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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훙쥔(榮宏君), ‘매화’로 ‘문화’를 잇다

2021-10-26

 

 

중국 현대 국화(國畫)유명화가, 중국 미술가협회와 중국 작가협회 정회원, 중화전국청년연합회(중청련) 상무위원회 위원, 베이징(北京) 도시전문대학 교수

 

화조화(花鳥畵) 주로 그리며 특히 매화에 대한 애정이 깊다. 대표적인 국화 작품으로는 <백매(白梅)>, <홍매도(紅梅圖)>, <춘풍십만가(春風十萬家)>, <춘성일수만신주(春聲一樹滿神州)> 등이 있다.

 

제주 월정사에서의 수묵화 작품 <태지철옥(苔枝綴玉)> 사진/룽훙쥔 본인제공

 

음력 섣달, 온갖 꽃잎이 지는 엄동설한 속에서도 매화는 가지 끝에 꿋꿋이 꽃을 피워 세상에 은은한 향을 내뿜는다. 예로부터 매화는 특유의 청아한 향기와 아름다운 자태는 물론 강건한 기개를 상징하여 수많은 문인과 묵객(墨客)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룽훙쥔도 그런 이들 가운데 하나다. 화가인 그는 평소 매화를 즐겨 그린다. 그의 붓끝에서 피어난 매화는 무언가 남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게다가 중청련 상무위원이기도 그는 매화를 국가 문화교류를 잇는 매개체로 삼기도 한다.

 

룽훙쥔과 월정사 지문법사 사진/룽훙쥔 본인제공

 

어린 시절 현실로

룽훙쥔은 1973 산둥(山東) 허쩌(菏澤)시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마을의 유명한 중의사였던 증조부와 할아버지는 평소 전통문화를 사랑하고 서예에도 조예가 깊었다. 어릴 때부터 선조들의 뛰어난 서법기예(書法技藝)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어르신들을 보며 자란 까닭에 그는 전통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7, 8 때부터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걸출한 솜씨를 뽐냈다. 그림 그리는 일도 좋아해 집안 여기저기에 낙서를 남기기 일쑤였다. 어린 시절부터 서예를 익히며 어깨너머 어른들의 수준 높은 서예를 경험한 덕인지 그의 마음 속에는 조금씩 예술의 씨앗이 싹텄고, 씨앗은 훗날 국화를 연마하는 과정에서 탄탄한 밑바탕이 되었다.

 

학창 시절 성적이 뛰어났던 그는 베이징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지만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등록금을 없어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때부터 그의 힘겨운 베이징 떠돌이 생활이 시작됐다. 한때 오래된 서적을 팔기도 하고 식당을 열어보기도 했지만 운영이 미숙했던 탓에 오래가지 못했다. 식당은 결국 접었지만 그때의 경험은 그가 다시 붓을 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그는 베이징대학교 뒤편의화가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젊은 화가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저마다의 꿈을 품은 화가들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이상은 룽훙쥔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룽훙쥔은 자신의 꿈도 다시 한번 이어가 보기로 결심하고 다시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제주 월정사에서의 수묵화 작품 <선창야월명(禪窗夜月明)> 사진/룽훙쥔 본인제공

 

제주 월정사에서의 수묵화 작품 <멱한향(覓寒香)> 사진/룽훙쥔 본인제공

 

매화와 맺은 깊은 인연

화가마을에서의 경험이 룽훙쥔이 다시금 붓을 들게 계기였다고 하면, 매화는 그가 자신만의 풍격을 형성하게 전환점이나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그는 스승을 사사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그림 세계를 탐색해 갔다. 그러던 1998 어느 , 우연한 계기로 전시회 주최를 위해 베이징을 방문한 국화의 대가 관산웨(關山月) 선생을 만났다. 관산웨는 그에게무릇 기술에는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그림 역시 그러하다라는 말을 남겼다. 선생의 조언을 들은 그는 매화에 전념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훌쩍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에게 국화가 갖는 매력이 무엇이냐고 묻자 곰곰이 생각하더니 자신의 견해를 털어놓았다. 국화는 형태가 얼마나 흡사한지를 따지기보다 감정을 사물에 기탁하는 치중한다. 사물을 음미함으로써 화가 내면의 정서를 발산하는 것이다. 가령 ··· 사군자 가운데 매화는 아름다운 성품을, 난초는 향기로운 미인을, 국화는 고상한 군자를, 대죽은 꼿꼿한 기개를 각각 상징한다. 여기에는 고대 문인과 묵객들 특유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 

 

그는 중에서도 유난히 매화를 아낀다. 매화를 그릴 자신의 감정 대부분을 매화에 쏟아붓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째서 유독 매화를 사랑하냐는 질문을 받자 그의 얼굴에 여러 감정이 떠올랐다. 그는원산지가 중국인 매화는 중국 본토에서 나고 자란 꽃이기 때문에 중국의 민족 정신을 이보다 나타내주는 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한다 말했다.

