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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비가 엇갈리는 ‘평가조정협의’


2022-11-17      

얼마 전 프라이빗 키친을 운영 중인 친구 W가 내게 자문을 구했다. 키친 운영이 잘 돼서 분점을 내고 싶은데 여유 자금이 없던 차에 친구에게 한 사모펀드를 소개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사모펀드 측에서 평가조정협의(Valuation Adjustment Mechanism)를 맺자고 해서 고민이 많다는 것이다.


평가조정협의는 투자자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사업 성공 여부를 조건으로 체결하는 계약이다. W가 받은 조건은 분점 개점에 성공하면 이 사모펀드가 일부 이익을 얻고, 개점하지 못하면 W의 점포는 투자자 소유가 되는 것이다. W의 입장에선 리스크가 크지만 단기간 안에 은행에서 충분한 융자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도박’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평가조정협의는 현재 중국에서는 ‘가오다상(高大上, 고급스럽고 당당하고 품위 있음을 의미하는 축약어)’으로 여겨진다. 20세기 초, 멍뉴(蒙牛)가 모건 스탠리 등 투자기관과 평가조정협의를 체결해 일개 스타트업 기업에서 중국 유업계의 거두로 성장한 예가 있다. 이때부터 유럽, 미국 시장에서 시작된 평가조정협의가 중국에서 성행하기 시작했다.


‘도박’에 성공한 멍뉴

멍뉴유업의 창업자인 뉴건성(牛根生)은 네이멍구(內蒙古)의 낙농업자였다. 1999년 이리(伊利)그룹에서 독립한 그는 공장도, 목장도, 고객도 없는 상태에서 멍뉴를 창립했다. 14년 뒤인 2013년, 멍뉴의 우유 매출이 중국 유제품 업계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2001년부터 멍뉴는 자금난에 부딪쳤다. 당시 멍뉴는 작게나마 성과를 거뒀고 양호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서 도약의 기회를 잡기 위해 상장을 통한 대규모 자금 조달을 우선 고려했다.


멍뉴는 선전(深圳) 창업판(創業板), A주 상장, 홍콩 차스닥 상장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여러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다. 그때 중국에서 투자 대상을 찾고 있던 모건 스탠리가 등장했다. 2003년 모건 스탠리 등 3개 국제 투자기관이 ‘태환권’ 방식으로 멍뉴에 3523만 달러를 투자했다. 당시 환율로 2억9000만 위안(약 579억4780만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이 3개 기관은 멍뉴와 평가조정협의를 맺었다. 양측은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멍뉴유업의 연평균 성장률이 5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고 약정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기업 임원층이 3개 기관에 약 6000~7000만주의 상장주를 지급해야 하고, 목표 실적을 달성할 경우 3개 기관은 상응하는 자신의 지분을 멍뉴 임원층에게 보너스로 지급해야 했다.


뉴건성의 큰 도박으로 멍뉴는 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업계 선두 중 하나로 급성장했고, 2004년 6월 홍콩거래소 상장을 완료함과 동시에 10여억 위안의 자금을 조달했다. 멍뉴 상장 후 3개 기관은 26억 홍콩달러를 현금화한 후 멍뉴에서 철수했다. 멍뉴의 ‘큰 도박’은 중국에서 평가조정협의의 전형적인 성공 사례가 됐고 평가조정협의가 중국인의 시야에 서서히 들어왔다.


‘도박’에 실패한 유명 기업

베이징(北京)에서 유명한 쓰촨(四川)식당 하면 ‘차오장난(俏江南)’을 꼽는다. 이 식당의 대표인 장란(張蘭)은 2009년 요식업 부호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지금 장란은 차오장난에서 물러났다. 과거의 영광이 사라진 이유는 평가조정협의에서 패했기 때문이다.


2008년 장란은 차오장난의 상장을 위해 딩후이(鼎暉)투자와 ‘평가조정협의’를 체결했다. 협의에서 딩후이는 차오장난에 2억 위안을 투자하는 대신 차오장난은 4년 안에 상장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상장하지 못할 경우 차오장난은 딩후이의 소유가 되고, 되찾으려면 장란은 4억 위안에 상당하는 지분을 환매해야 한다. 결국 차오장난은 상장하지 못했고 장란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소유한 모든 지분, 즉 전체 지분 중 72%에 달하는 지분을 처분하고 상환해야 했다.


