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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형 베이징 한국인회 부회장, 중국의 저탄소 시장을 겨냥하다


2022-10-10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고, 다정한 말투로 아내를 ‘시푸얼(媳婦兒, 각시)’이라고 부르며 여러 중국 친한 친구를 두는 한 사람이 있다. 잘 알지 못한다면 그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믿기 힘들 것이다. 친절하고 입담 좋은 ‘중국통’ 김익형 대표는 사실 한국 사람이다. 중문과 출신으로 중국에 온지도 27년이나 됐다. 그는 수년 간 창업의 열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에서 도전을 계속해 왔다.


‘탄소 배출 피크’와 ‘탄소 중립’이 세계적인 화제가 됨에 따라 김익형 대표는 혜안을 가지고 중국의 저탄소 친환경 시장에 눈을 돌렸다. 그에게 있어 저탄소 발전은 도전이자 더 나아가 기회다. 2021년 말, 친구의 소개로 베이징취안신저탄소·친환경과학기술유한공사(詮新低碳环保科技有限公司) 대표를 맡게 됐다. 회사에서 개발한 탄소포집 제품은 1년도 안 되어 중국 서부지역 발전소 테스트에 투입됐다. 그는 “일단 테스트를 통과하면 우리 기술이 광범위하게 응용될 것이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2022년 3월, 글로벌혁신센터(KIC 중국)에서 주최한 2022년 KIC 중국창업대회가 베이징에서 열린 가운데 베이징취안신저탄소·친환경과학기술유한공사는 동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김익형 대표가 회사 제품을 소개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KIC 중국 제공


중문학과 학생에서 친환경기업 대표로

1988년, 김익형 대표는 한국 국민대학교 중문과에 입학했다. 당시 중한 양국은 수교 전이라 한국 국민들에게 있어 중국은 아직 낯선 국가였다. “그 시대 한국 대학생 중 중문학 전공은 매우 적었다. 나 역시 중국에 대해 이해한 것은 별로 없었지만 한중 양국이 수교하게 되면 반드시 많은 교류와 협력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예상대로 1992년 중한 수교 이후 양국 간 협력은 급속도로 광범위하게 진전됐다. 언어적 장점 덕에 김익형 대표는 1995년 상하이(上海) 주재 한국영사관에 파견됐다. 당시 양국의 경제, 문화 교류를 촉진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는 “한중 중소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을 주로 담당했고, 당시 큰 규모의 한중 교류 행사 개최에도 몇 차례 참여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영사관에서 2년 간 근무하며 중국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 김익형 대표는 중국이 ‘황금 시장’이라는 것을 절절히 체감하며 중국 사업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익형 대표는 전공 선택에 선견지명이 있었을 뿐 아니라 사업 과정 속에서도 시대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기회를 선점했다. 수년 간 중국에서 가구 공장을 운영하고 한국 화장품을 판매하는 등 트렌드를 장악하여 성과를 냈다. 2021년 초 지인의 소개로 저탄소 친환경 업계에 뛰어든 그는 날카로운 감각으로 놓칠 수 없는 기회라는 것을 감지했다. “중국에 친한 친구 두 명이 있는데 마침 환경 분야 전문가라서 의견을 구했다. 내가 저탄소 제품 사업을 하는 것에 매우 동의하며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전문가의 조언을 받은 후에는 더 강한 자신감이 생겼다.


2021년 말 베이징취안신저탄소·친환경과학기술유한공사가 정식 설립되고 그는 회사 대표가 되었다. “저탄소와 오염물질 배출 감축은 내게 있어 단순한 일이 아니라 전 인류의 복지와 관련된 사업이다. 적어도 10년은 더 일할 수 있고 나는 계속 이 길을 갈 것이라 생각한다.”


