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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난(龍南), 장시(江西)의 ‘남대문’이자 중국 ‘웨이우(圍屋)의 고장’


2022-12-27      글|차이멍야오(蔡夢瑤)

웅장함과 장대함이 북방 산악의 특징이라면, 남방 산악의 특징은 수려함과 우아함이라 할 수 있다. ‘18 굽이’라고 불릴만큼 꼬불꼬불 늘어진 남방의 산맥은 바깥세계와 산 속 주민들 사이의 장벽이 되었지만, 신비로운 종교문화와 다채로운 민속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창장(長江) 이남, 난링(南嶺) 이북에 위치한 장시성은 산이 많은 지역이다. 남에서 북으로 포양후(鄱陽湖)를 지나 창장에 합류하는 간장(贛江)은 외부와 장시성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이다. 사방을 겹겹이 둘러싼 구릉과 산맥은 자연이 선사한 푸른 장벽이다.


아침 햇빛에 반짝이는 주롄산. 21300ha 면적에 가득한 식물과 고목으로 이곳은 ‘생물자원유전자풀’로 불리운다. 사진/샤오위(肖雨)


세속 없는 자연 그대로의 명승구

룽난시는 장시성 최남단 산맥 속에 위치한 도시로 광둥(廣東)성과 맞닿아 있어 장시성의 ‘남대문’이라 불린다. 105국도를 따라 룽난시 우당(武當)진으로 들어서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푸르른 산과 저 멀리 보이는 장엄하고 신비로운 단하지모(丹霞地貌, 지질운동의 영향으로 노을빛 붉은 지층과 암석이 기묘한 모양을 이루는 지형)가 수묵화처럼 눈 앞에 펼쳐진다.


이곳은 ‘잉커산(迎客山)’이라는 별명을 가진 난우당산(南武當山) 국가급 풍경명승구로서 남쪽에서 온 손님이 만나는 장시성의 첫번째 풍경이다. 난우당산의 최고봉은 해발 864m이며 기이하게 솟은 산봉우리 하나가 10km 이상 이어진다. 이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나란히 서있는 남쪽의 우당봉과 북쪽의 장쥔(將軍)봉이다. 이 두 봉우리는 마치 하늘에서 날아든 거대한 코끼리 같다 하여 ‘쐉샹링콩(雙象凌空)’이라 불린다.


우당봉과 장쥔봉 사이에 있는 깊고 가는 ‘이셴톈(一線天)’ 협곡에 서서 올려다보면, 그 이름처럼 하늘이 하나의 선으로 보인다. 기이한 모양의 바위를 헤치며 산 속을 걸으면, 종종 목청껏 노래 부르는 여행객들을 만나게 되는데, 노래소리가 돌벽에 부딪혀 오랫동안 메아리로 울려 퍼진다.


등산로 계단을 따라 천천히 정상까지 오르면 40분 정도가 걸린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칭펑관(淸風關)’, 절벽을 타고 오르는 ‘사슬 구름다리’, 하늘을 삼키는 거대한 두꺼비 모양의 ‘툰톈둥(呑天洞)’ 등 다양한 풍경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이따금 캠핑장비를 맨 등산객들의 모습도 보인다. 정상에는 캠핑장이 마련되어 있어 그곳에 텐트를 치고 밤하늘 가득한 별을 바라보며 잠을 청할 수 있다.


산에서 바깥쪽으로 튀어나오게 설치된 U자 유리 전망대에 서면 구름을 딛고 난우당산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느낌이다. 가파른 산세에 지어진 전망대의 유리 바닥을 통해 거의 직각에 가까운 산비탈이 보인다. 몇 년 전, 난우당산 행정구는 유리회랑, U자 유리 전망대, 유리다리로 구성된 ‘고공 유리 경관 구역’을 건설하여 고공 스릴을 즐기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정상에서 대나무 숲 사이 오솔길을 따라가면 우당성묘(武當聖廟)에 도착한다. 우당성묘는 명나라 때 지어진 불교 사찰로 최근 몇 년간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점차 번성하는 중이다. 청아하고 고요한 장시의 숲은 고승들이 선호하는 참선지로서 수당 시대부터 이곳은 불교 문화의 옥토였으며, 당나라에는 “관직을 원하면 장안으로, 불법을 구하려면 장시로”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난우당산에서 남서쪽으로 30km 정도 가면 주롄산(九連山) 원시삼림 국가급 자연보호구가 있다. 주롄산은 간장의 발원지로 99개의 산봉우리가 이어진 모습으로 유명하다. 보호구 내에는 대규모 자생 상록활엽수 숲이 있으며, 굉장히 많은 종류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어 중국과학원 동물연구소의 국내 2대 조류 관찰기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주롄산 몇십만 마지기 규모의 원시삼림 가운데에 도시의 번잡함에서 멀리 벗어난 ‘쳰신(虔心) 마을’이 있다. 높은 건물이 보이지 않는 이곳에는 소박한 흙집과 끝이 보이지 않는 대나무 숲, 그리고 차밭이 있을 뿐이다. 관광객들은 차 채집, 전통 착유 등 예부터 내려온 생산공법을 체험할 수 있다. 마을에는 경사가 심한 굽이길이 많아 걸어서 이동하는 게 좋다. 산길 양옆으로 푸른 대나무가 심어져 있어 산들바람이 불면 마치 귓가에 파도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대나무 특유의 청량한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산자락에 나란히 심어진 차나무와 중간중간 보이는 초가집이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을 보고 있으면 속세를 잊게 한다.  