평가조정협의를 체결하면 이익을 보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그중, 협의 이행을 거부해 투자자가 법원에 고소해 양측이 평가조정협의의 유효성을 두고 다투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법조계와 법학계는 오랫동안 평가조정협의의 유효성을 놓고 논쟁을 벌였고, 2013년 최고인민법원이 ‘평가조정협의 제1안’에 대해 판결을 내린 뒤에야 어느 정도 명확한 해석이 생겼다.


평가조정협의 제1안

‘하이푸안(海富案)’은 평가조정협의 제1안이라고 불린다. 이 안건의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다.


2007년 11월, 하이푸투자유한공사는 투자측으로서 간쑤(甘肅) 스헝(世恒) 유색자원재이용 유한공사에 2000만 위안의 자금을 제공했다. 당시 하이푸투자와 간쑤 스헝, 스헝의 주주 H기업은 <증자협의서>를 체결하고 ‘평가조정협의’를 약정했다. 약정 내용은 2008년 간쑤 스헝의 순이익이 3000만 위안 미만일 경우 하이푸투자는 간쑤 스헝에게 보상을 청구할 권리가 있으며 만약 간쑤 스헝이 보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하이푸투자는 H기업에 보상 의무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후 간쑤 스헝은 하이푸투자가 제시한 실적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평가조정협의 중 배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고, 때문에 하이푸투자는 법원에 고소했다. 1심, 2심 모두 ‘평가조정협의’를 무효로 판결했다. 최고인민법원은 협의 중 ‘만약 스헝의 실제 순이익이 목표 실적 미만일 경우 하이푸는 스헝에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약정 조항이 스헝의 경영 실적을 벗어났고, 기업의 이익과 기업 채권자의 이익을 침해하기 때문에 이 조항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간쑤 스헝의 주주인 H기업의 하이푸투자에 대한 보상 약속은 기업과 기업 채권자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고, 법률·법규의 금지성 규정을 위반하지 않으며, 당사자의 진실한 뜻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 이후 ‘투자자와 목표 기업 주주의 평가조정협의는 유효하고, 목표 기업과의 평가조정협의는 무효’라는 원칙이 확립됐다. 이후 지방법원은 이와 유사한 사건에서 이 판례를 따르고 있다.


코로나19 속 분쟁 다발

중국의 영화, 드라마, 기타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평가조정협의가 가장 많은 분야다. 대다수 영화와 프로그램 제작사가 자본이 부족해 평가조정협의를 통해 수천만에서 수억 위안에 달하는 제작비를 조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번 히트 치면 막대한 부가 따르는 엔터테인먼트 업계 특유의 ‘도박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영화, 프로그램, 제작사 모두 평가조정협의에서 규정한 실적 기한, 흥행 수입, 시청률을 달성하지 못했다. 때문에 평가조정협의를 둘러싼 분쟁이 많이 발생했다. 쟁점은 ‘코로나19의 영향이 불가항력에 속하느냐 여부’다.


다음은 베이징시 제1중급 인민법원이 지난해 심사 처리한 안건이다. 한 영화 작품이 계약에서 규정한 기한 내에 상영하지 못해 평가조정협의를 체결한 제작사가 고소당했다. 그러나 피고측은 협의 기한에 불가항력이 발생했다며 면책 신청을 했다. 해당 면책 신청은 심판을 거쳐 인정됐다. 판결에서는 영화 작품이 계약에서 규정한 기한 내에 퍼블리싱되지 못한 것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퍼블리싱이 연기된 것’에 속하므로 피고측의 항변은 객관적인 근거가 있다고 봤다. 따라서 법원은 피고측이 해당 영화 작품의 퍼블리싱 지연에 어떠한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코로나19와 방역 정책으로 협의 조항을 이행할 수 없을 경우 불가항력으로 인한 면책 신청을 할 수 있느냐 여부를 놓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글|바오룽전(鮑榮振), 베이징(北京)시 국제법률사무소의 공동창업자이자 변호사로 활동하고 중국정법대학교 국제환경법연구소 연구원, 중국정법대학교 법률석사학원 객원교수, 중국법학회 변호사법연구회 이사, 중일민상(民商)법연구회 부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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