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  >> 사회·문화 >> 본문

중국과 독일 사이에서: 그래픽 디자이너 허젠핑의 독특한 여정


2024-10-15      

동양식 여백 개념을 차용한 허젠핑의 포스터 디자인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포스터 공모전으로 폴란드 바르샤바 국제 포스터 비엔날레가 있다. 이 비엔날레는 세계 각지의 실력 있는 그래픽디자이너들이 포스터로 경합을 이루는 장으로, 수상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는 공모전이다. 보통 이 비엔날레에서는 서양이나 일본의 디자이너들이 주로 이 상을 휩쓸곤 했는데, 2012년 드디어 중국출신의 수상자가 처음으로 나왔다. 디자이너의 이름은 허젠핑(何見平), 중국 저장(浙江)성 푸양(富陽)시 출신으로 항저우(杭州) 중국미술학원 평면디자인과를 졸업했다. 허젠핑의 이력은 다소 독특하다. 현재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베를린으로 유학을 가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고 역사학과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하지만 바르샤바 국제 포스터 비엔날레의 심사위원들은 그의 포스터가 다른 유럽인들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다고 판단했고 그에게 금상이라는 의미 있는 상을 수여했다.


그 무엇을 살펴보기에 앞서, 다음 허젠핑의 개인전 포스터를 살펴보자. 슬로베니아의 NLB갤러리에서 9월 20일부터 11월 8일까지 허젠핑의 개인전이 열린다는 뜻인데 모든 글자들의 중간을 마치 먹으로 휘갈긴 것처럼 뭉개어 놓았다. 분명 내용이나 글씨체나 모두 서양식 폰트인데 먹의 느낌 때문에 서예작품과도 같은 인상을 준다. 이런 영어 활자와 먹의 경계는 In between(사이에서)이라는 문구와도 일치한다.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독일에서 공부하고 활동하고 있는, 중국과 독일 ‘사이에’ 있는 스스로의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그의 이런 ‘사이에’ 있는 디자인 작업은 계속된다. 산수화와 알파벳을 절묘하게 사이에 집어넣는가 하면, 올림픽의 오륜기를 만리장성 속에 집어넣기도 한다. 기하학적이고 단단한 영어 폰트가 산수화의 부드러운 수묵과 대비를 이루면서도 한데 뒤섞여 어우러지는 모습이다.


바르샤바 국제 포스터 비엔날레에서 금상을 수상한 허젠핑의 작품


이런 ‘사이에’ 있는 작업들은 사실 그의 태생에서 비롯한다. 그는 독일에서 정통 서양디자인을 배웠지만 중국에서는 어린 시절 산수화를 좋아하고 서예가를 꿈꾸던 학생이었다. 그러나 당시 서예과의 입시 경쟁률이 매우 치열해 일찍이 서예를 포기하고 당시 상대적으로 쉽게 입학할 수 있는 디자인과를 지원해 들어갔다. 디자인과는 꽤 적성에 맞았지만 그의 지식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당시 중국의 디자인 교육 인프라는 열악했다. 그래서 과감히 유학을 감행하며 독일로 떠난다.


그가 처음 독일에 정착했을 때 적응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동안 그가 배웠던 디자인 교육과 독일의 교육은 완전히 달랐고 현대 서양의 디자인과 회화들은 그에게 강한 충격을 줬다. 그는 몇 년간 중국에서 배웠던 것을 완전히 잊고 서양인이 되어 서양 디자이너처럼 작업해보려 했으나 그는 애초부터 그들과 자신의 뿌리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나는 이렇게 애써 서양의 디자인을 추구하는 걸까? 이왕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내가 나고 자란 곳의 소재를 다시 꺼내본다면 더 자연스러운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후로 그의 작업은 독일 디자인에 기반하지만 어딘가 동양미가 흐르는 작업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블랙앤화이트를 쓰더라도 그는 마치 수묵화처럼 흑백의 톤을 구성했고 붓글씨를 첨부했다. 그의 작품은 완벽하게 흑백으로 나뉘지 않고 동양화처럼 회색의 중간 톤으로 이뤄져 있으며 선과 선 사이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다른 중국의 그래픽디자이너들처럼 용이나 빨간색 등 직접적인 중국의 요소를 집어넣지 않았지만 뉘앙스만으로도 중국적 느낌을 전달한다.


올림픽 오륜기를 만리장성 속에 집어넣어 부드러운 수묵화 느낌을 자아낸다.


이 미학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 바로 모교인 항저우 미술학원의 전시 포스터 작업이다. 그는 다른 표현을 모두 생략하고 예술(藝術)을 한자로 써서 내보냈다. 그것도 제대로 똑 떨어진 형태가 아니라 경계가 불분명하게 희끄무레하다. 겉보기에는 무성의해 보이는 포스터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 포스터는 동양미학의 정수다. 노자(老子)의 <도덕경>에 따르면 “무명은 천지의 시작이고, 유명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항상 무욕으로써 그 무의 오묘함을 보고, 항상 유욕으로써 그 유의 왕래를 본다. 이 무와 유는 동시에 나왔지만 그 이름을 달리한다. 유와 무를 동시에 말하여 현묘하다고 한다. 현묘하고 현묘하도다. 그것은 온갖 묘리가 출몰하는 문이다. (無名, 萬物之始有名, 萬物之母. 故常無, 欲以觀其妙. 常有, 欲以觀其徼.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眾妙之門.)” 즉, 있음과 없음은 결국 하나이며 이 둘을 구분 짓는 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노자에 따르면 세상은 정확히 흑과 백으로 나눠지지 않고 흑과 백 사이의 무한한 회색들로 이루어져 있다. 허젠핑 역시 이 작품을 통해 예술이란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흑백의 원리가 아니라 경계 없이 모든 변화와 다양성을 포용하는 작업임을 얘기하고 있다. 그가 작업하는 다른 포스터들에서도 이렇게 허물어진 경계의 미학을 추구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그의 작품을 살펴보면 마치 비누거품같은 초현실적이고 현대적인 소재를 사용했지만 본질적으로 한자를 형상화한 것이다. 비누거품은 마치 산수화의 구름 같고 주변의 재료들은 마치 산수화처럼 유연하게 흐른다. 이처럼 지극히 현대적인 재료로 전통의 미감을 재현한 그의 작품은 동서양의 융합된 그의 성장과정과 디자인 세계관을 반영한다.


서양에 살고 있는 디자이너가 가장 동양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어쩌면 그는 일찍이 서양에서 활동을 했기 때문에 스스로 끊임없이 서양과 동양의 차이를 묻고 그의 작업에 녹여내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에서 독일에서 살고 있는 지리적 거리감 덕분에 나의 땅, 나의 모국을 더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고 얘기한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항저우와 독일을 오가며 디자이너, 기획자, 교수, 칼럼 작가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과 영역을 경계 없이 넘나드는 허젠핑은 지극히 세계적이고도 중국적인 디자이너다. 


글|황윤정(한국) 

사진 | 허젠핑 제공

240

< >
lianghui-002.jpg

중추절 ‘월병’ 이야기

한국에서 추석에 송편을 먹듯, 중국의 중추절(中秋節)엔 웨빙(月餅, 월병)을 먹는다.

읽기 원문>>

‘전통다과’ K-디저트의 우아한 변신

추석이 되면 중국에서는 웨빙(月餅, 월병)을 먹고 한국에서는 ‘송편’을 먹는 풍습이 있다.

읽기 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