 동북 지방에서 함께 겪은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왕잔퇀은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꿈이 좌절된 뒤 행동이 기괴해지고 심지어 정신 이상 증세마저 보이며 가족들에게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는 인물이다. 조카 저우정은 심각한 말더듬증으로 학교에서 수차례 유급되고 주변 환경에도 잘 섞여 들지 못하는 소년이다. 녹록치 않은 삶에 치인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세대를 뛰어넘는 망년지교(忘年知交)가 돼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영혼의 단짝으로 발전한다. 둘은 거의 ‘실성’에 가까운 방식으로 세상의 편견에 함께 맞서고 자신들이 꿈꾸는 이상세계를 향해 힘껏 내달린다.


영화에는 구창웨이(顧長衛) 감독 특유의 소박하면서도 날것 그대로의 질감과 독창적인 영상미가 그대로 녹아 있다. 뚜렷한 지방색과 시대의 흔적 속에서 살아가는 소외된 사람들의 과거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1980년대 말 쇠퇴하던 중국 동북 공업지대의 암울한 현실을 배경으로 러닝타임 내내 저채도의 진한 잿빛이 역사의 무거운 더께처럼 화면에 깔려 있다. 이를 통해 중국 북방 내륙의 중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저변을 정확히 포착해 짓눌린 감정과 팽팽한 긴장감을 연출하는 동시에 시대의 격랑 속에서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인물에게 닥친 현실의 도전과 내면의 방황을 암시한다. 기울어진 구도의 반복적인 등장은 우리에게 익숙한 시각적 균형에 도전하며 관객들을 불균형한 시각의 세계로 초대한다. 기울어진 화면은 왕잔퇀과 저우정의 눈에 비친 ‘비틀리고 이상한 세계’를 직관적으로 투영하면서 그들이 삶의 주류 궤도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독특한 인생 궤적’을 그리고 있다는 점을 은유한다. 서사적 측면에서 영화는 삶의 민낯과 잔혹성을 담담한 어조로 차분히 나열한다. 왕잔퇀과 저우정의 비극적 운명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냉철한 시각으로 ‘두 이단아’에게 내재된 자각과 초연함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정신적 가치와 내면의 풍요로움에 철저히 무관심하고 싸늘한 당시 사회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부각시킨다.


부호과 이미지의 절묘한 사용도 <고슴도치>의 스토리에 풍부한 스펙트럼과 깊이를 더한다. 영화를 관통하는 상징 ‘고슴도치’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민간요법이자 민간 신앙에서 ‘5대 신선’ 중 하나다. 저우정의 모친은 언어장애를 겪는 그를 침구사에게 데려가 침술 치료를 받게 하는데, 입 주변 가득 은침을 꽂은 저우정의 모습은 흡사 그가 실수로 삼켜버린 고슴도치의 가시를 연상시킨다. 사회 주류와 섞이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그의 무력감과 고통을 황당하면서도 깊이 있게 반영했다. 왕진퇀은 허공으로 팔을 뻗어 유골(遺骨)에서 피어오르는 흰 연기를 움켜쥐거나 길을 지나는 고슴도치를 보호하려 갑작스레 차를 가로막는 등 행동을 통해 독특한 삶의 철학을 드러낸다. 하지만 광기 어린 행동의 이면에는 오히려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깊은 통찰과 초연한 태도가 서려 있다. 시대로부터 거부 당한 두 ‘이상주의자’는 비록 바둑판 위의 사석(死石, 죽은 돌)처럼 현실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하지만 각자의 ‘광기’어린 행동과 고집을 통해 누구보다도 강인한 생명력과 꺾이지 않는 의지를 보여준다.


독특한 예술적 표현과 인간 본성에 대한 심오한 탐구가 돋보이는 <고슴도치>는 생생하면서도 복잡한 중국 동북지역 소외된 이웃들의 삶을 낱낱이 보여준다. 시대성과 지역성을 겸비한 이 작품은 개인의 가치와 정신적 자유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하나의 ‘예술 걸작’으로 중국 영화시장에 신선한 활력과 사고의 차원을 불어넣는 동시에 변화된 중국 사회와 인간 본성의 찬란함을 엿볼 수 있는 매력적인 ‘투시경’ 속으로 전 세계 관객들을 안내한다. 


글|천자위안(陳佳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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