 

전망 밝은 중국 친환경 저탄소 시장

기후변화는 전세계가 직면한 공동의 도전이며, 이에 대응하는 것은 각국의 공동 책임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정부는 저탄소 경제 발전을 매우 중시하고 ‘쌍탄(双碳, 탄소 배출 피크 및 탄소 중립) 목표를 제시하였으며 일련의 저탄소 발전 관련 정책을 발표하고 사회 전체의 친환경 저탄소 전환 촉진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의 친환경 저탄소 발전 의지와 행동력에 대해 김익형 대표는 누구보다 가장 직관적인 소감을 밝혔다. “중국 각지의 정부와 기업은 저탄소 기술을 적극 개발·도입하고 있으며 충분한 자금과 강력한 정책도 친환경 발전을 뒷받침하고 있다. 큰 기업이든 작은 기업이든, 중국 기업이든 외국 기업이든 숙련된 저탄소 친환경 기술만 있다면 중국 시장에서의 발전 기회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50세가 넘은 김익형 대표는 아직도 꾸준히 공부한다. 수년 전부터 양국 협력 환경보호 프로젝트에 참여해 왔지만 저탄소 기술은 그에게 여전히 새로운 분야다. 뒤늦게 사업 방향을 전환한 그는 1년 만에 회사 핵심 제품의 원리와 응용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중국의 환경보호 정책과 국제 선진 기술에 대해서는 더욱 훤히 꿰뚫고 있다. “우리 회사의 주요 기술 제품은 화력발전소용 전처리 탈황기술 GTS와 이산화탄소 전환촉매제 KLC 기반 탄소포집·활용·저장 기술 CCUS다. GTS는 세계 최초 전처리 황산화물 저감기술로 기업의 탈황 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으며, KLC는 ‘세계 탄소포집 대회’에 본선에 오른 유일한 한국 특허기술로, 이산화탄소 감축량이 최대 94.7%에 달한다.”


김익형 대표는 제품 뿐 아니라 중국 시장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내비쳤다. “미래에 대한 계획 보다는 현재 닥친 일을 잘 하는 데 집중한다. 나는 중국의 저탄소 기술 시장을 매우 좋게 보고 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기술 제품을 잘 만드는 것이다. 기술이 잘 되어 있으면, 회사가 잘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김익형 대표(오른쪽에서 첫 번째)가 베이징의 한 골프장에서 친구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익형 대표 제공 


중국 떠날 수 없어

중국어로 중국과 연을 맺은 김익형 대표는 1995년 처음 중국 땅을 밟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27년을 중국에서 생활하고 근무했다.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들은 거의 모두 중국에서 일어났다. “내 아내는 중국 허베이(河北) 출신이다. 2001년 결혼해 그때부터 중국에 정착해 살아왔다.” 결혼 후 아내와 1남 1녀를 낳아 기르며 중국에 대한 김익형 대표의 감정은 점점 더 깊어졌다.


그는 엄격한 아빠가 아니다. “10년 넘도록 나와 아내는 아이들의 성적표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들의 결정에 개입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뭐든지 하고 싶다고 하면 지지하고, 나를 필요로 할 때는 반드시 그들 곁에 있을 것이다.” 말보다 행동으로 가르치라는 말이 있듯이, 자유롭게 성장한 아들딸은 이제 한중 이중언어에 유창할 뿐 아니라 일찌감치 인생의 목표를 분명히 정했다. 아들은 여러 명문대에 합격했고 딸은 골프의 꿈을 좇고 있다. 아이들의 성취에 그는 흐뭇하다.


지금은 아이들도 컸기 때문에 최근에는 더 많은 시간을 아내, 친구들과 보낼 수 있게 됐다. “아내와 같이 탁구를 치고 등산하는 것을 좋아한다. 주말에는 친구들과 함께 등산을 가기도 한다. 몇 년 동안 베이징의 거의 모든 산을 올랐다.”


줄곧 중한 교류 업무에 관심을 가져온 김익형 대표는 회사 경영 외에도 베이징 한국인회 부회장을 겸임하고 협회의 국제사무를 담당한다. 주중한국대사관이나 중국 지방정부와 각종 교류 행사를 개최하며 한중 간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일을 하고 있다.


인생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보낸 김익형 대표는 중국에 깊숙히 뿌리를 내리고 자리잡았다. “중국을 떠날 수도 없고 떠날 생각도 없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한국과 중국의 피가 흐르고, 나도 오래 전부터 스스로를 외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앞으로 퇴직 후에도 계속 중국에서 생활할 것이다.”  


글|왕윈웨(王雲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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