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11일, 카타르 도하에서 중국은 WTO 가입 의정서를 체결했다. 당시 중국대표단 단장 스광성(石廣生)이 의정서에 서명했다. 같은 해 12월 11일, 중국은 정식으로 WTO에 가입했다.사진/XINHUA
중국에게 올해는 매우 기념비적인 한 해다. 40년 전 중국은 개혁개방의 위대한 사업을 시작해 역사의 새로운 발전 단계로 진입했다.
40년 동안 거둔 주요 성과
개혁개방 정책 시행 이후 중국이 거둔 성과는 수없이 많다. 그중 가장 중요한 성과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제도 혁신 분야의 성과로, 가장 눈에 띄는 것으로 다섯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중국의 국가 상황에 맞으며 중국의 특색이 있는 사회주의 길을 찾았다. 중국은 수십 년 동안 지속적인 탐색을 통해 중국특색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구축하고 개선을 거듭해 경제 의 고속성장에 필요한 기본적인 제도를 마련했다.
둘째, 중국특색 사회주의가 신시대에 진입했다. 개혁에서 개혁의 전면 심화까지, 개방에서 전면 개방의 새로운 구도 마련까지, 중국의 개혁개방은 신시대에 진입했다. 신시대의 새로운 사명에 직면한 중국은 발전사의 새 장을 열었다.
셋째, 오랫 동안 지속된 도·농 이원화 구조가 기본적으로 깨지고, 도·농 통합의 기본적인 틀이 명확해졌으며, 완벽하지는 않지만 중요하고 획기적인 발전을 거뒀다.
넷째, 중국의 국가 상황에서 출발해 중국 특색이 있는 빈곤 탈출 제도를 마련하고 개선했으며 양호한 성과를 거뒀다. 지난 40년 동안 노력한 결과 8억에 가까운 중국의 빈곤인구가 절대빈곤에서 벗어났다. 빈곤 발생률은 개혁개방 정책 시행 초기 30% 이상에서 2017년 말 3%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 40년간 세계 빈곤퇴치에 있어 중국의 기여도는 70% 이상이었다.
다섯째, 도시화 제도 혁신에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었고, 새로운 형태의 도시화가 진전을 거뒀다. 중국의 도시화 수준은 1978년 18%에서 2017년 말 59% 수준으로 향상됐다. 농민공의 시민화도 안정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또한 도시의 공공서비스 수준과 능력, 자원 이용 효율, 사회 관리 능력 등도 향상됐으며 저탄소 발전, 친환경 발전 등에서도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뒀다.
또 다른 하나는 경제력 분야의 성과로 이 중 다섯 개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첫째, 종합경제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1978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총량은 약 1500억 달러로 세계 11위였지만, 지금은 약 13조 달러로 세계 2위다. 1인당 평균 GDP는 1978년 약 150달러로 세계 121위였지만, 지금은 약 9500달러로 세계 70위 수준이다.
둘째, 제조업 부가가치가 세계 1위다. 1978년 중국의 제조업 부가가치는 600억 달러였지만, 지금은 4조 달러에 가깝다. 아직 강하지는 않지만 총량은 비교적 커졌다. 셋째, 상품무역 총액이 세계 1위다. 1978년 중국의 상품무역 총액은 210억 달러에 불과해 세계 24위였지만, 지난해 중국의 상품무역 총액은 4조 달러에 가까워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넷째, 외환보유액이 세계 1위다. 1978년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1억7000만 달러로 2억 달러에도 못 미쳐 세계 83위였다. 지난해 말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3조 달러를 넘어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다섯째, 식량 안보가 확보됐다. 개혁개방 초기에 중국의 식량 총생산량은 3억톤을 조금 넘어 1인당 평균 300kg 정도였다. 지난해 중국의 식량 총생산량은 6억톤을 넘어 1인당 평균 450kg 정도로 식량 안보가 기본적으로 확보됐다.
