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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약경홍과 중국의 전통 심미관


2022-05-13      

중국의 전통 미학은 상고시대의 열정적 표현에서 중세기 이래 함축적 표현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거치며 다르게 변화해왔다. 그리고 문학예술의 발전에 따라, 특히 이성(理性)에 대한 인식의 발전에 따라 함축적이고 완곡한 표현을 더욱 강조하게 되었다. 문학작품 중 인물 표현의 경우, 함축적이고 완곡한 단어를 이용하여 형태와 동작의 아름다움을 다채롭게 표현했다. 그 중 대표적인 단어가 바로 ‘편약경홍’이다. 즉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기러기의 날갯짓과 같은 우아한 몸짓이라는 뜻이다. 이는 비유법을 사용해 낙신(洛神)의 고결한 자태를 묘사한 것으로 후대 문학과 예술작품에 함축적이고 민첩하며 유연하고 아름다우며 유창한 문예 심미 풍격으로 존재했다.


‘편약경홍’과 <낙신부(洛神賦)>

‘편약경홍’은 본래 놀라 날아오르는 기러기처럼 경쾌하고 우아하며 민첩한 몸짓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삼국(三國)·위(魏)나라 조식(曹植)의 <낙신부>에 처음 등장한다. “(낙신의) 자태는 놀라 날아오르는 기러기와 같고, 부드럽기가 유영하는 용의 모습과도 같았다. 용모는 가을의 국화처럼 빛이 났으며, 풍채는 봄바람에 산들대는 소나무와 같았다. 보일듯 말듯한 것이 마치 옅은 구름에 가린 달과 같았으며, 회오리바람에 휘날리는 눈꽃처럼 하늘거렸다(其形也, 翩若驚鴻, 婉若遊龍. 榮曜秋菊, 華茂春松. 髣髴兮若輕雲之蔽月, 飄颻兮若流風之回雪).” <낙신부>는 조식이 황초(黃初) 3년(서기 222년) 위제(魏帝) 조비(曹丕)를 알현하고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는 길에 낙천(洛川)을 지나는데 송옥(宋玉)이 초왕(楚王)에게 신녀(神女)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에서 감명을 받아 <신녀부(神女賦)>를 본받아 창작한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낙신부>는 낙천에서 신녀를 만났다는 허구의 내용으로 신화인물인 ‘낙신’에 빗대어 세속적인 남녀 간의 정을 시적인 차원으로 완벽하게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다. 장페이헝(章培恒), 뤄위밍(駱玉明) 공저의 <중국문학사>에서는 <낙신부>에 대해 “남녀 주인공 간의 절절한 마음에 대한 묘사가 출중하다”면서 “작품의 품격이 고결하고 감정이 진실하여 상당히 높은 심미적 가치가 있으며, 신녀의 용모와 표정에 대한 묘사가 전례 없이 매우 자세하고 생동감이 넘친다”고 평가했다. 낙신의 ‘편약경홍’의 미는 원초적인 영묘한 아름다움으로 정치적 교화를 초월한, 순수한 심미적 경지를 보여준다.


이후 ‘편약경홍’은 아름다운 여인의 우아하고 신묘한 자태를 표현하는데 사용되어왔다. 송(宋)나라 시인 매요신(梅堯臣)은 “봄나들이 나간 꽃밭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녀를 남쪽 골목 끝에서 다시 보았는데 마치 ‘편약경홍’ 처럼 지나가더라(期我以踏靑, 花間倘相遇. 果然南陌頭, 翩若驚鴻圖)”의 시구로 나들이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의 청초한 자태를 표현하였다. 청(淸)나라 증박(曾朴)은 <얼해화(孼海花)>에서 민첩하고도 아름다운 여인의 동작을 이렇게 묘사했다. “위아래로 들썩이는 밧줄 위를 걷는 그 모습이 유연하기가 부드럽게 솟구치는 용과 같으며, 힘차게 날갯짓하는 기러기(편약경홍) 같았다.” 이 밖에도 ‘편약경홍’은 ‘경운폐월(輕雲蔽月, 달을 가리는 옅은 구름)’과 ‘유풍회설(流風回雪, 회오리바람에 흩날리는 눈꽃)’ 등 시적인 단어와 함께 청아하고 신비로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모종의 함축적인 아름다움을 내포한 문학 심미 범식으로 자리잡았다.


