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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터전인 민족


2024-10-15      

징족과 관광객들이 요란하게 터지는 폭죽 소리 속에서 하절을 즐기고 있다.


중국에서 국경과 해안을 모두 끼고 있는 연안 도시가 두 곳 뿐인데 광시(廣西) 좡(壯)족 자치구 남쪽에 위치한 팡청강시는 그중 하나다. 최남단의 둥싱(東興)시(팡청강시가 대리 관할하는 현급 시) 동남쪽은 베이부(北部)만, 남서쪽은 베트남과 접해 있다. 징족은 둥싱시의 완웨이(萬尾)도, 우터우(巫頭)도, 산신(山心)도 3개 섬에 모여 산다. 16세기 초 징족의 조상이 이곳으로 이주해 대대로 어업을 하면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이 3개 섬을 사람들은 ‘징족 삼도(京族三島)’라고 부른다.


하절에 사람들이 신좌를 들고 신을 맞이하러 가고 있다.


신에게 바치는 노래

이른 아침, 완웨이도. 가느다란 대나무 장대에 걸린 붉은 폭죽이 타다닥 터지는 가운데 징족은 일 년 중 가장 성대한 명절인 하절(哈節)을 맞이했다.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징족의 명절 행사가 열리는 하팅(哈亭) 밖에서는 형형색색의 우산이 알록달록한 바다를 이뤘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의식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장로들이 조상에 향을 올리고 제사를 마치면 명절 의상을 차려 입은 사람들이 생화와 붉은 비단으로 장식된 신좌(神座)를 들고 신을 맞으러 바닷가로 향했다.


길가에서 원뿔형 삿갓을 쓰고 황색 치파오(旗袍)식 징족 장삼(長衫)을 입은 할머니가 “징족 언어로 ‘하(哈)’는 ‘노래(歌)’라는 뜻이고 ‘창하절(唱哈節)’이라고도 하는 하절은 징족이 신들을 모시고 노래를 올리는 명절”이라고 소개한다.


수백 년 전, 베이부만 기슭 바이룽(白龍)령 아래에 사는 거대한 지네 정령이 바람을 일으켜 풍랑을 만들어 배를 뒤집고 사람을 잡아 먹었다고 한다. 한 신선이 거지로 변장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면서 뜨겁게 익힌 호박을 지네 정령의 입에 넣었다. 뜨거움에 몸부림치던 지네 정령의 몸이 3단으로 끊어져 각각 완웨이, 우터우, 산신 3개 섬이 됐고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그제야 평안히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징족 사람들은 지네를 제압한 신선을 ‘진해대왕(鎮海大王)’으로 숭배했다. 그를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고 해마다 하절이 되면 해안가로 나가 ‘진해대왕’을 맞이한다.


신을 맞이하는 행렬이 북과 징을 치면서 완웨이도의 진탄(金灘)으로 향했다. 모래사장에는 독특한 모양의 악기가 줄지어 놓여 있고 다채로운 옷자락이 바닷바람에 펄럭이는 징족 소녀들이 한 손으로 악기 왼쪽에 있는 음역 조절대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한 줄의 현을 치며 징족의 민요 <과교풍취(過橋風吹)>를 노래한다.


“다리를 건너다 큰 바람을 만났네. 바람이 부네, 바람이 불어. 바람에 삿갓이 하늘로 날아오르네.”


하절에 징족 사람들이 화려한 명절 복장을 갖춰 입고 독현금을 연주하고 있다.

 


한 줄로 연주하는 음악

한 줄만 있는 이 현악기는 징족 고유의 악기 ‘독현금(獨弦琴)’이다. 단 한 줄의 현과 음역 조절대 하나로 6개 음역에 3개 옥타브를 연주할 수 있다. 이미 8세기 당(唐) 나라 때부터 대나무로 만든 독현금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 오래된 악기는 징족 삼도 일대에서 수백 년 동안 전해졌지만 20세기 말 한 때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독현금은 자치구급 무형문화유산 계승자인 징족 여성 자오샤(趙霞)는 어릴 때부터 징족 삼도에서 살았다. 대부분 마을 사람들은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해 날마다 해가 뜨기도 전에 부두에 나가 하루 종일 바쁘게 일했다. 저녁이 되면 주민들은 독현금 연주를 들으며 하루의 피로를 달래는 것이 최고의 휴식이었다. 그러나 징족의 독현금은 악보가 없어 오로지 노인의 구전으로 전해졌다. 젊은이들이 하나둘 마을을 떠나면서 독현금의 대를 이을 사람이 없는 어려움에 직면했다.


자오샤는 어릴 때 잠깐 독현금을 배웠지만 본업에 신경을 쓰느라 연주 솜씨는 날로 서툴러졌다. 어느 날 그녀는 뜻밖의 초청을 받았다. 한 방송국에서 징족 독현금 연주를 방송하려고 하는데 징족 여성 3명의 합주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공연에 참여할 현지 젊은 여성을 모으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자오샤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연주에 참여한 이후 확고한 결심을 하게 됐다. 징족의 전통 악기가 사라지는 것을 막으려면 반드시 독현금을 잘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오샤는 징족 대가에게 독현금을 사사했다. 장장 11년간의 헌신적인 수련 끝에 현지에서 유명한 독현금 연주자가 됐다.


