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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 문화부터 독립투사 발자취까지… 베이징 후퉁의 매력


2024-03-19      


난뤄궈샹(南鑼鼓巷)의 윈난(雲南) 훠궈(火鍋) 뷔페집, 옌다이셰제(烟袋斜街)에서 구러우(鼓樓)를 바라보며 먹는 훠궈집, 우다오잉(五道營) 후퉁(胡同)의 노천 훠궈집……. 필자가 좋아하는 베이징(北京)에서 제법 멋스러운 3대 훠궈집이다. 공교롭게도 베이징의 유명한 3대 후퉁인 난뤄궈샹, 옌다이셰제, 우다오잉에 위치해 있다.


후퉁은 흔히 베이징의 뒷골목을 일컫는다. 오랑캐 ‘호(胡)’자에 무리 ‘동(同)’자를 쓰는데, 베이징을 처음 도읍으로 정한 원(元)나라 때 형성된 좁고 긴 골목이 아직까지도 이어져 온 것이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베이징시가 전통문화 보존과 특색 개발을 추진하면서 낡고 허름했던 후퉁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수백 년 된 골목과 건물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채 최소한의 리모델링을 거쳐 카페, 레스토랑,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탈바꿈한 것. 마치 우리나라 서울의 서촌이나 북촌처럼 말이다. 필자가 즐겨 찾는 훠궈집도 그중 하나다.


사실 알고보면 베이징에는 3대 후퉁 말고도 이름 모를 낯선 후퉁이 수도 없이 많다. 과거 원나라 때 식수였던 우물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들어 집을 짓기 시작했고, 그렇게 생겨난 집들이 좁은 골목을 형성했는데, 그것이 바로 후퉁의 시작이다. 골목이 점점 늘어나 1945년 전후에는 4000~6000여 개에 이르렀다는 말도 있다. 중국에는 ‘이름있는 후퉁이 3600개, 이름 없는 후퉁이 소털처럼 많다’는 말이 있다. 최근 들어 도시 재개발로 후퉁이 헐리면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후퉁은 약 500개 남짓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 연휴에 짬을 내 중국인 친구와 함께 그 유명하다는 스차하이(什剎海) 인근 후퉁을 구석구석 거닐었다. 검회색 벽돌 탓인지 겨울철만 되면 삭막해 보이는 후퉁도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 음력 설)만큼은 곳곳에 홍등과 홍기가 내걸려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이었다.


스차하이는 자금성(紫禁城) 북쪽에 위치한 곳이라, 인근 후퉁엔 역사적으로 관직이 높은 고관대작이나 부유한 사람들이 주로 살았다고 한다. 특히 집집마다 대문의 문당(門當)과 호대(戶對)를 관찰하면서 걷는 것도 꽤나 흥미롭다.


문당은 대문 윗쪽에 튀어나온 돌조각 혹은 목각을, 호대는 대문 양쪽에 세워진 돌조각인데, 둘 다 가문이나 집주인의 신분을 나타내는 표식이다. 문당 개수가 많을수록 권세가 높은 집안임을 뜻하고, 호대는 생김새에 따라 둥근 돌조각은 문관, 각진 돌조각은 무관의 집을 의미하는데 특히 사자나 기린 모양의 돌은 왕족이나 황족의 저택이라는 게 중국인 친구의 설명이다. 중국 사자성어 ‘문당호대(門當戶對)’도 바로 여기서 유래했다. 결혼은 사회 경제적 지위가 비슷한 두 집안의 남녀가 해야 한다는 의미다.


옛집의 자취가 아직 남아있어 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찾기도 한다.


인상깊은 점은 과거 일제에 저항했던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의 옛 흔적도 베이징 후퉁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 허우구러우위안(後鼓樓苑) 후퉁의 어딘가에 남아있을 우당 이회영의 옛집, 이육사 선생이 순국한 둥창(東廠) 후퉁의 일본 총영사관 부속 헌병대 감옥, 단재 신채호 선생이 살았던 차오더우(炒豆) 후퉁까지, 앞으로 베이징에서 남은 생활 동안 하나 하나 둘러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글|배인선(한국), 한국 아주경제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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