‘편약경홍’을 표현한 필법과 무용

본디 문학적 인물 표현에 사용되었던 이 단어는 훗날 서화와 무용 등 예술에도 적용되었다. 고개지(顧愷之)가 <낙신부> 내용에 따라 그렸다는 <낙신부도(圖)>는 원문의 운치를 생생하게 재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장언원(張彦遠)은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에서 고개지의 <낙신부도>에 대해 “탄탄하고 힘있는 붓질이 거침없이 물 흐르듯 이어지는데 종잡을 수 없이 초탈한 느낌이 있으며, 거리낌 없이 내달리는 필법으로 머리 속에 화면을 다 구상하고 붓을 대니 그림이 마무리되는 순간 그 경지가 살아난다(緊勁聯綿, 循環超忽, 調格逸易, 風趨電疾, 意存筆先, 畵盡意在)”고 칭송했다. 곽약허(郭若虛)는 “순수하고 고결하며, 자연스럽게 표현했다(純重雅正, 性出天然)”고 평가했다. 고개지는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자연과 문학의 세계에서 영감을 받아 유창한 붓선으로 동정허실이 결합된 화면, 그리고 설색 구상으로 함축적이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그려냈다.


무용작품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안무가 왕메이(王玫)의 작품 <낙신부>는 유창하고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예술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작년 말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허난(河南)위성방송국의 방송에서 선보인 <낙신수부> 춤은 민첩하고도 영묘한 몸짓을 강조하여 원작의 함축적인 아름다움을 미학적으로 해석했다.


‘편약경홍’, 중국의 심미관을 대표하다

이제 이 단어는 중국 전통 문학 및 예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현대사회의 일상 속에도 녹아 들었다. 오늘날 ‘편약경홍’은 비단 인물의 몸짓이나 자태를 표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천년의 세월을 거쳐 내려온 자제된 신비로움을 의미하는 일종의 미학적 특성으로 자리잡았다. 이에 따라 우리는 각종 문학 및 예술 작품 속에서 ‘편약경홍’의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미학은 자연스럽고 구애됨이 없는 모습, 바람에 흩날리는 듯하고 영리한 모습, 또한 리듬감 있는 느낌에서 나타난다. <낙신부>에는 “능파미보, 나말생진(凌波微步, 羅襪生塵∙가벼운 걸음으로 물결 건너니 비단 버선이 먼지같은 물거품을 이네)”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편약경홍 완약유룡(婉若遊龍, 부드럽기가 유영하는 용과 같다)’과 비슷한 것으로, 낙신의 태연하고 민첩한 자태를 형용하는 말이다. 여기서 ‘능파미보(凌波微步)’는 가벼운 걸음걸이를 뜻하는데, 유명한 무협소설가 진융(金庸)은 <천룡팔부(天龍八部)>에서 이를 무공의 이름으로 사용했다. ‘능파미보’는 “날아다니는 새처럼 가볍고 빠르며 종잡을 수 없고(體迅飛鳧, 飄忽若神)”, “움직임에 규칙이 없이 위급한 듯하나 평온하고, 오고 감을 예측할 수 없게 멀어지는 듯하다가 다시 돌아오는(動無常則, 若危若安. 進止難期, 若往若還)” 모습을 담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러한 무공을 표현할 때에도 ‘편약경홍’ 식의 가볍고 우아하며 청초하고 신비로운 몸짓을 강조한다.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에서는 황삼(黃衫)여인의 등장을 이렇게 묘사했다. “갑자기 노란색 그림자가 반짝 비치더니 누군가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가볍고도 유려하며 변화무쌍했다”, “신선과도 같은 자태”, “표연히 사라졌다.”  황삼여인에 대한 묘사가 <낙신부>에서 따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특징은 첫 등장 시 기러기와 같은 우아한 아름다움을 뽐냈다는 것이다. 이 밖에 <경홍일별(驚鴻一瞥)>, <경홍일면(驚鴻一面)> 등 중국 현대가요에도 가사에 “마치 그때와 같은 ‘편약경홍’의 모습”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마찬가지로 <낙신부>를 인용하여 남녀의 첫만남에서 여자의 놀랍도록 아름다운 자태를 묘사한 것이다.


‘편약경홍’은 중국 심미관 중 함축적이고 유려한 아름다움,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단어이다. 인물의 생동감 넘치는 형상 뿐만 아니라, 미학비평에서 또한 중요한 이미지로 나타나 일종의 문화적 부호로 각인되었다.


글| 우한(吳晗), 상하이(上海)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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