 

조상들은 매화를매화군자(梅花君子) 불렀다. 매화는 고결한 품성과 불굴의 정신을 상징하기 때문에 역대 왕조에서 매화에 흠뻑 취해 매화를 노래하고 그림으로 그려낸 문인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겨울에 피는 매화는 온갖 풍상(風霜) 겪고 봄이 되어서야 꽃을 활짝 피운다. 룽훙쥔 개인의 예술 노선과도 비슷한데다 중화민족이 수천년 온갖 어려움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번영의 시대를 이룬 발전 노선과도 맞물린다

 

룽훙쥔은 종종 매화로 스스로를 격려하곤 한다. 자신도 매화처럼 용감히 앞으로 나아가고 역경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불의에 당당히 맞서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다. 때문인지 그의 심상은 매화로써 가장 표현되곤 한다. 관산웨 선생이나 양주팔괴(揚州八怪) 매화의 대가들이 그린 작품을 계속해서 임모()하고 연구한 끝에 이제는 자신만의 매화 세계를 개척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풍격을 형성했다. 그의 매화 작품은 지금도 국내외 국화 애호가들과 수집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제주 월정사에서의 수묵화 작품 <야계매화개(野溪梅花開)> 사진/룽훙쥔 본인제공

 

매화로 잇는 · 문화교류

중청련 상무위원이기도 그는 예술문화교류 사업에 오랫동안 힘써 왔다. 그의 작품은 공식 국빈 선물로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피에르 라파랭 프랑스 총리 주요 인사에게 전해졌다

 

그는 한국 제주도와의 인연, 한국 원예 대가와의 교류를 통해 중한 문화교류에 일조하기도 했다. 언젠가 우연한 기회에 제주도 월정사를 방문한 그는 당시 수많은 매화가 심어진 절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게다가 특유의 독특한 기후와 자연환경이 어우러져 월정사 매화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절은 위쪽과 아래쪽에 각각 매화와 수선화를 심어 고즈넉한 전통의 미를 간직하고 있었다. 룽훙쥔은 월정사의 매화를 보고 보물을 발견한 기뻐한 것은 물론 여기서 수많은 창작 영감도 얻었다. 2012년에서 2013 사이 그는 수차례 제주도 월정사를 방문해 스케치를 하고 수많은 매화 작품을 완성했다.

 

제주도의 매화는 그의 화풍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제주의 독특한 풍속과 자연을 접해본 그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그와 마찬가지로 중한 문화교류에 힘쓰는생각하는 정원 성범영 원장을 알게 됐다. 전세계 최대, 한국 유일의 분재 전문 테마공원인생각하는 정원 한국 분재예술의 아름다움에 더해 상당 부분의 중국 문화도 반영되어 있었다

 

성범영 원장은 그와 마찬가지로 중국 전통문화를 몹시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2009생각하는 정원 처음 방문한 룽훙쥔은 정원의 세련미와 예스러움이 넘쳐나는 분재들의 자태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차례 생각하는 정원 찾아 천태만상의 식물로부터 풍부한 창작 영감을 받았고, 원장과 깊은 우정도 나눴다. 2012 그는 자신의 작품인 <백매>생각하는 정원 기증했다.

 

그의 작품은 제주도에서 열린 행사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20131 제주 중한우호교류축제이벤트 하나로서 ()제주 중국총영사관이 주최해 제주민속자연박물관에서 열린중국 서화 명가 초청전에는 그의 월정사 매화 스케치 작품 수십 점은 전시됐다. 그의 작품은 양국 예술 애호가들의 많은 눈길을 끌며 중한 우호문화교류축제의 화려한 일면을 장식했다. 당시 전시회는 그가 제주도에서 스케치한 작품을 대중에 선보이는 기회이면서 양국 예술교류 촉진에서 일익을 담당하는 역할을 했다. 2015 룽훙쥔은1 중국 청년엘리트대표단방한단으로 다시 한번 한국을 방문해 양국 우의 증진과 문화교류 확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매화를 오랫동안 연구해 그는 한국의 매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매화 문화는 역사가 매우 유구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의 매화는 위진·남북조 시기 이미 한국으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한국의 매화 문화도 중국처럼 연원이 무척이나 깊습니다. 매화는 한국에서 담백하고 고결함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한국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인들도 각종 장식물에 매화를 넣거나 매화를 찬미하는 여러 시가들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중국과 한국은 유사점이 매우 많습니다. 매화는 나라의 문화적 동질성을 형성해 양국 문화교류를 한층 촉진하는 기여할 있습니다.

 

앞으로 중한 교류에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제주도에 가서 계속 매화를 감상하고 그려내는 외에 한국의 일반 민가를 체험해 보고 중한 문화교류 행사에도 많이 참여하고 싶다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예술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부디 제가 그린 매화가 중국과 한국 우정의 다리 놓는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