커자(客家)인이 일구어 낸 ‘웨이우의 고장’

청아하고 아름다운 룽난의 산은 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옛 시절 전란이나 천재지변으로 고향을 떠나 흘러 들어온 사람들의 보호소가 되어 주었다.


산세에 따라 지어진 관시신웨이. 외벽에 포탄과 총 자국이 선명하다. 관시신웨이는 매우 탄탄한 방어체계로 유명하다. 사진/룽난시 매체 융합 센터 제공


역사상, 장시 남부는 총 5차례에 걸쳐 대규모 북방 이민을 받아들인 바가 있다. 과거 인구 기록 시 ‘주(主)’와 ‘객(客)’으로 나누었는데 이민자들은 ‘객적(客籍)’에 속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객가인(客家人)’, 중국어 발음으로 ‘커자’로 불렀다. 남하한 커자인들은 그곳의 소수민족에 융합되면서 독특한 풍속을 형성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중국 한(漢)민족 8대 계파 중 하나인 ‘커자’ 이름의 기원이다.


룽난은 커자인의 주요 거주지 중 하나이다. 당·송 시대부터 대대손손 이곳에서 살아온 커자인들은 독특한 양식의 ‘웨이우’를 지었다. 룽난에는 아직까지 국가 중점 문물 보호 대상인 ‘관시신웨이(關西新圍)’, ‘옌이웨이(燕翼圍)’, ‘우스웨이(烏石圍)’ 등 376개의 웨이우가 보존되어 있다.


과거 산 속에 숨어살던 커자인들은 맹수와 도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 여러 가정이 함께 모여 지내며 각자의 집을 연결해 방어력 높은 웨이우를 만들었다.


애니메이션 영화 <대어해당(大魚海棠)>에 나오는 원형 웨이우와 다르게 룽난 지역의 웨이우는 사각형이다. 각 변마다 2층 내지 4층의 건물을 짓고 모서리에는 망루나 포루가 설치되어 마치 성곽의 모습을 띄고 있어 ‘동방의 로마 성곽’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중 관시신웨이는 현존 외관, 구조, 기능이 가장 온전한 대표적인 커자 웨이우이다. ‘회(回)’자 모양의 3층 구조물이며, 100여 개의 방이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다. 동쪽과 서쪽에 대문을 두고 있으며, 중간에는 앞뒤 3칸 짜리, 병열 5동, 14개의 천정(天井, 네모진 안채 마당)을 가진 대저택이 있다. 내부 가옥들은 회랑, 벽, 또는 복도로 연결된다. 서대문 쪽에는 2000m2에 달하는 오락과 휴식을 위한 ‘샤오화저우(小花洲)’도 마련되어 있다.


룽난 웨이우의 또 다른 대표라 할 수 있는 룽광웨이(龍光圍)는 대부분이 웨이우가 청색 벽돌과 조약돌로 건축된 것과 달리 긴 돌로 만든 아름답고 조화로운 외벽이 특징이다. 룽광웨이 옆에는 두 줄기의 냇물이 천연 해자를 형성하고, 뒤편에 일군 계단밭은 산자락까지 이어진다. 푸른 산과 강, 그리고 밭 가운데 자리한 룽광웨이는 무릉도원이 바로 여기인가라는 감탄을 자아낸다.


집주인의 문화적 소양과 지위를 드러내기 위해 룽난 웨이우 내부는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과 조각 등으로 꾸며졌다. 꽃, 새, 곤충, 물고기는 물론이고 산수화, 누각, 인물 이야기 등 소재가 생동감 넘치게 표현되어 있다. 대들보에는 박쥐, 용, 석류 등 많은 자손과 복,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것들로 장식되어 아름다운 삶에 대한 바람이 엿보인다.


웨이우 대문으로 들어서 조약돌이 깔린 마당에서 올려다보면 오밀조밀 붙어 있는 방들과 겹겹이 구성된 안뜰, 그리고 크고 작은 천정이 독특한 풍경을 만든다. 대문 앞 공터에는 주민들이 직접 만든 건조식품이 널려 있고, 커자 전통 옷을 입은 할머니가 커자말로 옛 가락을 읊조리면서 베틀로 천을 짠다. 이곳에서는 유독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느낌이 든다.


긴 세월을 지내오며 룽난의 크고 작은 웨이우들은 각자만의 설화와 전설을 품었다. 징강(井崗)촌의 단쯔자이웨이(彈子寨圍)에는 이런 설화가 전해진다. 청나라 때 마을에 도적떼가 들었는데 주민들이 방어에 강한 웨이우 안에서 굳게 지키며 맞서 싸웠다. 공략이 쉽지 않자 도적들은 물 긷는 문을 차단하여 항복을 유도하려 했다. 그러나 열흘이 지나도 항복은 커녕 물이 부족해 보이지도 않았다. 심지어 담벼락에 새로 빤 옷이 널려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도적떼는 이곳을 포기하였다. 사실 한 주민이 똑똑한 수를 내어 가가호호 기름을 모아 옷을 적셔 전혀 물이 부족하지 않은 모습을 꾸며 도적떼를 속인 것이었다.  


글|차이멍야오(蔡夢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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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화산업의 ‘상전벽해’

2004년 중국 베이징에서 유학할 당시 <쿵푸(功夫)>, <연인(十面埋伏)>, <뉴 폴리스 스토리(新警察故事)> 등의 영화가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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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교육기관 방문기... “K무비 전성 이유 있었네”

최근 필자는 부산에 위치한 영화교육기관 두 곳을 방문하여 세계적 명성을 떨치는 한국 영화의 동력원천을 엿볼 기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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