롄윈강(連雲港) 항구 사진/천젠( 陳建)
40년 개혁개방의 기본 경험
40년 동안 중국이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둔 이유는, 특히 위와 같은 중요한 성과를 거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개인적으로 다음 몇 가지 요소가 가장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첫째, 중국 국가 상황에 맞는 독특한 발전의 길을 선택했다. 중국은 서방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서방의 발전 모델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중국의 특색이 있는 사회주의 길을 선택했다. 이 길에는 매우 풍부한 내용이 있지만 핵심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 사회주의라는 방향을 견지했고 둘, 중국 특색을 겸비했다.
둘째, 시장을 지향한 개혁을 진행했다. 중국의 개혁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장을 지향한 개혁이었고, 시장 지향형 개혁 노선을 확고하게 걸었다. 이는 중국이 개혁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이다. 중국의 개혁은 시장을 지향한 개혁이고, 시장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시장 체제를 꾸준히 개선해나간 개혁이었다.
셋째, 세계에 융합되는 개방을 추진했다. 40년 동안 중국은 전세계에 융합되는 대외 개방을 선택했으며, 세계화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전세계 산업체계와 경제체계의 분업 협력에 깊이 관여했다. 현재까지 중국의 개방은 네 번의 큰 물결을 겪으며 추진되고 발전해 왔다. 첫 번째 물결은 1979년 시작한 ‘경제특구 건설’이라는 개방의 물결로, 주요 목적은 경제특구에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생산된 제품은 기본적으로 수출됐다. 이것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고, 다른 한편으론 수출을 촉진해 외화를 벌어들였다. 두 번째 큰 물결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2012년 정도까지 계속됐고, 이 시기 두 가지 중요한 과제를 완수했다. 첫째, 중국의 무역 및 투자 규칙을 세계와 맞물리도록 했다. 주로 서방 선진국의 규칙에 맞춰 세계가 중국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둘째, 중국은 전세계 산업사슬과 가치사슬을 구성하는 중요한 일원이 됐다. 세 번째 큰 물결은 자유무역시험지구를 대대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2013년 상하이(上海)에서 처음 시작해 2015년 광둥(廣東), 톈진(天津), 푸젠(福建)에서 시행했고, 2017년에는 저장(浙江), 허난(河南), 쓰촨(四川), 산시(陝西), 허베이(湖北), 충칭(重慶), 랴오닝(遼寧)으로 확대했다. 2018년에는 하이난(海南)에서도 시행됐다. 지금까지 중국은 12개 자유무역시험지구를 설립했다. 시험지구는 관세, 관리감독 등에서 최대한 좋은 경영환경을 마련해 국제 무역과 투자 발전을 촉진했다. 네 번째 물결은 2013년 가을 제시한 ‘일대일로(一帶一路)’ 이니셔티브가 이끈 주도적 개방기다. 중국은 자금과 실용기술, 전문 인재 등 분야에서 가진 장점을 충분히 이용해 세계 다른 나라와 함께 ‘일대일로’ 공동 건설을 통해 전세계가 인프라, 무역투자, 금융, 인문 등 분야에서 호연호통(互聯互通)을 이루고 최종적으로 인류운명공동체를 건설하기를 바랐다.
넷째, 경제 업무를 늘 우선순위에 놓았다. 1978년 이후 중국은 업무 중심을 정치에서 경제로 전환시켜 경제 업무가 늘 우선순위에 놓이게 했다. 각급 정부는 물론 사회 각계각층이 경제 업무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이것도 개혁개방이 성공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다섯째, 일련의 발전 계획을 제정하고 시행했다. 당의 업무는 계획적이고, 정부 업무도 계획적이며, 상하 곳곳의 업무도 계획적으로 진행돼 중국 특색이 있는 비교적 완전한 계획 체계와 제도가 마련됐다. 진지한 연구를 바탕으로 계획을 세우고 확실하게 시행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힘을 모아 결국 목표를 달성했다.