“독현금은 고쟁(古箏)이나 얼후(二胡)처럼 유명하지 않아서 독현금을 배우고 무형문화유산을 계승하게 하려면 먼저 사람들에게 알려야 했다.”


더 많은 젊은이들에게 독현금을 알리기 위해 자오샤는 더우인(抖音) 계정을 개설하고 독현금 연주 숏폼을 업로드했다. 라이브 방송에서 독현금으로 최신 유행노래를 연주하기도 했다. 2020년 자오샤의 한 영상이 10만 개에 가까운 ‘좋아요’를 받았고, 그날 저녁 라이브 방송에 수천 명의 누리꾼들이 몰려와 줄이 하나인 악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 라이브 방송을 본 시청자 중 많은 이들이 그녀에게 독현금을 배우기 위해 둥싱시로 찾아왔다. 자오샤는 오프라인에 독현금 무형 문화유산 전승센터 두 개 반을 개설했고 매일 100여 명의 학생이 수강한다. 그의 더우인 계정은 현재 5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하절 때 완웨이도 진탄에서 ‘천인(千人) 독현금’ 공연이 개최됐다. 오랜 역사를 품은 아름다운 가락이 1000명 연주자의 손가락에서 흘러나와 다시 한 번 광활한 바다 상공에 울려 퍼졌다.



비가 그친 아침, 징족 어민이 가오차오를 올라 타고 새우를 잡고 있다.


가오차오를 밟으며 고기를 잡다

하절 때 관광객은 독현금 연주는 물론 징족의 전통 ‘가오차오(高蹺, 장대다리) 고기잡이’도 볼 수 있다.


‘가오차오 고기잡이’를 하는 가오아밍(高阿明)은 까만 피부에 몸매가 날렵하다. 그와 동료들은 가오차오를 올라 타고 특수 제작한 특대형 삼각 그물을 들었다. 거센 파도가 치는 바다를 누비며 숨어 있는 물고기와 새우를 잡는다.


안전을 위해 종아리에 장대를 단단히 묶어야 한다. 초심자는 다리 통증 때문에 제대로 서지도 걷지도 못하지만 가오아밍의 걸음걸이는 절도있고 안정적이다. 들고 있는 그물망이 물에 젖으면 약 35kg 정도로 무거워지는 데다 바람이 거세고 높은 파도에 맞서 걸으면 체력이 많이 소모된다. 가오아밍은 세찬 파도에 밀려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난다. 수백 년 동안 그의 조상들은 이런 방식으로 한 세대 한 세대 징족을 먹여 살려왔다.


“배가 없는 시대에 바닷물이 정수리까지 차오르면 고기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가오차오를 이용해 키를 높이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가오아밍은 다리에 연결한 1m 길이의 가오차오를 가리키며 “이 방법이 대대로 전해져 징족 집안의 가장은 모두 가오차오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완웨이도의 진탄은 길이가 13km에 달한다. 이 일대의 물고기와 새우는 1m 정도의 얕은 바다에서 활동해 가오차오 고기잡이 방식은 어민의 어획량 증대에 도움이 된다. 많이 잡히면 가오아밍은 생선과 새우를 시장에 내다 팔고 적게 잡히면 현장에서 바로 불을 피워 동료들과 함께 조리해 먹는다.


신선한 식재료는 종종 단순한 조리법으만으로도 그 맛을 충분히 살릴 수 있다. 둥싱 보리새우는 현지 특산물로 찌면 식재료의 신선함이 그대로 유지돼 한 입 베어물면 쫄깃한 식감과 진한 바다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가오아밍과 동료들은 신선한 해산물을 한 장 한 장 둥글게 생긴 펑추이빙(風吹餅)과 함께 조금씩 맛본다. 펑추이빙은 바람에 날릴 듯 종이처럼 얇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펑추이빙은 바삭해서 한 입 깨물면 바로 부서지고 입 안에 들어가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려 다 먹은 뒤 입 안에 은은한 참깨 향이 맴돈다.


최근 전통 가오차오 고기잡이가 편리한 현대적 어획 방식으로 점점 대체되고 있다. 징족 삼도에도 가오차오 고기잡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줄었다. “우리 조상들이 가족을 부양한 생계 수단이었던 가오차오 고기잡이의 맥이 끊어지게 할 수 없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가오아밍은 제자 양성에 집중했다. 다행히 관광업 발전으로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가오차오 고기잡이가 현지의 특색 관광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하절 등 명절 행사에서 가오아밍은 제자들과 가오차오 고기잡이를 선보이고 여행 시즌에는 관광객을 데리고 바닷가로 나가 직접 체험토록 했다. “전국 각지 방송국에서 우리를 취재해 갔다.”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가오아밍의 눈에 다시 희망의 빛과 열정이 타올랐다. 


글 | 차이멍야오(蔡夢瑤) 

사진 | V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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