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3
중국 고대화 중 서왕모 이미지
‘서왕모’는 중국 고대의 신화 인물로 쿤룬(昆侖)산에 살면서 인간의 화복을 주관하며 인간을 불로장생하게 하는 복숭아와 신약을 가졌다고 한다. 중국 도교에서는 여신의 으뜸이라고 하여 ‘왕모(王母)’라고 불린다. 2000여 년 전 고서 <목천자전(穆天子傳)> 기록에 따르면 서주(西周)의 천자 주목왕이 쿤룬산 일대에서 서왕모와 만나 애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때문에 서왕모가 상고시대 서쪽 부락의 우두머리라고 여기는 전문가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서왕모는 신적 이미지로 관련 전설이 중국에 전해졌고 조선반도(한반도)까지 전파됐다.
고려 왕조는 북송의 도교 문화를 적극 도입했고 궁궐 내에 도교 사원인 복원궁을 건설했다. 동시에 서왕모는 도교 신선으로 공경 받았다.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왕은 출행 시 좌우 수레와 말 의장으로 서왕모 깃발을 높이 들었다고 한다. 중국 <송사(宋史)>에 따르면 1015년 고려 사신 곽원래가 송나라를 방문해 고려의 풍습을 소개하면서 “고려에서는 정월 7일 집집마다 서왕모 그림을 건다”고 말했다.
조선시대에도 서왕모 전설과 이미지는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했다. 조선 세조 시대, 세조와 왕비가 순행에 나서면 영접하는 이들이 국왕과 왕비의 공적을 칭송하는 노래를 바쳤는데 국왕의 순행을 주목왕의 서쪽 지방 주유에 빗댄 것도 있었다.
1482년 조선 성종은 경복궁에서 조모인 정희왕후의 생일을 축하하면서 ‘금일래개왕모연(今日來開王母燕, 오늘 조모의 생일잔치는 서왕모의 연회와 같다)’라고 시로 조모가 서왕모처럼 장수하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1505년 조선 연산군의 애첩 안 씨가 세상을 떠났다. 안 씨는 출신은 비천했지만 연산군은 신분 차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세상을 떠난 안 씨에 대한 비통함을 표현했으며 시를 지어 제사에 올리라고 명령했다. 그 가운데는 주목왕과 서왕모의 사랑, 초 회왕(楚懷王)과 우(巫)산 신녀와의 만남 이야기를 차용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는 바람을 표현한 것도 있었다.
조선 왕조 후기 인조는 세상을 떠난 계모 인목대비에게 올리는 애책문에서 그녀가 ‘심왕모어요수, 문천손어은황(尋王母于瑤水, 問天孫于銀潢, 요지(瑤池)에서 왕모를 찾고, 은하에서 직녀성을 방문한다)’ 이라해 하늘나라로 승천하길 바랐다.
철종 시기에는 유교 정통 관념을 고수한 시강(侍講) 관리들이 젊은 국왕에게 불로장생이란 인간의 상상일 뿐이고 주목왕이 서왕모를 만나 장수를 누리게 됐다는 이야기는 낭설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왕모 전설을 좋아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꿀 수는 없었다. 지금도 조선시대 문인들이 남긴 서왕모 전설을 포함한 고대 시가를 많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