이 밖에 중국의 개혁개방이 비교적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방법 상의 부분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개혁이든 개방이든 모두 점진적인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넜다. 개혁개방 시행 초기에 개혁개방의 목표가 무엇인지, 목적지까지 어떻게 갈 것인지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모든 게 모호한 상황에서 그저 시험하는 수밖에 없었다. 시험하면서 개선해 점진적인 개혁개방 방법론이 점차 형성됐다. 이것이 바로 중국의 점진식 개혁개방 방법이다. 예를 들어 가족단위 농업생산책임제의 경우 안후이(安徽)성 샤오강(小崗)촌에서 우선 시험한 결과 식량 생산량이 크게 향상되자 정책 문건을 발표해 이 방법을 긍정했고, 이 시험 성과를 규범화·법제화시켰다. 농촌 개혁은 이렇게 진행됐다. 도시 개혁, 경제특구 설립, 자유무역시험지구 모두 이렇게 천천히 시험하고 점진적으로 진행했다.
중국의 40년 개혁개방이 거둔 중요한 경험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개혁개방의 깊이와 속도를 조절해야 하고, 발전 단계마다 개혁개방의 깊이와 속도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자유무역시험구가 중국에 등장한 것은 2013 년 상하이 ( 上海) 자유무역시험구가 정식 출범하면서부터다 . 사진/정셴장(鄭憲章)
개혁개방은 세계적인 의미가 있다
의심할 나위 없이 중국의 개혁개방은 세계적으로 의미가 크다. 중국은 개혁개방 때문에 경제력이 크게 증강됐다. 덕분에 중국은 세계에 더 많고 더 좋은 공공재와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능력을 갖추게 됐다. 이는 전세계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세계 평화 유지에 기여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은 세계 경제 성장에 연평균 30% 이상 공헌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중국은 ‘일대일로’ 이니셔티브 제창 후 5년 동안 세계 각지의 인프라 건설에 많은 자금을 투자했다. 타지키스탄에는 철도, 우즈베키스탄에는 터널, 파키스탄에는 발전소, 라오스에는 철도, 인도네시아와 태국에는 고속철, 미얀마와 스리랑카에는 항구, 벨라루스에는 공업단지, 아프리카에는 도로와 철도를 각각 건설했다. 이는 전세계 인프라 환경 개선과 보다 잘 연결된 세계 건설을 위한 직접적인 공헌이었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선전(深圳)에서 시작됐다. 현재 선전은 중국경제의 중심 도시이자 과학기술 혁신 중심, 지역 금융 중심, 상업무역 물류의 중심이 됐다. 사진 / 완취안(萬全)
다른 예로, 중국은 해마다 세계 각국에서 약 2조 위안(약 324조9400억원) 규모의 상품을, 약 5000억 달러의 서비스를 각각 수입하고 있다. 중국은 거대한 상품 및 무역 시장이 됐다. 최근 중국의 대외투자액은 도입 외자액 수준을 뛰어넘어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자본 순수출국이 됐다. 중국은 또한 새로 설립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브릭스 신개발은행(NDB)을 적극적으로 선도해 일부 저개발국가에 상당한 규모의 건설자금을 제공했다.
이 밖에 중국은 일부 국가와 국제 생산력 협력을 적극 진행했고, 여기에 적잖은 국가의 산업단지 건설이 더해져 일부 개도국의 공업화 추진, 일자리 창출, 세수 증가 등에서 기여했다.
중국은 경제력이 강화된 이후 글로벌 거버넌스에도 더 많은 기여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이미 5개 상임이사국 중 평화유지 행동에 참여한 인원 수가 제일 많은 나라가 됐다. 중국은 수요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에 적절하게 증자했다. 이들 모두 글로벌 거버넌스 체계를 보다 완벽하게 만드는데 유리해 현재의 글로벌 거버넌스 기관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했다.
다른 한 편으로 40년 개혁개방의 성공 경험, 특히 자국의 현실에서 출발해 자국의 상황에 맞는 발전의 길을 선택한 기본 경험, 빈곤 퇴치 경험, 국정운영 경험, 에너지 전환 경험 등은 세계 다른 나라, 특히 개도국에게 매우 유익한 경험과 참고가 될 것이다.
글|후비량(胡必亮), 베이징사범대학교 신흥시장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