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8
월하에서 뱃놀이를 하는 관광객들이 양쪽 강변에 늘어서 있는 수묵화처럼 고풍스럽고 우아한 건축물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VCG
장쑤(江蘇), 저장, 상하이(上海) 세 곳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자싱은 수천 년 간 세월의 풍파를 겪은 도시다. 이곳은 물의 고장인 수향(水鄉) 특유의 풍습을 간직하고 찬란한 문화와 유구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물길 따라 만나는 신구 조화
오래된 벽돌로 쌓은 아치형 교각을 지나 신재생에너지로 운행되는 전기 유람선이 눈앞에 천천히 다가와 정박한다. 현지 주민들은 각자 ‘시민 카드’를 꺼내 카드를 찍고 배에 올라탔다. 물길이 종횡으로 뻗은 자싱에서는 이러한 수상버스가 가장 흔한 교통수단이다. 배가 짙푸른 강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자 회벽과 검은 기와집이 투영된 수면 위로 잔잔한 물결이 인다.
남쪽의 여항(餘杭, 현재의 항저우·杭州)에서 시작해 북쪽의 탁군(涿郡, 현재의 베이징·北京)으로 이어지는 경항대운하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큰 규모의 고대 운하다. 중국 남부의 식량을 북부로, 북부의 물자를 남부로 수송하는 중요 통로였다. 대운하는 자싱을 지나며 수많은 지류로 갈라져 도시 전체를 하천망으로 에워싼다. 특히 그물망 형태의 수로는 2000년이 넘는 변화와 발전에도 여전히 원활한 통행이 가능하다. 현재에도 교통과 운송, 홍수 방지와 관개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월하(月河)는 대운하의 지류 중 하나다. 달(月)처럼 굽이진 물길이 도시를 감싸고 있어 이런 명칭이 붙었다. 명(明)·청(清) 이후 월하 일대는 점차 번화한 시가지로 발전했다. 월하 물길을 따라 배를 타고 가다 보면 고풍스러운 다리, 좁은 골목, 낡은 민가와 낭붕(廊棚, 지붕이 덮인 회랑식 거리) 등이 눈에 들어온다. 옛 시에서 묘사한 전형적인 강남(江南) 수향(水鄉) 풍경이다. 강가 둔치에는 노인이 흔들의자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고, 이따금씩 물장구를 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 온다. 멀리 보이는 고층빌딩이 아담하고 소박한 동네를 둘러싸고 있어 마치 세상과 단절된 무릉도원처럼 느껴진다.
배에서 내려 굽이굽이 이어진 옛 거리를 걷다 보면 길을 따라 쭝쯔(粽子, 댓잎이나 연잎에 찹쌀 등을 넣어 쪄낸 음식)가게, 다과점, 장아찌가게 등 다양한 백년가게 라오쯔하오(老字號, 대대로 내려온 전통 브랜드나 가게)가 번성했던 과거를 말해준다. 길가에 자리한 카페, 뮤직 바, 다양한 종류의 아기자기한 소품점을 통해서 현대적 세련미도 느낄 수 있다. 거리 한쪽의 작은 노점에서 점원이 순백의 휘핑크림 위로 황금빛 국화 꽃잎을 뿌려주며 ‘무형문화유산 밀크티’를 소개하고 있었다. “밀크티에 올려진 건 자싱 퉁샹(桐鄉)시의 항백국(杭白菊)이다. 컵에는 꽃무늬 염색기법인 남인화포(藍印花布)가 인쇄돼 있다. 항백국의 가공기술과 남인화포 모두 자싱의 무형문화유산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인 밀크티와 수백 년을 이어온 문화유산의 ‘콜라보’다. 현대와 전통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정경이 도시 구석구석에서 펼쳐지고 있다.
자싱 쭝쯔 문화박물관에 전시된 노른자 육포(蛋黄肉) 쭝쯔의 모습이다. 사진/VCG
쭝쯔에 담긴 천년의 전통
‘쭝쯔’는 중국이 단오절(端午節) 때 먹는 전통 음식이다. 단오절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옛 거리의 쭝쯔 문화박물관과 쭝쯔를 파는 라오쯔하오 두 곳은 벌써부터 문전성시를 이뤘다.
고풍스러운 목재로 꾸며진 입구 위에 까만 바탕과 황색 글씨로 ‘전전라오라오(眞眞老老)’라 쓰인 간판이 걸려 있다. 오른쪽 처마 아래 흰 벽에는 행서체로 ‘粽(쭝)’자가 쓰여 있다. ‘전전라오라오 쭝쯔가게’는 자싱을 방문하는 외지 관광객들이 빠지지 않고 들르는 ‘필수 코스’ 중 하나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왼쪽 진열대에 갓 쪄내 실로 묶여 초록빛 광택이 반들반들한 쭝쯔가 쌓여 있다. 사오젠궈(邵建國, 66)는 분주히 움직이며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었다.
1939년, ‘자싱 쭝쯔의 아버지’라 불리는 펑창녠(馮昌年)은 자싱 구시가지에 ‘전전라오라오 허지우팡자이(合記五芳齋)’라는 쭝쯔가게를 차렸다. 이후 8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전전라오라오는 자싱을 대표하는 쭝쯔 브랜드로 성장했다. 사오 씨는 전전라오라오의 3대 계승자로, 현재 자싱 쭝쯔 문화 박물관 관장직을 맡고 있다.
