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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 교류와 학습으로 이루어진 중화 문명의 융성


2022-12-27      글|왕저(王哲)

2021년 9월 14일, 중국국가박물관에서 40점에 달하는 상주시대의 대표적인 청동예기가 관객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텅옌옌(滕言妍)


인류 문명은 교류 속에서 서로 배우고 본받으며 발전한다. 신석기시대부터 유라시아대륙에는 옥석 가공, 야금 단조, 농경 목축 등 기술을 전파하는 통로가 형성됐다. 중·서아시아, 나아가 더 먼 지역의 문명이 이를 통해 중국에 유입돼 중원지역의 본토 문명과 융합하면서 찬란한 중화 문명을 창조했다. 중화 문명은 동쪽과 남쪽으로 확산을 거듭해 동아시아 문명 발전을 촉진했다.


야금술 유입과 발전

고고학 발견과 역사 문헌 기록에 따르면, 중국의 발달한 청동 주조 기술은 초기에 유라시아초원 동쪽 유목부족의 청동문화의 영향을 받아 본토 기술이 혁신을 이루게 됐다.


천젠리(陳建立) 베이징(北京)대학 고고문박학원(考古文博學院) 교수는 야동술(冶銅術)은 서아시아지역에서 발명됐고 지금으로부터 약 7000~8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국 북서지역에서 출토된 초기 청동기는 모두 작은 청동 공구, 병기, 장식품으로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의 청동기 형태, 종류와 매우 비슷하다. 야금술은 중원 지역의 1000℃ 고온 제련 기술과 결합해 하상주(夏商周) 시대에 고도로 발달하고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청동 용기 주조기술로 발전했다.


천젠리 교수는 청동 제련기술은 중원지역에서 단순한 주조기술에서 괴범법(塊範法) 주조기술로 창조적인 전환을 이뤄 독특한 특색을 지닌 도범(陶範) 주조기술 체계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서양이 청동을 병기와 생산 도구에 사용한 것과 달리 중국은 상주(商周)시대에 모양이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공예가 복잡하고 성능이 좋은 청동 예기(禮器)를 대량 생산해 찬란한 청동 예기 문명을 형성했다. 이후 중국의 청동 용기 주조기술은 조선반도(한반도)와 일본 열도로 전파돼 동북아지역의 청동시대를 열었다. 또한 쓰촨(四川)지역의 싼싱두이(三星堆)를 거쳐 동남아시아로 전파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 밖에 약 4500년 전 서아시아지역에서 철기가 출현했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발견된 최초의 철기는 기원전 1000년 전 것이고 중앙아시아에 가까워질수록 철기가 빨리 나타난 것으로 보아 초기 야철기술도 서아시아에서 유입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서아시아의 괴(塊) 제철기술은 주로 저온에서 제철하고 단조해 형태를 만들어 효율이 낮았다. 춘추시대 초·중기 중원지역은 제철 온도를 높여 액체 형태의 철을 만들어 주조해 단조기술을 생철 제련 및 주조 기술로 전환했고, 생철로 제강을 해서 생산 효율을 크게 높였다.


“생철기술 체계는 중국 중원지역 특유의 발명으로 세계 야금사에서 독보적이다. 생철기술은 주변지역으로 전파돼 동북아 등 전파된 지역의 사회 발전에 중요한 작용을 일으켰다.” 천젠리의 말이다.


농작물, ‘서로를 향해 달려가다’

2003년, 베이징 둥후린(東胡林) 유적에서 약 1만년 전의 조와 기장이 발견됐다. 이는 전 세계에서 현재까지 발견된 최초의 재배 조와 기장으로 여겨진다. 이 발견으로 조와 기장 인공 재배기술이 중국 화북지역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밝혀졌고 고고학에서 매우 중요한 물적 증거를 제공했다.