“진지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정직하게 경영한다.” 사오 씨는 가게명인 전전라오라오(眞眞老老)의 뜻을 이렇게 풀이했다. 그는 자싱의 쭝쯔 문화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왜 자싱에서 쭝쯔가 널리 사랑받을까? 나는 이것이 자싱의 쌀 문화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자싱은 신석기 유적인 마자방(馬家浜, 마가병) 쌀 문화의 발상지다. 우리 조상들은 7000여 년 전부터 여기서 벼를 재배했다. 쌀이 있었으니 지금의 쭝쯔도 있게 된 것이다.” 자싱의 관할지인 퉁샹시 뤄자자오(羅家角) 유적과 난후(南湖)구의 마자방 유적에서 탄화된 벼 알갱이가 대량 발견됐는데 이는 현지인들이 7000여 년 전부터 인공적으로 벼를 재배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최초의 쭝쯔는 과거 농민들이 일을 나갈 때 가지고 다니던 건량(乾糧)인 ‘각서(角黍)’였다. 따라서 쭝쯔는 농경 문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싱은 지형이 평탄하고 수자원이 풍부해 농작물 생장에 적합한 천혜의 환경을 갖췄다. 삼국시대 오(吳)나라 임금 손권(孫權)도 <한서(漢書)>에서 ‘농사짓기 알맞은 기후가 되면 가화(嘉禾, 낟알이 많이 달린 벼 이삭)가 무성해진다(風雨時,嘉禾興)’라는 구절을 취해 자싱 일대를 ‘허싱(禾興)’이라 명명했고, 훗날 ‘자싱(嘉興)’이 됐다. 당(唐)나라에 이르러 자싱은 동남부 지역의 중요한 곡창지대가 됐다.
오늘날 자싱은 ‘저장성 북부의 곡창지대’라는 명성뿐 아니라 ‘쭝쯔의 고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곳의 연간 쭝쯔 생산량은 20억 개를 넘는다. 춘추전국시대 때부터 시작된 각서는 수천 년간 발전과 변천을 거듭해 오늘날 각양각색의 쭝쯔가 됐다. 전전라오라오 쭝쯔가게에서도 ‘푸루(腐乳, 삭힌 두부) 쭝쯔’, ‘메이간차이(梅干菜, 건조 채소 절임) 쭝쯔’, ‘옥수수 꿀대추 쭝쯔’ 등 수백 가지 맛의 쭝쯔를 판매하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젊은 층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아이스크림 같은 식감의 빙쭝(冰粽)도 출시됐다. 이 가게의 대표 메뉴는 ‘절인 노른자(鹹蛋黃) 쭝쯔’다. 소금에 절인 7개의 노른자와 다진 육포를 넣은 커다란 쭝쯔는 ‘드래건 볼’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쫀득하고 부드러운 찹쌀 사이, 사박사박 부서지는 노른자와 짭짤한 육포가 쭝쯔 잎 특유의 향과 만나 입안 가득 미식의 즐거움이 폭발한다.
격변의 물결 속에 띄운 역사의 목선
월하 옛 거리의 북쪽 부두에서 출발한 배 안에서 자싱 역사에 대한 방송이 흘러나온다. 설명을 들으며 점점 뒤로 멀어지는 수향의 풍경을 감상해 본다.
자싱은 예로부터 걸출한 인재들을 여럿 배출한 고장이다. 민간에는 ‘중국 문인의 절반은 저장성에서 나오고, 저장성 문인의 절반은 자싱에서 나온다’라는 말이 있다. 마오둔(茅盾), 펑쯔카이(豐子愷), 쉬즈모(徐志摩), 진융(金庸,김용) 등 근현대 중국 문단의 주요 인물이 모두 자싱 출신이다. 중국에는 ‘곳간이 차면 예의를 알게 된다(倉廩實而知禮節)’는 말이 있다. 뛰어난 자연조건과 수운의 발달, 풍부한 식량은 자싱 주민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했고 이는 곧 교육 수준 향상과 정신적 가치 추구로 이어졌다. 1920년대 당시 중국의 지식인들은 자싱 난후(南湖)에 띄운 붉은 나룻배에 모여 중국 혁명의 힘찬 항해의 돛을 올렸다.
배를 타고 약 40여 분 정도 가면 난후 풍경구 입구에 도착한다. 난후는 원래 바닷물에 잠긴 지역이었으나 점점 세월이 흐르며 진흙과 모래로 인해 저지대가 형성됐고 이후 운하의 각 지류가 유입되면서 호수가 됐다.
배에서 내려 잠시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눈앞에 광활한 풍경이 펼쳐졌다. 넓고 잔잔한 호수 면이 햇살 아래 반짝이고, 저 멀리 녹색으로 뒤덮인 섬 후신다오(湖心島)가 아른하다. 후신다오 호숫가에 고풍스러운 목재 화방(畫舫, 아름답게 장식된 유람선) 한 척이 정박돼 있었다. 1921년 7월,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는 난후 위 한 화방에서 마지막 회의를 마치고 중국공산당의 공식 창당을 선언했다. 이 회의는 중국의 근대사에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