중국이 발명한 조와 기장 농경기술은 기원전 6500년 후 계속 외부에 전파됐고, 푸젠(福建)과 타이완(臺灣)을 거쳐 동남아시아로 전파됐다. 벼농사 기술은 조금 늦은 시기에 마찬가지로 푸젠, 저장(浙江), 타이완을 거쳐 태평양 남서지역까지 전파됐다. 농경기술과 비단 생산기술은 산둥(山東)반도와 랴오둥(遼東)반도에서 조선반도와 일본 열도로 전파됐고 다시 유라시아초원에서 서아시아와 유럽으로 전파됐다.


밀은 서아시아지역의 농작물로 약 5000~4500년 전 간쑤(甘肅)성 칭하이(青海) 동쪽지역의 마자야오(馬家窯)문화 유적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 황허(黃河) 중·하류 지역의 4500~4000년 전 유적에서 소량 발견됐다. 3500년 전후인 상나라 전기 황허 중류지역에서 밀이 눈에 띄게 증가해 북쪽지역의 주요 농작물 중 하나가 됐다. 이 밖에 칭짱(靑藏)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쌀보리는 근동지역에서 중국으로 유입된 보리의 한 종류다.


황허 중류지역에서 출토된 황소와 면양 뼈에서 서아시아지역이 기원인 황소와 면양 DNA가 발견된 것으로 봤을 때 이들 가축이 서아시아지역에서 유입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300년 전후 가마(家馬)와 마차도 유라시아초원을 거쳐 상나라로 유입됐다.


외래 농목기술의 유입으로 중원지역의 농작물과 가축 종류가 풍부해졌다. 황허 유역에 조, 기장, 벼, 밀, 대두로 구성된 오곡 농업 체계와 돼지, 개, 소, 양, 말 위주의 가축 사육 시스템이 형성돼 중국의 농경문화가 싹텄다.


상호 교류와 학습의 역사 기억

다이샹밍(戴向明) 중국국가박물관 고고원 원장은 중국의 유구하고 찬란한 옥(玉) 문화도 초기 문명의 상호 교류와 학습의 역사 기억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옥기는 중화 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8000여 년 전, 중국인은 ‘옥기 시대’를 열었다. 신석기시대의 훙산(紅山)문화, 링자탄(淩家灘)문화, 량주(良渚)문화, 스자허(石家河)문화에서 옥기가 대량 발견됐다. 그중 일부 원자재는 서역에서 왔다. 중화 문명의 예법과 예식을 반영한 아장(牙璋)과 옥벽(玉璧) 등은 하상(夏商)시대에 남서의 싼싱두이-진사(金沙)와 화남지역을 거쳐 동남아시아로 전파됐다.


유리는 서아시아지역에서 처음 발명됐다. 중국에서는 춘추시대 말기 귀족 무덤에서 처음 발견됐다. 발견된 유리의 성분은 소다석회 유리로,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의 무역품으로 중국 중원지역에 수입됐다. 전국시대 중·말기 중국은 서아시아의 것과 외관이 비슷하지만 성분은 전혀 다른 납 바륨 유리구슬을 제조할 수 있었다.


“진나라 이전 중국 비단은 서역은 물론 서아시아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고 지중해 연안까지 팔리기도 했다.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지역의 같은 시기 귀족 무덤에서 중국산 아름다운 비단을 많이 볼 수 있다.” 다이샹밍의 말이다.


왕웨이(王巍) 중국사회과학원 역사학부 주임, 연구원은 서로 다른 문명 간의 상호 교류와 학습은 인류 문명 발전을 촉진하는 동력이라고 말했다. 중화 문명은 다른 문명과의 교류 속에서 주변지역의 선진 문화 요소를 꾸준히 흡수하고 배웠으며, 이것에 혁신을 더해 활력이 충만하고 왕성하게 발전하게 됐다. 이 또한 중화 문명이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질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천젠리 교수도 외래 문명이 중국에 유입되면 중화 민족은 충분한 창조력으로 그것에 새로운 힘을 부여해 ‘내가 사용하고 세계에 보답했다’고 말했다. 이것이 중화 문명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다.


글|왕저(王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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